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 ‘도파민’
서울대 트렌드분석센터가 2024년의 소비트렌드 중 하나가 ‘도파밍’이라고 발표했다. 보상회로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수집한다는 뜻의 ‘파밍(farming)’이 합쳐진 단어로,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되는 활동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도파민을 추구하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긍정적 자극(보상)이 있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가 이 자극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후에도 같은 자극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은 의식주를 넘어 자아실현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그랬던 도파민에 대한 시선이 최근 곱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대두되는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쉽고, 빠른, 즉각적인 즐거움만을 쫓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 렘브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중독의학과 교수는 저서 ‘도파민네이션’에서 “스마트폰은 현대의 피하 주사 바늘”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빠르고 쉽게 만날 수 있는 통로다. 2월 9일 연세대에서 만난 김정훈 연세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도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도파민의 역사와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도파민의 역사는 다르다”고 말했다.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보상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보상이 설 자리를 뺏는다.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될 때 우리 뇌는 도파민 수용체 수를 줄인다. 이런 상태에선 취미 생활이나 운동 혹은 공부를 하며 얻는 도파민이 이전과 달리 덜 재미있게 느껴진다. 때문에 즉각적인 자극에 익숙해지면, 보상을 얻는 데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운동과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오늘날 사용하는 ‘도파민 중독’이란 표현은 이처럼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인스턴트 도파민’을 추구하는 행동과, 그로 인한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쓴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바이브컴퍼니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에서 도파민은 즐거움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재밌는 웹툰 추천해 줘. 도파민 필요함”과 같은 식이다. 단어의 유행은 소셜 미디어에서의 언급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이브컴퍼니에 따르면 2020년 11월에는 고작 2200번 언급됐던 도파민은 2023년 10월 언급량이 6만 6122건으로 무려 30배가 늘었다.
오해: 과도한 도파민이 뇌를 망친다?
그렇다면 과학, 의학, 심리학 분야 전문가들은 도파민 중독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은 먼저 단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도파민 중독이란 키워드가 나란히 붙어있어, 사람들이 도파민에 중독되는 듯한 오해가 있다. 2월 6일 한국뇌연구원에서 만난 김주현 정서인지질환 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과학적으로 도파민 중독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쾌락적 자극에 집착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도파민을 갈구하는 행동과 실제 중독을 구분해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행동이 반복되고 계속해 이어지면 상태가 된다. 하지만 행동이 반복되다가도 언젠가 스스로 그만두기도 한다면 이를 상태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된다. 국제보건기구(WHO)가 질병으로 구분한 ‘게임 중독’이나 ‘인터넷 중독’ 등에 대한 지위가 정신의학 안에서는 다소 불분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중독이라는 질병을 일으킬 수준으로 보상회로를 망가뜨리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다. 신경과학에서 중독은 ‘보상회로가 고장 나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다. 즐거운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신경회로인 보상회로를 강하게 자극하고, 또 그 자극이 지속되면 보상회로를 작동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과다 분비됨에 따라 보상회로가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기간이 길지 않아 연구 결과가 종합적, 체계적이지 못하다. 전 세계 정신의학 진단 기준인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 제5판(DSM-5)에선 행동 중독 중 도박 중독만이 의학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만든 정신 질환 진단 기준 및 분류 체계. 전 세계 정신의학 진단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3년 출판된 제 5판(DSM-5)이 현재 사용되고 있다.)
도파민 중독이라 표현하는 행동이 실제 도파민 보상회로만의 작용인지도 불분명하다. 김정연 한국뇌연구원 정서인지질환 연구그룹장은 “소셜 미디어 콘텐츠를 중독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데 보상회로 말고도 강박증회로, 습관회로 등이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일을 하다 말고 혹은 공부하다 말고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중독적인 이유 또 누군가는 습관적인 이유일 수 있다. 또 강제로 소셜 미디어 접속을 막는다면 사람들마다 느끼는 감정의 폭과 깊이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아쉬운 정도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초조함을 느낄 수도 있다. 김정연 그룹장은 “만약 초조함으로 손이나 발이 떨리는 등의 불안 행동까지 발현된다면 그땐 강박증회로까지 도파민 중독에 관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진실: 중독보단 ‘과의존’ 상태로 봐야
“신경전달물질로 모든 걸 환원시키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월 6일 경북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에서 만난 신성만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사람은 심리적 기본 욕구인 소속감과 자율감, 유능감과 목표감을 쫓아 과의존을 행한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용자들은 저마다 원하는 심리적 요소가 있고,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파민에 초점을 맞추는 단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왜 소셜 미디어에 오래 머무는지에 대해서는 놓치기 쉽다.
때문에 신 교수는 “도파민의 경우 중독보다 과의존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표현엔 ‘의존을 줄여야 한다’ 혹은 ‘의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방향성까지 내포돼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도파민 과의존’이란 표현을 쓴다면 과의존 상태에 대한 심리적 메타인지가 가능할 수 있다.
“도파민은 게임이나 마약, 알코올처럼 외부의 요인이 아닌 자기 몸을 가리킵니다. 즉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 행동이 단어에 드러나지 않죠.” 도파민 중독이 유독 자기 반성적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 묻자, 신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게임 중독의 경우 게임이란 대상이 전면에 드러나 게임을 하는 행동에 부정적인 낙인을 찍어버린다. 하지만 도파민 중독이란 그렇지 않다. 어떤 행동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표현에서 단어 사용자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김 그룹장은 “도파민 중독이란 표현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무의식적인 소셜 미디어 접속 및 콘텐츠 소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파민 중독이 본인 상태를 인정한 뒤 사용하는 표현이라면, 이는 인스턴트 도파민에서부터 멀어지려는 실천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우울증의 유병률은 높지만 조현병의 유병률은 낮은데, 이는 환자 본인이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느냐가 질병 진단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유병률은 일정 기간 동안 인구 집단 내에서 해당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비율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발표했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은 7.7%다. 질병에 관해 잘 알려져 있고, 당사자가 스스로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나 분위기가 일조한 결과다. 반면 인구 집단 내 약 1%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조현병의 유병률은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통계 없이 0.4~0.7%로 추정되고 있다. 당사자가 질병을 인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상태를 부정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도파민 중독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기술 발전을 통한 즉각적인 보상은 우리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도파민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우리 뇌가 이런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더 자세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 이유를 PART 2와 PART 3에서 각각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