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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자리 춘분점

가을밤 하늘에서 봄 향기를 맡다?

계절이 지나가는 가을 밤하늘은 쓸쓸하다. 수많은 1등성이 하늘을 화려하게 밝히는 여름이나 겨울과 달리 가을 밤하늘엔 1등성이 하나 밖에 없어 더 그렇다.

그런데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별자리 지도를 보다보면 난데없는 ‘봄’과 마주친다. 남쪽하늘 물고기자리에 있는 춘분점. 봄의 시작을 알리는 춘분점이 왜 가을 하늘에 있을까?
 

10월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춘분점은 주변에 밝은 별이 없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다.
해마다 춘분(3월 21일경)이면 태양은 정확히 이 위치에 오지만 대낮이라 배경 별자리를 볼 수 없다.



밤하늘에서 ‘태양의 길’ 찾기

춘분은 매년 3월 21일 즈음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날 이후부터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보다 길어지기 때문에 예로부터 춘분을 한해의 시작이나 부활을 의미하는 날로 삼았던 곳이 많았다.

고대 로마의 달력은 춘분이 1월 1일이었으며 기독교에서는 춘분 이후 보름달이 뜨고 난 첫 주일을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로 삼았다.

춘분날 태양이 위치하는 곳을 별자리 지도에 표시한 춘분점은 천문학에서 처음을 뜻하는 기준으로 쓰인다. 춘분점은 별자리 지도에서 태양이 천구의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넘어오는 점이자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와 천구의 적도가 만나는 점으로 표시된다.

천문학자들은 춘분점을 지구 공전 궤도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행성의 공전 궤도를 수식으로 표현할 때는 항상 이 춘분점에서 시작하고, 우리가 하늘을 볼 때 사용하는 적도 좌표계도 춘분점을 경도의 시작점으로 삼는다.

춘분점은 하늘 어디에 있을까? 춘분에 태양이 정확히 춘분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때 태양의 위치가 춘분점이다. 하지만 대낮에 태양과 그 배경이 되는 별자리를 함께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위치가 별자리 지도에서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춘분점을 밤하늘 별자리에서 찾으려면 가을 밤하늘을 뒤져야 한다.

춘분점은 물고기자리에 있다. 물고기자리는 10월 동안 매일 밤 자정쯤 하늘 높이 떠오른다. 하지만 밤하늘에서 춘분점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천구의 북극에 2등급의 밝은 북극성이 있는 것처럼 춘분점 가까이에 밝은 별이 있으면 좋겠지만 춘분점의 배경이 되는 물고기자리에는 4등급 이상의 별이 하나도 없을 만큼 한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기원전 2000년쯤 이미 춘분점의 위치뿐만 아니라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도 정확히 파악했다. 그들은 춘분점이 있는 별자리를 시작으로 태양이 지나가는 별자리 12개를 황도 12궁으로 정해 점성술에 사용했다. 도대체 ‘태양의 길’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만일 고대인들이 정확한 별자리 지도와 별의 이동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매일 밤 12시 정남쪽에 있는 별자리를 알아낸 뒤 별자리 지도에서 그 별자리와 정확히 반대 위치에 있는 별자리를 찾아 황도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구의 운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정리된 때는 한참 뒤의 일이다. 천문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해가 진 직후나 뜨기 직전 하늘이 어둑어둑할 무렵 태양 주변의 별자리를 관측해 태양이 있는 곳의 별자리를 가늠해 황도를 알아냈다고 추측한다.

그럼 지금과 같은 달력이 없었던 고대인들은 춘분이 언제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들은 음력 초하루 태양이 진 뒤 서쪽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과 주변에 있는 밝은 별의 위치로 1년 중 중요한 절기를 파악했다. 해마다 춘분 즈음이 되면 북서쪽하늘에서 초승달과 마차부자리의 1등성 카펠라가 함께 보이는데 이때를 1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01 춘분점은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 때문에 72년마다 서쪽으로 1°씩 이동한다. 현재 물고기자리에 있는 춘분점(십자가)은 2600년이 되면 물병자리로 옮겨간다.
02 별자리의 위치를 측정하고 있는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그는‘테트라비블로스’라는
점성술 책에서 춘분점의 이동을 상세히 다뤘다.



