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꽃을 찾아서](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64754686653351bef1bc69.jpg)
![논문 보조자료가 119쪽이나 된다고?](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28832703653351bfb4d93c.jpg)
암보렐라는 뉴칼레도니아에만 서식하는 희귀식물이다. 과거에는 아무도 이 식물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2000년대 들어 많은 식물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슈퍼스타가 됐다. 암보렐라가 중요한 이유는 현존하는 꽃식물 중 가장 먼저 나머지 모든 꽃식물들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꽃식물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진화한 생물군 중 하나로, 현재 약 25만 종이 보고돼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종을 포함하면 약 40만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윈은 꽃식물의 폭발적 진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꽃식물의 진화는 생물 진화 역사상 그 양상이 매우 독특하다. 오래된 지층에서는 꽃 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일정 지층 이후에 다양한 모양의 꽃 화석들이 한꺼번에 발견된다. 최초의 꽃식물이 생기자마자 폭발적으로 다양해지는 현상, 즉 ‘방사진화’를 했다는 의미다. 유명한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식물학자 친구인 조셉 후커(Joseph D. Hooker)에게 쓴 편지에서 꽃식물의 진화를 “지독하게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abominable mystery)”라고 표현했다. 꽃식물의 기원과 그 폭발적 진화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꽃식물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 학자들은 가장 먼저 생긴 공동조상을 파악하고자 노력한다(다음 쪽 그림 참고). 과거로 가지 않는 이상 최선의 방법은 가장 원시적인 형질을 간직하고 있는 현생 꽃식물을 찾는 것이다. 다른 모든 꽃식물에서 가장 먼저 분화된 식물, 즉 현생 식물의 계통수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최고기저피자식물(basal-most angiosmerm)’이 바로 최초의 꽃과 가장 유사한 원시적인 꽃이다. 그러므로 다윈의 의문을 풀기 위한 현실적인 접근 방법은 이런 식물을 찾아내 다른 꽃식물 및 겉씨식물과 형태, 기능, 유전자, 유전체 등을 비교하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원시적인 꽃식물인가
식물진화학자들은 가장 원시적인 현생 꽃식물이 무엇인지 논쟁을 해왔다. 20세기 초, 식물분류학자 아돌프 엥글러(Adolf Engler)는 자작나무, 참나무, 버드나무와 같이 매우 단순한 꽃을 갖는 식물들을 가장 원시적인 식물군이라고 제시했고,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단순한’ 식물이 ‘원시적’이라는 철학을 갖는 엥글러 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에 반해 ‘베씨의 분류체계’로 유명한 찰스 베씨(Charles E. Bessey)는 많은 수의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이 나선 모양으로 배열하는 목련과와 미나리아재비과 같은 식물들이 원시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엥글러학파와 대립하는 베씨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한 꽃은 단지 퇴화의 결과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엥글러 학파는 힘을 잃어 갔다.
현대 학자들은 베씨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1960~1980년대 러시아 식물학자 아르멘 탁타얀(Armen Takhtajan)과 미국 식물학자 아서 크론퀴스트(Arthur Cronquist)는 그들의 분류체계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목련과 식물을(미나리아제비과 제외) 가장 원시적 꽃식물로 취급했다. 이들의 양대 분류체계는 최근까지 가장 널리 받아들여져 오면서 목련과 식물이 원시 꽃식물이라는 개념을 널리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이유로 아직까지 많은 식물학, 식물분류학, 진화학 교과서의 표지사진으로 목련과 식물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떤 시인은 “목련꽃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고 노래했지만, 생물학자들에게 목련이란 ‘원시적 식물’로 더 유명한 것이다.
1984년 미국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데이비드 딜쳐(David Dilcher)와 미국 예일대 피터 크레인(Peter Crane)이 발견한 1억200만 년 전 화석 ‘아키앤서스(Archaeanthus)’는 과실과 잎 형태가 현존 목련과 매우 비슷해 ‘현생 기저피자식물’로서 목련의 위치를 확고히 해줬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꽃식물 화석인 ‘아케프럭터스(Archaefructus)’가 중국 랴오닝성 지역의 약 1억25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됐다. 재미있게도 이 화석은 물고기 화석과 함께 발견돼 최초 꽃식물이 수생식물일 가능성도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분자계통학적 연구는 가장 원시적인 현생 꽃식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주고 있다. 목련도, 수생식물도 아닌 다른 꽃, 바로 암보렐라였다.
