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컴퓨터는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나, 감독을 넘어선 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작년 9월17일 잠실야구장에서 OB베어스는 국내 투수 중의 한명인 최동원이 등판한 롯데 자이언츠와 후기리그 최종전을 벌였었다. 9회말까지 3-1로 밀리고 있던 OB는 마지막 공격에서 레프트 앞 안타로 출루한 김광수를 1루에 두고 김형석선수가 투스트라익 노볼에서 3구를 강타, 우측 외야의 관중석 상단으로 넘기는 동점 홈런을 터뜨렸다.
이때 양 팀의 선수와 감독, 1루와 3루의 관중들은 일순간 고압전류에 감전되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플레이오프전 진출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이자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경기에서 OB베어스는 프로야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극적인 승부를 팬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장면을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프로 선수들은 겨울부터 뼈를 깎는 훈련을 거듭하고, 각 구단은 자기팀을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도 그 수단 중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컴퓨터 코치의 지시에 따라
야구라는 스포츠는 9명이 뛰는 단체경기이지만, 투수 대 타자, 타자와 수비수 간에 펼쳐지는 일 대 일 승부가 결국 팀의 승패로 연결되는 철저한 개인경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챔피언은 우수한 선수를 많이 보유한 팀이 되는 것이다. 뛰어난 야구선수란 흔히들 투(投), 타(打), 주(走)의 3박자를 갖춘 선수를 말하지만,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는 3박자가 아닌 4박자를 갖춘 선수라야 스타 플레이어가 될 자격이 있다고 한다. 이 네번째 요소가 '지능'혹은 '센스'로 불리우는 차원 높은 야구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작년 OB대 롯데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형석이 최동원을 함몰시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이 작용한 것이었다. 상대투수가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는 도전적인 기질의 소유자라는 것과 공 3개로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는 쾌감을 즐기는 투수라는 것을 미리 알고있었기 때문에 무엇이가를 터뜨릴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컴퓨터는 매우 단순한 작업을 대행하는 기계에 불과하지만 확률의 경기인 야구에서는 때로 엄청난 확률이 있는 포인트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X-레이에 찍힌 사진을 판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독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각종 통계치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웃 일본이나 미국의 프로야구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세심한 부분까지 분석되고 있고 그러한 분석이 보편화되어 널리 팬들에게까지 알려져있는 상태이지만, 일천한 우리의 프로야구에서 야구기록이 컴퓨터를 통해 어떻게 분석되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또 위에서 말한 4박자의 보조역할을 컴퓨터가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알아보자.
투수의 성격이나 습성도 알아낸다
투수의 성격이나 습성까지 컴퓨터가 읽어낸다는 사실을 알면 아마 놀라는 야구팬들이 많을 것이다. 컴퓨터에는 먼저 특정투수가 특정타자에게 던지는 공의 종류, 던지는 코스, 타격 결과, 타구의 낙하지점 등의 모든 사항이 입력된다.
이제 (표1)을 보며, A, B양 투수의 습성을 분석해 보자. 타자가 타석에서 맞이하는 볼카운트의 경우의 수는 0-0에서 2-3까지 모두 12가지이다. 그 중에는 투수가 불리한 볼카운트와 유리한 볼카운트가 있을 것이다. 일단 투수가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볼카운트에서 두 투수가 던지는 공의 종류별 수자를 잘 살펴보면 눈치빠른 사람은 투수의 습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투수 A는 투수가 불리한 볼카운트인 0-2, 0-3, 1-3, 2-3 등에서 압도적으로 직구가 많다. 이것으로 보아 A투수는 핀치에 몰릴 경우 직구로 스트라익 넣기에 급급한 여유가 없는 투수일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가공할 스피드를 가진 직구를 구사하는 투수라면 해석을 달리 해야한다. B투수의 투구내용은 이와는 판이하다.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적당히 직구와 변화구를 배합하여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타자로 하여금 예측을 못하게하는 베테랑급 투수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이러한 특성을 투수자신은 미처 모르고있고 상대타자는 알고 타석에 들어선다면 이미 타자는 유리한 고지에서 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다. '로드 캐류'라는 미국 메이저 리그의 강타자는 자신의 노트에 매 카운트마다 상대 투수가 던졌을 공을 기입해놓고 경기전에 다시 한번 상기하고는 타석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메이저 리그의 선수생활 19년간 통산 3할2푼8리를 기록한 유명한 타자였다. 자기를 알고 상대를 안다는 것은 승자로 남기 위한 법칙인 것이다.
