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를 가장 먼저 활용하는 분야는 의학이다. 뉴럴링크의 설립자 일론 머스크도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을 제공하는 ‘바이오닉 비전’을 중요한 목표로 제시했을 정도다.
오늘날 의학계에서 BCI 기술은 마비 환자의 거동을 돕고, 의사소통의 창구가 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 2023년에는 이 두 분야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가 나왔다.
‘디지털 브릿지’로
끊어진 뇌와 척수를 잇다
햇빛 따뜻한 공원 한쪽, 40세 남성 게르트-얀 오스캄이 연구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휠체어에서 일어난다. 보행기를 잡고 한 걸음씩 발을 뗀다. 28살 때 자전거를 타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처음 내딛는 걸음이다.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일어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러 갔습니다. 이 변화가 제게는 엄청난 기쁨이자 기적입니다.” 오스캄이 남긴 소회다.
2023년 5월, 그레고아르 쿠르틴 스위스 로잔공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뇌와 척수에 기계를 삽입한 하반신 마비 환자가 걷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doi: 10.1038/s41586-023-06094-5 쿠르틴 교수팀이 논문과 함께 공개한 영상에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40세 네덜란드인 남성 게르트-얀 오스캄이 보행기를 이용해 걷는 모습이 담겼다.
뇌에서 만들어진 전기 신호는 척추 내부를 지나가는 중추 신경인 ‘척수’를 통해서 다리로 전달된다. 목이나 허리를 다쳐 척수가 끊어지면, 그 아래 부위로는 뇌가 내린 명령이 전달되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다친 신경은 회복되지 않아 재활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연구 초기인 2017년, 오스캄이 시도한 방법은 척수에 다리를 움직이는 전기 자극을 주는 방법이었다. 이때는 컴퓨터로 원하는 움직임을 입력하면 전기 자극이 가해지는 방식이었다. 본인의 생각이 아닌 외부 자극으로 움직이니, 오스캄에게는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연구팀은 오스캄의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임플란트 장비인 ‘디지털 브릿지’를 이식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디지털 브릿지는 뇌와 척수에 이식한 BCI 장치를 의미한다. 뇌와 연결된 장비는 다리에게 움직임을 명령하는 뇌의 신호를 받아 처리 장치로 보낸다. 웨어러블 처리 장치는 뇌 신호에서 필요한 운동 자극을 추출한 후, 척수에 무선으로 전송한다. 척수에 부착된 신경 자극기는 전송받은 신호를 다시 신경 자극으로 변환한다. 끊어진 척수를 대신해 디지털 브릿지를 통해 뇌 신호를 다리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브릿지가 보여준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현재 오스캄은 보행기의 도움을 받기만 하면 직접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산책도 한다. 걷기 훈련을 한 후 디지털 브릿지를 끈 상태에서도 뇌에서 다리로 신경세포들의 전기 신호가 전달됨도 관찰했다.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척수 신경의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쿠르틴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기술이 상용화돼 사고 후 몇 주 내에 디지털 브릿지 수술을 할 수 있다면, 환자들의 회복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라 밝혔다.
발성 근육 마비 환자,
아바타로 대화하다
연구실 한가운데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이 모니터를 마주 보고 앉아있다. 그의 이름은 앤. 앤은 18년 전 심각한 뇌간 뇌졸중을 겪은 후 발성 근육이 마비됐다. 모니터에는 3D 여성 아바타가 떠 있다. 긴장이 감도는 순간, 앤의 머리에 임플란트 장비가 연결되자 모니터 속의 아바타가 움직이면서 말을 시작한다. 앤의 뇌파를 통해 그가 하려는 말을 읽어낸 것이다.
“나는 재활 시설의 환자들이 저를 보고 그들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길 바랍니다. (중략) 저는 장애가 우리를 멈추거나 느리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앤을 닮은 아바타, 아니 앤이 화면 속에서 말했다.