![꽃식물 계통도](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70821913453351c7f5ee30.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48296726453351c87dab33.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201152410453351ca22cd99.jpg)
뉴칼레도니아에 가장 원시적인 꽃식물이 살고 있었다
DNA에는 생물의 모든 형태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생물 간 DNA 염기서열을 직접 비교해 만든 계통수는 생물의 외부 형태를 비교해 만든 계통수보다 객관적이다. 식물분자계통학자들이 처음 관심을 가진 유전자는 엽록체 유전체에 있는 ‘rbcL’이다. 광합성 첫 단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로, 모든 식물에서 발견돼 서로 비교하기 좋았다. 1993년 영국 큐 왕립식물원연구소의 마크 체이스(Mark Chase)와 많은 학자들은 500여 종의 대표적 꽃식물을 선별해 이 유전자를 분석하고 계통수를 작성했다. DNA 염기서열 자료로 만든 최초의 전체 꽃식물 계통수였다.
이 연구는 꽃식물 분류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바꿨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꽃식물은 외떡잎(단자엽)식물과 쌍떡잎(쌍자엽)식물로 나뉜다고 배웠다. 계통학적 관점에서 보면, 꽃식물의 공동조상에서 두 개의 가지가 나와 각각 외떡잎식물들과 쌍떡잎식물들을 이룬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체이스 등의 연구는 전체 꽃식물 계통수에서 수련, 붓순나무, 목련, 녹나무, 후추 등 극소수의 쌍떡잎식물들이 기저피자식물군을 이루며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밝혔다. 나머지 쌍떡잎식물들은 단일 계통인 진정쌍떡잎류를 이룬다.
![(좌) 목련과 닮은 아키앤서스 화석 복원도, (우)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꽃식물 화석인 아케프럭터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25096876353351cac4ac67.jpg)
즉 쌍떡잎식물들은 단일기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학자들의 관심은 이 계통수의 가장 아래에 어떤 식물이 있는가 였는데, 바로 수생식물인 붕어마름이었다. 그러나 통계학적 검증 결과 붕어마름이 가장 원시적 식물일 가능성은 매우 낮게 나왔다. 초기 연구라 데이터 양이 적어서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1999년 미국 플로리다대 솔티스 부부(Douglas E. Soltis 와 Pamela S. Soltis)가 주도하는 연구팀은 엽록체 유전체의 두 유전자(rbcL, atpB)와 핵 유전체의 18S rDNA의 염기서열로 식물 계통을 분석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통계학적으로 매우 신뢰할 만한 연구였다. 이 계통수에서 가장 원시적인 식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제까지 한 번도 거론된 적 없는 암보렐라였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시기,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도너휴(Micheal Donoguhue)와 사라 매튜(Sara Mathew)는 전통적인 DNA 계통분석이 아닌 ‘중복이 일어난 두 유전자군의 계통 네트워크(tree network) 분석’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암보렐라가 가장 원시적인 꽃식물임을 밝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검증해 온 결과, 지금은 암보렐라가 가장 원시적인 식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암보렐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단성화이고, 꽃잎과 꽃받침이 거의 비슷하게 생겨 구분이 되지 않는다. 꽃의 각 부분들은 나선 모양으로 배열한다. 암보렐라 꽃의 구성요소는 바깥에서부터 꽃을 보호하는 포, 그 안쪽에 꽃잎과 꽃받침의 구분이 없는 화피편, 수술, 그리고 가장 안쪽에 암술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암보렐라의 각 요소가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모양이 조금씩 바뀌면서 안쪽에 위치한 다른 요소로 변한다는 것이다. 포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화피편을 닮아가고, 가장 안쪽의 화피편은 중앙이 볼록 솟아 나와 꽃가루주머니(화분낭)가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초기 꽃식물에서는 꽃의 기관 분화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진화를 하면서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로 명확하게 분화됐음을 보여준다.
암보렐라 유전체 : 꽃식물의 진화적 참고서
다윈의 미스터리에 접근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암보렐라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초기 꽃식물의 형태적, 유전적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한 생물의 전체 유전체를 밝힌다는 것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수많은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종종 유전체 결정사업을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에 비교한다. 예를 들어, 인간유전체결정사업은 2000년 당시 약 30억 달러(약 3조 원)를 투입해 약 30억 쌍에 달하는 인간의 염기서열을 완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유전자맞춤치료가 가능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식물학에서도 식물 각각의 유전체 결정은 발생, 생식, 육종 등에 바로 이용할 많은 기초자료를 제공하게 된다. 현재까지 전체 유전체가 결정된 꽃식물은 약 40종 정도다. 하지만 이들은 벼, 토마토, 포도처럼 경제적 이유에서 재배하는 작물이거나 애기장대처럼 유전 연구를 위한 모델식물에 국한됐다. 또한 이들은 꽃식물 계통수에서 매우 발달한 진정쌍떡잎류와 외떡잎류에 속한다. 암보렐라 유전체 결정사업은 순수한 학술 목적으로는 처음이며, 꽃의 기원과 다양화 과정을 밝히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암보렐라의 전체 유전체 크기는 약 870M(메가, 106)이다. 사이언스에 발표한 이번 논문(The Amborella Genome and the Evolution of Flowering Plants)에서 필자를 포함한 공동연구팀은 다양한 방법으로 약 48G(기가, 109) 크기의 염기서열을 생성했는데, 조립된 염기서열의 전체 길이는 유전체의 약 96%에 해당한다. 이를 이끼류, 겉씨식물, 포도, 애기장대 등 기존에 발표된 식물 유전체와 비교했다.
