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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럴링크] 뉴럴링크가 이뤄낸 혁신은 소프트웨어 아닌 하드웨어

2024년 2월 20일, 일론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의 음성 대화 스페이스 행사를 통해 “뉴럴링크 첫 임상시험 참가자가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였다”고 발표했다. 1월 29일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한 지 3주만에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는 거다. 이에 놀라움을 표하는 대중도 있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이미 20년 전부터 가능했던 기술이라며 비판했다.


뉴럴링크가 보여준 건 혁신일까 허울 좋은 허상일 뿐일까.

 

테슬라, 스페이스X, 그리고 뉴럴링크. 혁신적이면서도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는 미국의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전기 자동차, 우주 산업에 이어 뇌공학 기술에까지 손을 뻗쳤다. 뉴럴링크는 2016년 머스크를 비롯한 7명의 과학자와 공학자에 의해 설립된 뇌공학 기업으로, 2017년 3월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머스크는 웹사이트 ‘웨이트 벗 와이(Wait But Why)’와의 인터뷰에서 “뉴럴링크는 4년 안에 중증 뇌 손상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AI)과 뇌를 연결해 인간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엄청난 포부를 보였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뉴럴링크는 2019년, 2년 만에 그간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doi: 10.2196/16194 2021년 4월에는 뇌에 칩을 이식한 원숭이가 뇌파만으로 ‘퐁’이라는 고전 게임을 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했다. 퐁은 판을 이용해 사방팔방으로 튀는 공을 반대편에 보내는 탁구와 유사한 게임으로, 마우스 커서만으로 간단히 플레이할 수 있다. 원숭이의 뇌파로 마우스 조작이 가능함을 보인 것이다.

 

2023년 5월 인간 임상시험에 대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뉴럴링크는 같은 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4년 2월 20일, 뉴럴링크 첫 임상시험 참가자가 생각만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과연 최근 뉴럴링크가 보인 행보는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마우스 조작, 20년 전부터 가능했다?

 

뉴럴링크의 임상시험과 같이 뇌파 측정기, 전극이 달린 칩 등의 장치를 통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기술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劁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라고 부른다. 1973년, 자크 비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컴퓨터와 뇌를 결합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BCI 개념을 제안한 것이 시초다. doi: 10.1146/annurev.bb.02.060173.001105

 

BCI 기술은 뇌가 보내는 다양한 신호를 통해 뇌 활동을 측정한다. 이때 핵심이 되는 뇌 신호가 전기 신호인 ‘뇌파’다. 뇌의 신경세포, 즉 뉴런이 서로 소통할 때 전기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본다고 하자. 먼저 망막에 있는 시세포가 만든 전기 신호가 시신경을 통해 대뇌 뒤쪽의 시각피질로 흘러간다. 그러면 시각피질의 뉴런이 활동하면서 뇌파가 흐르며 정보를 교환하고, 우리가 눈으로 본 사물을 인식한다. 따라서 뇌파를 분석하면 뇌 활동을 가장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뇌파를 측정하는 방법은 두개골을 열어 장치를 삽입하는 ‘침습적 방식’과 두피에 장치를 부착하는 ‘비침습적 방식’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비침습적 방식은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아도 돼서 비교적 안전하지만, 두개골이 뇌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침습적 방식보다 훨씬 적다.

 

예를 들어 비침습적 방식으로 얻는 뇌파로는 ‘팔이 움직이고 있다’ 정도만 알 수 있다면, 침습적 방식으로는 팔이 움직이는 방향과 손가락의 움직임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다. 따라서 뇌파로 고차원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침습적 방식이 불가피하다. 뉴럴링크도 침습적 방식을 사용한다.

 

2002년 존 도너휴 미국 브라운대 신경과학과 교수팀이 처음으로 칩습적 방식을 이용해 원숭이의 뇌파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doi: 10.1038/416141a 뉴럴링크가 2021년에 해낸 일을 이미 19년 전에 성공한 것이다. 게다가 도너휴 교수는 3년 뒤인 2005년 사지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삽입해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데도 성공했다. doi: 10.1038/nature04970 즉 머스크가 발표한 원숭이와 인간 실험은 적어도 20년 전에 이미 성공을 거둔, 전혀 새로운 결과가 아니다. 그렇다면 머스크의 혁신은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뉴럴링크가 보여준 변화, 하드웨어의 혁신

 

“머스크가 공개한 원숭이 실험 장면을 볼까요. 자세히 보시면 원숭이 머리 위에 달려 있는 장치가 아예 없습니다. 장치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두피 밑으로 넣었거든요. 이게 머스크가 보여준 혁신입니다.”

