2024년 세계는 그간 본 적 없는 큰 비를 마주하고 있다. 3월 케냐에선 홍수로 238명이 목숨을 잃었다. 4월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12시간 동안 1년 치 비가 쏟아졌으며 브라질에서는 집중호우로 3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가 현재 경향대로 지속될 경우, 50년 내에 시간당 200mm의 비까지도 내릴 전망이다. 이는 서울시가 대응할 수 있는 홍수량의 두 배다. 기후는 변했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과학동아는 5월호에 이어 6월호 특집기사로 예견된 재앙에 대비할 한국만의 전략을 찾아봤다. 일본 도쿄와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다.
2022년 8월 8~9일 서울엔 시간당 최대 141.5mm의 엄청난 비가 내렸다. 기상청에서는 시간당 72mm 이상의 비를 극한호우라고 하는데, 두 배에 가까운 양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바로 다음 날인 10일 입장문을 통해 “상습 침수지역 6개소에 대한 빗물저류배수시설(이하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심도 빗물터널이 과연 점점 더 거세지는 극한호우를 감당할 수 있을까. 2028년 말부터 운영될 서울 도림천 대심도 빗물터널의 방재 효과를 직접 시뮬레이션 해봤다.
2022년 8월 중부지방에 내린 호우는 이상기후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호우’였다. 8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간 서울시 동작구에는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렸다. 500년 이상의 빈도로 예측되는 기록적인 폭우였다. 폭우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고, 서울시는 앞으로 다가올 극한호우에 대응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6개 지역에 빗물저류배수시설(이하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먼저 1단계 사업으로 2024년부터 도림천, 광화문, 강남역 일대에 각각 대심도 빗물터널을 짓고, 2027년부터는 2단계로 한강로, 길동, 사당역 일대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설치하기로 했다. 4월 9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서 만난 장기철 서울특별시 물순환안전국 치수안전과 대심도사업 팀장은 “1단계 대심도 빗물터널은 2024년 10월까지 설계를 완료하고, 같은 해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8년 말부터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극한호우 해결사로 떠오른 대심도 빗물터널
‘대심도’는 일반적인 토지 이용에 지장이 없는 깊은 지하 공간을 뜻한다. 보통 서울처럼 고층 빌딩이 밀집한 지역의 경우 지표면에서 40m 이상의 깊이를 이야기하나 정확한 정의는 없다. 이렇게 지하 수십 m 아래에 건설된, 빗물을 빼낼 수 있는 큰 터널을 대심도 빗물터널이라고 한다. 대심도 빗물터널을 이용하면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류한 뒤 인근 하천으로 배출하거나, 홍수로 인해 불어난 지류 하천의 물을 본류인 한강으로 신속하게 흘려보낼 수 있다.
서울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지어 극한호우를 막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양천구에 ‘신월 대심도 빗물터널’이 있다. 장 팀장은 “2011년 7월 시간당 113mm의 비가 내려 기존의 치수 대책만으론 막을 수 없는 큰 침수 피해가 발생하면서 대심도 빗물터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당시 7개 지역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계획했지만, 설치 비용과 기간 문제로 신월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건설됐다”고 말했다.
신월 대심도 빗물터널은 2013년부터 7년간 공사가 진행됐고, 2020년 초부터 운영 중이다. 장 팀장은 “2022년 서울시에 집중호우가 왔을 때도 이 지역에는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한국수자원학회에서 2023년에 발표한 ‘도시침수 예방을 위한 신월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 건설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집중호우 당시에 대심도 빗물터널이 없었다면 신월 양천지역에 사는 약 600세대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뛰어난 효과 덕분에 2022년 강남역 침수 이후 대심도 빗물터널의 필요성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림천 일대 대심도 빗물터널 기본계획을 세운 도화엔지니어링의 손민영 이사는 4월 3일 인터뷰에서 “하수관로 개선, 빗물 저류조 설치 등의 방안도 있지만, 이들은 부지 확보, 토지 보상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며, “대심도 빗물터널은 다른 시설의 방해를 받지 않는 데다가 보상비가 다른 방안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적게 든다”고 말했다.
빗물터널 가정하고 극한호우 퍼부어보니
서울시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방재성능목표를 시간당 100mm(강남역 일대 110mm)로 잡았다. 2년 전 시간당 141.5mm의 극한호우를 경험했기 때문에 시간당 100mm라는 방재성능목표는 불충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손 이사는 “일반적으로 모든 천재지변을 방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치수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며,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시간당 100~110mm를 대비하기 위해 대심도 빗물터널 사업을 시행 중이고,
1단계 사업에만 약 1조 3000억 원을 투입했다.
시간당 100mm도 쉬운 목표는 아니다. 사실 대심도 빗물터널만으론 이런 방재성능목표에 도달하기 어렵다. 대심도 빗물터널로 이어지는 하수관이 시간당 75~95mm 강우를 흘려보낼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는 빗물터널 건설과 주변 하수관 정비를 병행할 계획이다. 도화엔지니어링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완료되면 서울시 방재성능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만약 이곳에 극한호우가 내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과학동아는 대심도 빗물터널의 정확한 한계를 파악하기 위해 도화엔지니어링의 도움을 받아 도림천 일대에 대심도 빗물터널이 건설됐다고 가정하고, 인근 지역에 시간당 141.5mm, 200mm의 비를 퍼부어봤다. 141.5mm는 관측 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린 2022년 8월 기록이며, 200mm는 민승기 POSTECH 환경공학부 교수가 두 가지 기후모델을 통해 예측한 2095~2100년 최대 강수량이다. 분석엔 SWMM(Storm Water Management Model)을 사용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도림천 일대에 시간당 141.5mm의 비가 내릴 때 대림동 주변은 지표에서 50cm 되는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50cm면 물이 흐를 때 항력이 발생해 사람이 넘어질 위험이 있는 깊이다. 도림천 일대에 시간당 200mm의 비가 내린다고 가정하면 결과는 더욱 참담했다. 조원동, 서원동-봉천동 일대도 추가로 50cm 이상 물이 찼고, 일부 지역은 1~1.5m까지 물이 차올랐다. 2022년 8월 강남역 일대가 1m 이상 잠겼던 것처럼 말이다.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과 함께 다른 홍수 방재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 팀장은 “서울시 전역에 대심도 빗물터널을 지을 수는 없다”며 “뿐만 아니라 대심도 빗물터널과 같은 구조적인 대책만으로는 시간당 140mm 이상의 비가 내렸을 때 침수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울시는 침수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에 구조적인 대책을 통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홍수 예보와 경보 및 침수 재해 약자를 위한 동행파트너 운영과 같은 비구조적인 대책을 함께 실행하는 복합적인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대심도 빗물터널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어떤 방재 전략이 필요할까. 과학동아는 같은 고민을 품고 있는 두 도시를 방문해 해결책을 찾아봤다. 일본 도쿄와 독일 베를린으로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