이 결과 꽃식물로의 진화와 다양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주요 식물군의 공동조상에서 일어난 ‘전체유전체중복(WGD, whole genome duplication)’ 현상임을 밝혀냈다. 전체유전체중복은 그 생물의 모든 유전자가 ‘여유분의’ 유전자를 갖는다는 의미다. 여유분의 유전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전혀 다른 기능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가령,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두 명이 된다면, 두 운전사가 번갈아 운전할 수도 있고, 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사는 버스를 떠날 수도 있고, 또는 새로운 임무인 청소를 담당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생물체 내에 전체유전체중복 현상이 일어나면 급격히 진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논문에서는 이끼류로부터 고사리류, 겉씨식물을 거쳐 최초의 꽃식물인 암보렐라 조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전체 유전체중복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밝혔는데, 아마도 이것이 꽃식물의 폭발적 진화를 이끄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또한 ‘삼중전체유전체중복’ 현상이 일어나 꽃식물 중 가장 종수가 많은 진정쌍떡잎류(eudicots)로 진화했다고 추정된다. 이는 암보렐라와 진정쌍떡잎류에 속하는 포도의 전체 유전자를 서로 비교해 보면 암보렐라에 있는 각각의 유전자와 매우 유사한 유전자가 포도에서는 3개씩 존재한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암보렐라(Amborella)](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4988587753351d165af8d.jpg)
![암보렐라 유전체 일부](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28781544353351d24a9ccf.jpg)
1만4000개 핵심 유전자 찾아내
또 하나의 큰 성과는 전체 꽃식물이 공유하는 약 1만4000개의 유전자를 밝혀냈다는 점이다. 이들은 꽃식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핵심 유전자들이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팀은 암보렐라를 비롯해 주요 꽃식물에 들어있는 핵심 유전자들을 분석해 각 유전자군의 계통수를 작성했다. 이들 계통수를 해석하면 진화과정상 각 유전자의 구조 및 기능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
꽃의 형성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애기장대에서는 꽃의 각 부분(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의 형태 형성을 ‘ABC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A-클래스(class), B-클래스, C-클래스 유전자들의 발현이 조합을 이루어 꽃의 각 부분 형성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원시적인 꽃식물에서 두 개의 B-클래스 유전자(꽃잎과 수술 형성에 관여한다)가 만든 단백질들이 동형복합체를 형성하는지 아니면 이형복합체를 형성하는지가 그동안 큰 논란거리였다. 연구팀은 본 논문에서 현생하는 가장 원시적인 꽃식물인 암보렐라의 B-클래스 유전자들이 단백질을 만들 때 동형복합체와 이형복합체 모두를 만든다는 것을 ‘Yeast-2-hybridization’이라는 방법을 이용해 밝혀냈다. 이로서 꽃식물의 진화 초기에 특정 유전자(예를 들어 꽃잎과 수술을 만들어내는 기능)가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꽃식물의 진화 초기에 많은 실패를 동반한 시도들(trial and error)이 진행된 것이고, 진정쌍떡잎식물에 이르러 B-클래스 유전자들의 기능이 고착화 됐다고 추정하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원시적 꽃식물인 암보렐라의 유전체 결정은 모든 꽃식물의 진화적 참고서가 되고, 이는 모든 꽃식물에 대한 유전, 생리, 육종 등 다양한 파생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암보렐라의 유전체 연구는 왜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콜럼버스는 인류가 이뤄낼 무한한 발전을 상상하지 못하고 신대륙(아메리카)에 발을 내디뎠지만, 우리는 암보렐라를 발판 삼아 유전체 신대륙에 한 발 더 나감으로써, 인간에게 펼쳐질 거대한 블루오션을 기대할 수 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꽃,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PART 1. 꽃이 없었다면, 지금 당신은 없다
PART 2. 태초의 꽃을 찾아서
Bridge. 튤립은 어떻게 세상에 퍼졌나
PART 3. 인간의 역사를 바꾼 꽃의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