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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옷장 속엔 이렇게도 입을 옷이 없는지. 그렇게 휴대전화를 열고 새 옷을 주문한다. 결국 몇 번 입지도 않은 옷들은 헌옷수거함으로 향한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2년 연간 국내 의류 폐기물은 무려 10만 t(톤)이다. 헌 옷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에 수출되지만, 이조차도 너무 많아 처치곤란이다. 김은하 작가는 하마터면 그냥 버려질 뻔한 옷들을 멋진 작품으로 승화하는 예술가다. 7월 29일 김은하 작가를 화상으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당신은 왜 포기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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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쓸모가 없어진 옷들로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드는 작가 김은하입니다. 2019년에 옷으로 만든 햄버거 모양의 졸업작품을 전시한 게 이 일을 시작한 계기가 됐죠. 우연히 영국의 미술품 수집가인 시클리티라 부부가 제 작품을 보게 됐고, 한국 현대 미술 작가 전시회인 ‘코리안 아이 2020 특별전’에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작품을 만들 때 예술적 영감은 일상적인 것에서 얻어요. 작업은 주로 옷의 프린팅이나 질감에 집중해서 약간의 회화적인 표현을 더하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Q.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졸업작품이 의외네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미대에 왔는데, 막상 대학에 입학하니까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때 마침 조형 연구라는 전공 수업을 들었어요. 그림 말고 다른 것을 이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어떤 작품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으니 교수님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다가가 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보니 제가 옷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옷을 자주 그리고, 어릴 적부터 청바지로 가방을 만들거나 옷 위에 그림을 그려서 리폼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옷을 이용해 작업을 해보기로 했어요. 제가 만일 의류학과 수업을 들었다면 리폼이나 디자인 등을 했을 텐데, 서양화과 수업이니까 다르게 접근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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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에 쓸 옷은 어디서 구했어요?
처음에는 제 옷으로 했어요. 기왕이면 제가 좋아하는 옷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죠. 저는 물건을 버리기 싫어하는 병 같은 게 있어요(웃음). 그래서 못 입는 옷인데도 버리지 못하는 게 꽤 있었어요. 버리지 않을 거면 차라리 이걸로 작품을 만들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자는 생각도 들었어요.
Q.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다 보면 옷이 부족하진 않나요?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작업하다 보니 재료가 부족해졌어요. 그래서 동묘 벼룩시장에 파는 구제 옷을 사기도 하고 친구들한테도 옷을 받았죠. 20대 초반에는 다들 유행에 민감하다 보니 옷을 많이 사 모으잖아요. 그래서 한 해가 지나면 못 입는 옷이 많았어요. 친구들에게 버릴 거면 제게 달라고 했죠. 나중에는 소문이 나서 건너 건너 아는 친구에게 옷을 전달받기도 하고요.
주로 계절이 변해서 옷장 정리하는 시즌에 옷을 주겠다는 연락이 많이 와요. 부모님이 입으시던 오래된 옷을 주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특이한 옷들도 많았는데, 작업하기엔 오히려 더 좋았어요. 지금까지 받은 옷을 큰 택배 상자에 꽉 눌러 담으면 30박스쯤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재료 걱정은 없어요.
Q.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작품마다 작업 과정이 다양해요. 아이디어를 따라 재료를 찾는 경우도 있고, 재료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도 있죠. 기본적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택배 상자를 활용해 작품의 뼈대를 먼저 만들어요. 그다음 옷을 위에 대보면서 어떤 게 들어가면 괜찮을지 비교해봐요. 괜히 해체했다가 다른 작품에 못 쓸 수도 있으니까요. 딱 어울린다 싶으면 자르거나 찢어서 콜라주 형식으로 천을 붙이거나 바느질해서 작품을 만들어요. 최대한 외부에서 옷을 따로 안 구하려고 옷 위에 원하는 색을 염색하기도 해요.
Q. 옷에서 작품에 사용하고 남은 부분은 어떻게 하나요?
옷을 잘라서 사용하다 보면 천 조각이 남잖아요. 이걸 그대로 버리면 또다시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업사이클링 작품이라고 하면서 더 큰 피해를 주면 모순적이잖아요. 그래서 큰 작품을 만들 때 남은 자투리 천으로 작은 작품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또 남은 천 조각들을 덧붙여서 키링 같은 걸 만들었죠. 단추 같은 부자재를 따로 모아놓은 통도 있어요.
Q. 쓰고 남은 천은 작은 작품, 또 작은 작품을 만들면서 최대한 쓰레기를 안 만들려고 하는군요. 이렇게 환경에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있을까요?
업사이클링 작품을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 눈이 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관련 SNS 게시물이 제 알고리즘에 많이 뜨기도 하고요(웃음).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동물들이 방치된 옷더미에 올라가 그것들을 먹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의류 폐기물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느꼈어요.
Q. 작품 활동 외에도 환경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이 있나요?
여러 사람에게 옷을 전해받으면서 사람들이 정말 많은 옷을 사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저라도 옷을 덜 사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들죠. 옷을 사더라도 고민을 거듭해서 딱 한 벌만 사요. 주로 구제 옷가게를 애용해요. 그 외에도 거창하진 않지만, 분리수거를 확실히 하고 냉난방도 최소한만 하려고 해요.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다른 사람과 중고 거래를 하는 등 소소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서 언젠가 나비효과처럼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제 작품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대상을 표현해요. 이런 작품들이 보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쉽게 다가가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림이나 평면적인 작품을 지금의 작품과 접목하는 방식 등으로 작품의 스펙트럼도 더 넓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