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6년 부산 올림픽 1백m 남녀 통합 결승전. 8명의 남녀 선수들이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탕”하는 총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1위 선수의 기록은 8.079초. 세계 신기록이었다. 더구나 21살의 여자 선수였다.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1백m 달리기에서 남자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상상이 현실로 나타날까. 영국 옥스포드대 앤드류 테이텀 교수와 케냐 KEMRI 연구소 사이먼 헤이 박사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들은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 최근호에 “현재 남녀 1백m 선수들의 기록 향상 속도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2156년 올림픽에서 남녀의 기록이 역전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남녀 기록 역전은 빠르면 2064년, 늦어도 2788년에 일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여자가 남자보다 기록 향상 빨라
육상에서 남녀의 기록 역전 가능성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미국 LA 소재 캘리포니아대 브라이언 휩과 수잔 워드 교수는 “여자 육상 선수들의 기록 향상 속도가 남자보다 2배나 빠르다”라고 주장한 논문을 92년 발표했다. 1920년부터 1990년까지 2백m달리기, 마라톤 등 다양한 육상 경기의 기록을 조사해 얻은 결과다. 특히 1955년 시작한 여자 마라톤에서 기록 향상 속도가 가장 뚜렷했다.
이들은 당시 “남녀의 기록 차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며 “마라톤은 1998년에 남녀 기록이 근접하고 2050년에는 모든 육상 경기에서 남녀의 차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 미국 US뉴스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3분의 2가 “여자 선수가 남자를 이기는 날이 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90년대 들어 남녀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노르웨이 에그델대 건강 스포츠 연구소 스티븐 세일러 박사는 몇 년 전 “80년대 여자 선수의 육상 기록은 남자보다 11% 뒤졌는데 이 차이가 90년대 중반 들어 12%로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특히 90년대 들어 케냐 등 동아프리카 남자 선수들이 육상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남자가 여자보다 세계 기록을 더 자주 깨고 있다는 것이다.
세일러 박사는 7월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에 추가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1백m 달리기부터 마라톤까지 8개의 주요 육상 경기를 분석한 결과 7개 종목에서 남녀의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예외는 영국 여자선수 폴라 래드클리프가 경이로운 기록 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마라톤뿐이었다. 마라톤의 기록 차이는 80년대말 11.9%에서 지금은 8.4%로 줄었다. 그러나 다른 종목은 10.4%에서 11.01%로 오히려 늘어났다고 그는 주장했다.
최근 발표된 테이텀 교수의 연구는 이런 주장을 뒤집는다. 그는 1900년부터 올림픽 남자 1백m 달리기 1위 기록과 여자 선수의 참가가 시작된 1928년부터의 여자 기록을 모두 조사해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1백여년의 우승 기록을 모두 점으로 찍은 뒤 점들이 만드는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1백여년 동안의 1백m 1위 기록은 남녀 모두 거의 일직선으로 증가하는 직선 그래프로 나타났다.
테이텀 교수는 “일부에서는 여자의 1백m 기록이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증가세가 꺾여 기록 향상이 둔화되는 상태라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기록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자는 1백m 달리기에서 9.73초의 기록으로 우승하고 여자는 10.57초로 우승한다고 전망했다. 특히 여자의 기록 향상이 더 빠르기 때문에 2156년 올림픽에서는 95%의 정확도로 여자가 남자를 0.019초 차이로 앞선다고 밝혔다.
데이텀 교수는 “여자의 기록 향상 속도가 남자를 앞선 이유는 동구권 여자 선수들이 대거 약물을 복용했기 때문이며 이를 금지한 90년대 이후 여자의 기록 향상이 느려졌다는 말이 많았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여자는 근력과 헤모글로빈 부족해
테이텀 교수의 예언은 과연 현실로 나타날까.
많은 스포츠 생리학자들은 남녀 운동 능력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남자와 여자는 호흡량, 근육량 등 신체조성 비율, 근력, 헤모글로빈의 양에서 차이를 보여 운동 능력도 차이가 난다”며 “남녀의 선천적 운동 능력 차이가 역전될 수 없다”고 말했다.
우선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근력에서 남자가 단연 앞선다. 남자는 신체에서 근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하지만 여자는 23%에 불과하다. 근육 섬유의 하나인 지근섬유의 단면적이 남자가 여자보다 35% 넓은 것도 타고난 유리함이다. 여자는 같은 시간을 운동해도 남자만큼 지근섬유가 넓어지지 않는데 이는 지근섬유를 만드는데 필요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여자가 남자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근력의 차이는 체지방의 차이에서도 많이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체지방 비율이 높다. 일반인은 남자의 경우 체지방율이 15%, 여자는 25%다. 잘 훈련된 육상 선수의 경우 남자 선수들은 평균 체지방율이 7%지만 여자 선수는 16% 정도다. 여자는 사춘기 이후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늘면서 남자와 달리 젖가슴과 엉덩이에 지방 축적이 많다. 체지방이 많을수록 근육이 적어 근력과 순발력이 떨어지게 된다.