뇌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대화를 하기 힘들 정도의 근육 마비를 겪기도 한다. 심각한 뇌졸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 파킨슨병 환자가 대표적이다. 뇌가 안면 근육이나 발성을 담당하는 근육을 제어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 환자는 보호자나 간병인과 의사소통의 문제를 겪는다. 눈동자나 머리의 움직임을 쫓아 대화를 하는 보조 장비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화 속도가 느려 간단한 표현만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창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신경외과 교수팀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의사소통을 돕는 BCI 기술을 연구했다. 연구팀이 2023년 8월 23일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는 이 오랜 노력의 최신 결정체다. doi: 10.1038/s41586-023-06443-4
연구팀은 앤의 뇌 피질에 253개의 전극을 이식했다. 이 전극은 얼굴, 턱, 후두, 혀 등 발성과 연관된 근육을 움직이는 부위의 뇌파를 측정했다. 그후 연구팀은 앤에게 1024개의 단어가 포함된 문장을 보여주며 따라 말하도록 훈련시켰다. 근육이 마비돼 실제로 말이 나오진 않지만, 말을 할 때의 뇌파를 BCI 장치에 받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이때 나오는 뇌파를 사용해 세 가지 인공지능(AI) 모델을 훈련시켰다. 각각의 AI 모델은 인공 신경망을 통해 앤이 말하는 단어, 목소리, 표정을 따로따로 재구성했다. 연구팀은 마지막으로 앤의 뇌 신호에 따라 표정을 짓고 말을 하는 3D 아바타를 개발했다. 아바타의 목소리는 뇌졸중을 겪기 전 앤의 목소리가 녹음된 파일을 이용해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앤은 말과 표정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게 됐다. 평균적으로 분당 78개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일반적으로 분당 평균 150개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속도의 절반 정도에 다다른 것이다. 1024개의 단어 세트를 사용할 때 오류율은 25%였는데, 대화에서 쓰는 어휘가 119개로 줄어들면 오류율도 8.2%로 감소했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사용자가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선 BCI 장비를 만드는 것이다. 창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앞으로 완전하고 구체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복원할 것”이라 밝혔다.
BCI 기술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려면
종합편성채널의 TV 프로그램. 한 척수 손상 마비 환자가 뇌파로 움직이는 외골격 로봇을 입는 모습을 출연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로봇을 착용한 환자가 일어서서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출연자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지른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BCI 기술이라는 혁신이 세상을 구원하는 시대가 온 걸까.
“BCI 기술은 이미 의료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널리 쓰이려면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외골격 로봇을 만든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원(KIST) 미래국방 국가기술전략센터장의 말이다.
BCI 기술을 의학적으로 활용하는 연구는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원(KIST) 미래국방 국가기술전략센터장이 이끄는 바이오닉스연구센터도 그중 한 곳이다. 김 센터장은 2020년,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비침습형 BCI 장치를 이용해 뇌파로 움직일 수 있는 외골격을 선보였다. BCI 기술을 이용해 뇌파를 읽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식사를 도와주는 식사보조 로봇도 이 연구팀의 작품이다.
3월 6일 KIST에서 만난 김 센터장은 “뉴럴링크를 포함해 최근 BCI 연구는 급격한 발전을 거쳤다”면서도 “의료용 BCI가 상용화되려면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기술이다. BCI 장치의 정확도와 안전성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닉스연구센터팀은 두피에 센서를 붙여 뇌파를 측정하는 ‘비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간편하지만 그만큼 정확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과제다. 두개골을 열어 뇌에 직접 전극을 연결하는 ‘침습적 방식’은 정확도가 높지만 위험하다. 최소한의 부위만 수술하면서도, 뇌 손상 없이 안전하게 교체할 수 있는 BCI 장비 개발이 필요하다.
다른 문제는 가격이다. 현재 여러 연구팀에서 쓰는 로봇과 BCI 장비들은 실험용이다. 앞서 소개한 스위스 연구팀의 디지털 브릿지도 더 많은 환자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저렴해져야 한다. 김 센터장은 “안전성이 확보되면 환자에게 BCI를 적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가격 저항성은 상당할 것”이라 전망했다. 해외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 중인 침습형 BCI도 한 사람에게 수억 원의 연구 비용이 들 것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BCI 기술을 환자들한테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혁신적 기술이 나오는 것과, 그 기술이 환자들에게 잘 적용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김 센터장은 최근 척수 손상 마비 환자 6명을 대상으로 뇌파로 움직이는 외골격의 사용성 평가를 완료했다. 실제 환자가 외골격 로봇을 착용하고 움직일 때 어떤 부분이 편하고, 불편한지 묻는 작업이다. 김 센터장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척수 마비 환자가 느끼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척수 마비 환자의 경우 하반신의 감각이 없기 때문에 외골격을 착용한 기분을 ‘양반다리를 하고 서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외골격을 착용해도 매우 불안정한 상황으로 느끼는 거죠. BCI를 제대로 적용하려면 사용자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뉴로맨서’를 쓴 미국의 SF 작가 윌리엄 깁슨은 이런 말을 남겼다. BCI만큼 이 표현에 잘 들어맞는 기술도 없을 것이다.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고, 하반신 마비 환자가 걷는 세상은 이미 와있다. 그러나 이 미래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스캄은 6년의 연구와 훈련을 통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앤이 모니터를 통해 말하기 위해서 창 교수팀은 10년 넘는 선행 연구를 했다.
BCI라는 미래를 실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누리기 위해서는 가격, 안정성, 편의성 등 여러 측면에서의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 너머에서 BCI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