점성술로 알아낸 춘분점의 이동

춘분점은 ‘현재’ 물고기자리에 있다. ‘현재’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춘분점이 밤하늘에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춘분점은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때문에 약 2만6000년을 주기로 황도를 한 바퀴 돈다. 72년마다 서쪽으로 1° 움직이는 정도다.

춘분점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사실은 천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점성술에서도 의미가 크다. 점성술은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의 움직임으로 길흉화복을 점친다. 특히 사람이 태어난 때에 태양이 황도 12궁 가운데 어느 궁에 있었는지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점성술에서 황도 제 1궁은 양자리다. 이는 점성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춘분점이 양자리에 있었음을 뜻한다. 춘분점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히파르쿠스다. 점성술에 정통했던 그는 천체 관측을 하다가 춘분점의 위치가 양자리에서 상당히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양이 다른 별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점성술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기에 그는 춘분점이 정확히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하지만 하늘에서 춘분점을 찾기란 사막에서 수맥을 찾는 일만큼 어렵다. 히파르쿠스는 춘분점 대신 추분점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했다.하늘에서 춘분점의 정반대에 있는 추분점은 춘분점과 달리 근처에 길잡이가 되는 밝은 별 처녀자리 스피카가 있었기 때문에 스피카의 위치로 춘분점을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그는 춘분날 밤하늘 높이 떠오른 스피카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한 뒤 춘분점의 위치를 계산했다. 아니나 다를까. 춘분점은 양자리를 벗어나 물고기자리 근처에 있었다.

그는 이 결과를 수백 년 전 스피카의 위치 자료와 비교해 춘분점이 얼마나 이동했는지 계산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차운동의 주기도 처음으로 계산했다.

고대천문학을 집대성 했던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히파르쿠스의 기록을 토대로 ‘테트라비블로스’라는 점성술 책을 남겼다. 그는 여기에 황소자리에서 시작해 양자리와 물고기자리로 움직이는 춘분점의 위치를 상세히 다뤘다.

춘분점은 기원전 4525년경부터 황소자리에 있다가 기원전 1875년경부터 양자리로 넘어갔다. 기원전 100년부터 물고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춘분점은 2600년이 되면 물병자리로 옮겨갈 것이다.
 



이달의 천문현상) 올해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날은 언제일까? 보름달 아래서 쥐불놀이를 하고 부럼을 깨는 정월대(大)보름일까, 송편을 빚고 강강술래를 하는 추석일까?

보통 보름달 하면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이때 뜨는 보름달이 보통 때보다 더 크지는 않다.달은 지구를 정확한 원이 아닌 타원을 그리며 돌기 때문에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35만6000~40만6000㎞로 달라진다. 따라서 달이 지구에 가까이 오면 달은 크게 보이고 달이 지구에서 멀어지면 달은 작게 보인다.

달은 한달에 한번씩 지구를 공전하므로 가장 가까워지는 때와 멀어지는 때도 한달에 한번 있다. 만일 만월이 되는 음력 15일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진다면 보통 때보다 더 큰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평균 거리는 38만4400km로 이때 달의 겉보기 크기는 대략 30′(분, 1°=60′)이다. 한 손을 쭉 뻗었을 때 엄지손톱으로 다 가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10월 26일 달과 지구의 거리는 37만6000km로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때 보이는 보름달은 시직경이 33′28″(초,1′=60″)로 올해 볼 수 있는 보름달 가운데 가장 크다. 보름달의 크기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올해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보름달과 크기를 비교해보자.

올해 가장 작은 보름달은 지난 4월 2일에 떴다. 이때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40만6000km. 겉보기 크기는 29′24″였다. 26일 뜨는 보름달은 이보다 약 10% 더 크다.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보통 때보다 달이 커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해도 좋다. 공활한 가을 밤하늘 보름달 아래에서 고즈넉이 귀뚜라미 소리를 감상하는 일만으로도 밖에 나온 보람은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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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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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ㆍ사진] 조상호 천체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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