산소 운반 능력도 여자가 떨어진다. 피속에서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은 여자가 남자보다 15% 적고 심장에서 피를 내뿜는 심실의 부피도 여자가 남자보다 작아 운동에 불리하다. 남자의 최대 산소 이용능력은 1분에 3.5L다. 그러나 여자는 1분당 2L로 절반 수준이다. 특히 남녀의 헤모글로빈 양을 똑같이 만들어 운동을 시킨 실험에서도 남녀의 산소 이용량이 달랐다. ‘구조적으로’ 남녀의 운동 능력이 다르다는 주장은 이밖에도 많다.
그러나 남녀 운동 능력의 차이를 다르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남녀에게 똑같은 지구력 운동을 시켰을 때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은 지방을 사용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적게 사용했다. 일부에서는 이 때문에 마라톤 같은 지구성 운동에서 여자가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철인 경기 등 ‘극한 지구성 운동’ 에서 앞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수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1백m에서 마라톤(42.195km)까지 선수들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주로 탄수화물을 태운다. 그러나 이 거리를 넘어서면 탄수화물보다 지방을 많이 태워 에너지를 얻는 효율이 높은 쪽이 유리하다. 몸 안에 탄수화물보다 지방을 더 많이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에서 여자가 남자 앞설 수도
국민대 이대택 교수(체육학과)는 “1996년 남아프리카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훈련된 남자와 여자 선수를 오랫동안 달리게 했더니 43.195km까지는 여자가 남자에 못지않게 달리더니 이 거리를 넘어서면서 여자가 남자보다 우수한 경기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56km 달리기에서 같은 기록을 가진 남녀 선수는 90km 경기에 가면 여자가 남자를 앞선다는 연구도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42km까지는 남자가 더 우수하고 42-66km까지는 남녀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으며 이후에는 여자가 점차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쉽게도 현실은 아직 이론을 따라잡지 못한다. 실제 철인 3종(트라이슬론) 경기에서 아직까지는 남녀의 차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트라이슬론연맹 기우경 차장은 “지난해 올림픽 철인 3종 경기에서 남자 우승 기록은 1시간 51분 7초로 여자의 2시간 4분 43초보다 앞선다”고 말했다. 전체 육상 경기의 남녀 차와 비슷한 10.9%의 차이다. 다만 여자 선수가 남자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적은 것이 변수다.
일부에서는 기존 지구성 운동의 훈련 방법이 남자에게만 맞춰져 있어 여자가 불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 선수는 경기 며칠 전부터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집중적으로 먹는다. 탄수화물을 분해해 만든 글리코겐을 몸 안에 최대한 많이 쌓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 방법이 꼭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자에게 맞는 방법 즉 가장 효과적으로 지방을 이용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이 나온다면 여자가 더 좋은 기록을 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에서 남녀 대결은 몇 차례 벌어졌다. 골프에서는 여자 1위 아니카 소렌스탐이 2003년 5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한 남자 대회에 도전한 이후 공식과 시범 경기에서 여러 선수들이 ‘성대결’ 에 나서고 있다. 박세리 선수는 지난해 한 대회에서 컷 오프에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직 여자의 완패다. 골프 전문가들은 15-25m의 거리 핸디캡을 줘야 남자와 여자가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테니스에서도 1973년 당대 최강 여자 선수였던 빌리 진 킹과 1992년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각각 ‘성대결’ 을 펼친 적이 있다. 킹은 이 경기에서 이기긴 했지만 환갑을 앞둔 남자 선수에게 이겨 큰 의미가 없다. 구기 종목에서는 성인 여자 선수의 실력이 남자 중고등학교 학생 수준과 비슷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 전문가들은 양궁, 볼링, 사격 등 힘보다는 정확성과 섬세함이 더 중요한 경기의 경우 여자가 남자를 앞설 수도 있다고 본다. 볼링은 현재 남자가 약 5점 정도 앞서는데 이는 육상 경기보다 낮은 6% 정도의 차이다. 양궁은 차이가 2점에 불과하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스포츠 경기에서 여자가 다소 불리해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데이텀 교수는 “결과는 두고 봐야 되겠지만 남자와 비교해 소수의 여성만이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만큼 많은 여자들이 스포츠에 도전한다면 2156년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