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 런던 시민은 독일의 공습을 피해 수시로 방공호에 들어가야 했다. 이들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습의 공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이때 가장 많이 가지고 간 책이 탐정소설이었다. 당시 출판되던 신간소설 4권 중 1권이 탐정소설이었을 정도로 영국에서는 탐정소설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탐정소설의 시조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소설가 애드거 앨런 포우가 1841년 발표한 ‘모르그 거리의 살인사건’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이 책에는 정통 추리물에서 등장하는 밀실에서의 살인이 등장하고, 이를 해결하는 뛰어난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 시종일관 활약을 펼친다.
포우가 작고한 이후 뜸하던 탐정소설은 영국 의사 코난 도일이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스를 탄생시키면서 황금기를 맞이한다. 홈스가 등장하는 작품은 장편 4편, 단편 56편에 이른다. 대부분의 작품이 현재로서도 감탄을 자아낼만큼 짜임새를 잘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작가 도일은 에딘버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안과 의사의 자격을 얻자 병원을 개업해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병원이 변두리인 탓에 도무지 환자가 찾아오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이 지속됐다.
도일이 마련한 자구책 중의 하나가 바로 탐정소설을 집필하는 일이었다. 그는 1887년 사립탐정 셜록 홈스와 그의 조수 겸 기록자 왓슨이 등장하는 본격 장편 추리소설 ‘주홍색 연구’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형편 없었다.
그러던 중 미국의 한 잡지사의 편집자가 ‘주홍색 연구’를 읽고 홈즈와 왓슨이 활약하는 속편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도일은 ‘네사람의 서명’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굉장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탄탄대로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도일의 작품에 등장하는 셜록 홈스와 괴도 모리어티 교수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아 묘사됐다고 한다. 먼저 셜록 홈스의 모델은 도일이 의대에 다닐 때의 스승 조셉 벨이었다. 벨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외과의였다. 그는 환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병명은 물론 과거 생활까지 정확히 알아맞춘 사람이었다.
도일은 실제로 한가지 예를 들어 벨의 능력을 소개했다. 하루는 벨이 묵묵히 한 환자를 관찰한 후 그가 군인 출신이라는 점과 어느 지역에 주둔했는지를 정확히 맞췄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보다시피 이 분은 신사입니다만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는 모자를 벗지 않죠. 만일 이 분이 제대한지 오래 됐다면 민간인처럼 모자를 벗었을 것입니다.
근무지 바베이도스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병이 피부병의 일종인 상피병이었기 때문이죠. 그건 서인도제도의 풍토병이거든요.”
도일은 이 일을 기억하고 나중에 ‘그리스인의 통역’이란 작품에서 이를 거의 그대로 재현시킨다.
범죄의 나폴레옹
셜록 홈스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홈스라는 성은 친구인 미국 법률학자 올레버 웬델 홈스에서 따온 것이다. 또 셜록은 볼링 시합에서 30회 연속으로 이긴 상대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도일이 모델로 삼은 또다른 인물은 미국의 전설적인 괴도 애덤 워스였다. 셜록 홈스와 끝까지 사투를 벌이는 숙적 모리어티 교수의 모델이었다. 모리어티 교수는 도일의 1893년 작품인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와 대결하다 폭포에서 함께 떨어져 사망하는 인물이다.
런던의 ‘타임스’ 파리 지국장 벤 매킨타이어는 ‘범죄의 나폴레옹, 거물 도둑 애덤 워스의 생애’(1977)라는 책에서 대도 애덤 워스의 일생을 소개했다. ‘범죄의 나폴레옹’이란 말은 그를 추적한 형사가 놀라운 범죄 솜씨에 혀를 차며 붙인 별명이다.
독일계 유태인 애덤 워스는 뉴욕의 전설적인 금고털이와 은행강도로 알려졌다. 그가 ‘해치운’ 범죄만 해도 5만3천여건에 달한다.
그러나 탐정사무소 핀커턴의 추적이 시작되고, 개인적으로는 ‘좁은 물’을 벗어나고파 영국으로 피신한다. 놀랍게도 그는 ‘뉴욕타임스’ 편집장 레이몬드의 이름을 빌려 들키지 않고 그의 행세를 한다. 물론 본래의 목적은 국제적인 강도 조직을 결성하는 일이었다.
몇해 동안 각국의 경찰이 그를 추적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러나 라이벌 동료의 배반으로 밀고당해 체포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가 감옥에서 수감돼 있을 때 또다른 동료가 부인을 꼬여 모든 재산을 강탈해 간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다가 1902년 사망한다.
아버지의 탐정사무소를 물려받아 활약하던 윌리엄 핀커턴은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지적인 사나이들의 범죄는 그가 죽음으로써 끝났다. 이제 미국에는 거물 도둑이나 위조범은 더이상 없다.”
탐정소설의 요건 - 완전범죄 해결하는 추리력
탐정소설만큼 일관된 구성을 갖춘 장르가 없다. 첫 부분에서 어떤범죄(주로 살인)가 벌어지고, 대단히 과학적으로 보이는 추리과정을 통해 범죄자를 추적하는 탐정의 명철한 두뇌와 결단력, 우수한 무술이 계속 발휘된다.
탐정소설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 언뜻 보기에 완전한 범죄로 보일 것. 둘째, 겉으로 나타난 증거가 가르키는 용의자가 존재하고,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날 것. 샛째, 일반 경찰이 서투른 실수를 행할 것. 넷째, 경찰보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탐정의 등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말이다.
탐정은 겉으로 보기에 분명한 듯한 증거가 실제로는 틀리다는 점을 알아차린다. 또 남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자료를 수집하고, 남이 엄두도 못낼 분석과정을 거쳐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한다. 독자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해 쉽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탐정의 활약에 경탄을 느끼며, 결말이 어떻게 날지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