 

BCI 전문가 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뉴럴링크가 개발한 하드웨어에 주목했다. 거대하고 불편하며 뇌손상의 우려가 있는 기존 침습적 BCI 장비를 가볍고 안전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뉴럴링크는 뇌파를 전달받기 위해 ‘N1 임플란트’ 칩을 이용한다. N1 임플란트 칩은 5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원판에 64개의 실이 붙어 있는 형태다. 이 실의 두께는 머리카락의 10분의 1 정도로 아주 얇으며, 실 하나당 뇌파를 읽는 전극이 16개씩 부착돼 있다. N1 임플란트 칩 한 개에 1024개의 전극이 달린 셈이다. 이 칩은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어서 외부에 뇌파를 전달하기 위해 따로 전선을 연결할 필요가 없다.

 

뉴럴링크 연구진은 피실험자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낸 뒤,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로 뇌를 관찰하며 ‘R1 로봇’을 이용해 N1 임플란트 칩을 이식한다. R1 로봇은 MRI로 파악한 혈관의 위치를 피해서 4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 굵기의 뾰족한 바늘로 뇌에 N1 임플란트의 실(전극)을 모내기하듯 심는다. 그 덕분에 수술 후 머리카락이 자라면 BCI 장치가 감쪽같이 숨겨진다.

 

이전까지 침습적 BCI 실험에는 미국 생명공학 기업인 ‘블랙록 뉴로테크’가 개발한 ‘유타 어레이’ 칩이 주로 사용됐다. 유타 어레이에는 딱딱한 바늘 형태의 전극이 약 96개 박혀 있다. 이 칩을 뇌에 한꺼번에 박은 뒤 외부로 선을 빼서 컴퓨터와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유타 어레이 칩은 뇌에 장착하는 동안 뇌혈관을 건드릴 가능성이 커 뇌출혈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게다가 딱딱한 칩 때문에 뇌조직이 손상될 우려도 있다. 조 교수는 “대뇌피질의 강도는 두부 정도인데, 여기에 금속 바늘을 박아놓은 격”이라며, “실험 대상이 활동하면서 두뇌가 흔들리면 바늘 주변 뇌 부위에 손상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뇌손상은 2차 문제를 일으킨다. 손상된 부위로 면역세포가 몰려들면서, 전극이 뇌파를 보내는 뉴런에서 멀어져 신호의 질이 떨어진다. 강도가 강한 칩이 뇌손상을 일으키고, 그 결과 칩에 전달되는 뇌파 신호까지 약해지면서 굳이 침습적 방식을 사용해 BCI 장비를 이식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N1 임플란트는 기존에 사용되던 칩의 단점을 크게 보완했다. MRI로 보면서 심는 데다가 딱딱한 칩 대신 유연한 실을 사용해 뇌 손상을 줄일 수 있다. 게다가 64개의 실 가닥을 여러 부위에 심어 뇌파 측정 반경을 넓힐 수 있다. 김성필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BCI는 성장 속도가 빠른 기술 분야 중 하나였는데, 기존 하드웨어로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적이라 어느 순간 정체된 느낌이 있었다”며, “뉴럴링크의 기술과 같이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고 다중 영역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데 한몫을 했다”고 말했다.

 

머스크가 쏘아올린 BCI 상업화의 신호탄

 

기자가 만난 국내의 BCI 연구자들은 뉴럴링크가 BCI 연구 전반의 주목도를 높였고, BCI 산업을 부흥시키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김 교수는 “BCI 기술은 이제 사업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연구자들끼리만 공유되던 지식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 대중에게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뉴럴링크로 인해 BCI 산업 전반에 투자가 늘어나고 경쟁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뉴럴링크가 선보인 각각의 기술만 놓고 보면 그들이 독자적으로 처음 개발한 기술은 아니다. 유연한 전극, 바느질 로봇, 무선 통신 기술은 이미 다양한 그룹에서 오랫동안 연구돼 왔다. 하지만 뉴럴링크는 이 모든 기술을 통합해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형태로 세상에 내놨다. 이런 점에서 임창환 한양대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뉴럴링크를 ‘아이폰’에 비유했다. 그는 “기존에 있었던 기술을 최적화해서 집약해 아이폰이 탄생한 것처럼, 머스크 특유의 추진력으로 뿔뿔이 흩어진 연구를 한 데 모아서 일종의 종합 예술을 이뤘다”고 말했다.

 

뉴럴링크가 BCI의 하드웨어적 발전을 선도하고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기존보다 나은 새로운 기술이 나오진 않았다. 또한 BCI 기술을 활용해 신체 기능을 복원하거나 향상시키는 초반 목표까지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침습적 방식의 가장 큰 허들은 안전성”이었다며, “안전성 측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기 때문에 침습적 방식도 상용화에 상당히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BCI는 의료부터 시작해 다양한 영역으로 더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의 목표는 여전히 높다. 다음 파트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BCI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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