확률경기에서 컴퓨터는 강하다
이제 컴퓨터가 추출해내는 또다른 확률 분포도를 살펴보자.
(표2)는 OB 베어스 A타자와 삼성라이온즈의 C투수에 대한 스트라익존별 타율 분포도를 나타낸다.
타자의 약한 곳을 집중 공략하는 것은 투수의 철칙이다. 86년 프로 2년생이었던 이 타자는 상대투수를 자신있게 두드릴 수 있는 코스가 4,5,8번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87년에 접어들자 자신의 약했던 코스에 대한 대비책을 이미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위의 도표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2개의 도표가 공히 보여주는 수치는 이 타자가 낮은 볼에 약하는 것을 숨기지 못한다.
51%의 확률이 있을때 도박을 하지않는 승부사는 아마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절박한 승부처에서는 훨씬 낮은 확률에도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승부사의 세계이고, 30%만 성공시키면 3할 타자 칭호를 듣게되는 야구에서 상대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컴퓨터가 짜낸 배팅오더
야구 경기에서 가장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역시 감독이고 감독의 역할 중에서 제일 힘든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타순을 짜는 일이다. 1번타자부터 9번 타자 까지의 타순을 20~30명의 타자 중에서 골라내어 적소에 배치하는 작업이야말로 골머리를 아프게하는 일일것이다.
타순이란 선수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감독의 야구 철학이 함께 어우러져서 상대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을 퍼부울 수 있는 확률의 도식이다. 타순을 합리적으로 짤 경우, 컴퓨터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해준다.
이제 컴퓨터가 짜는 타순과 OB베어스의 실제 경기에 임했던 타순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단순하고 철학이 없는 컴퓨터를 위해 일반적인 타순의 이론을 입력시키면 아래와 같다.
1번타자 : 선구안이 좋고, 출루율이 높으며, 발이 빠른 선수.
2번타자 : 주자를 1베이스 진루시키는 팀 배팅과 번트에 능하고 발빠른 선수.
3번타자 : 기복이 없이 꾸준히 잘 치는 타자로서 적당한 힘과 스피드가 있는 선수.
4번타자 : 가장 힘이 있고 장타력이 있는 선수. 발이 빠를 필요는 없지만 주자가 있을 때 잘치는 선수.
5번타자 : 팀내 2번째 장타력 보유자로서 4번과 비슷한 선수.
6번타자 : 장타자들이 팀내에 많다면 3번째 장타력 보유자이고, 없다면 1번과 유사한 선수.
7번타자 : 꾸준한 타자는 아니라도 주자가 있을 때 강한 타자
8번타자 : 가장 약한 타자의 자리이나, 팀배팅은 할 수 있어야 한다.
9번타자 : 1번과 유사한 선수.
이상의 타순 이론을 수용한 기계에 자료로 입력시킨 후 타순을 짜기로 하자.
(표3)은 OB베어스의 87년 시즌에 30게임 이상 출전한 선수들의 각종기록이다.
아래의 도표가 보여주는 예상타순은 물론 인간의 육감이나 경기 당일의 선수컨디션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단순한 수치에 의한 통계일 뿐이다. 그러나 감정이 개입되지않은 기계가 한 것이므로 자료에 충실한 예상타순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87년 시즌의 OB베어스 주전급선수의 선발출장 빈도와 컴퓨터의 예상타순을 비교해보자.
예상타순
1번-김광림
2번-김광수
3번-김형석
4번-윤동균, 김형석, 이복근
5번-박종훈
6번-이승희
7번-신경식
8번-유지훤
9번-김경문
실제타순(62경기의 타순별 선발회수)
1번-김광림 42, 박종훈 6
2번-김광수 52, 김광림 5
3번-김형석 49, 윤동균 3
4번-윤동균 46, 김호근 6
5번-박종훈 24, 신경식 20
6번-신경식 20, 양세종 12
7번-이승희 13, 김경문 9
8번-김경문 23, 유지훤 18
9번-유지훤 30, 구천서 12
위의 두가지 타순을 비교해보면 6, 7번과 8, 9번이 뒤바뀐 차이는 있으나 중심타선은 거의 일치한다.
4박자를 갖춘 특출한 선수에게는 통계나 확률이 불필요할 것이다. 어떤 공이 오더라도 칠 수 있는 타자에게나 어떤 타자라도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투수에게 확률은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10타석에서 3개의 안타만 만들면 능력있는 선수로 평가받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30%이상의 확률은 승부처에서 참고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