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역사에서 ‘캄브리아기 폭발’은 놀라운 사건이다. 선캄브리아시대(고생대 캄브리아기 이전 시대. 약 46억~5억4100만 년 전)의 단순한 다세포 동물들이 이 시기에 갑자기 복잡한 외형을 지닌 서로 다른 문으로 폭발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생물 진화에서 는 빅뱅과도 같은 사건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앤드류 파커 교수는 캄브리아기 폭발의 원인을 눈의 탄생에서 찾았다. 눈은 빛이라는 자극을 잘 활용한 동물이 자연선택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관이다. 그리고 눈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동물과 생태계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폭발적으로 진화했다. 빛을 감지하고 살 필요가 없었던 선캄브리아기 생물의 세상과, 빛을 지배한 생물의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캄브리아기 폭발의 증거는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캐나다의 버제스 셰일, 중국의 마오티안샨 셰일, 호주의 에뮤만 셰일 등의 지층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한 약 5억2000만~5억500만 년 전 캄브리아기 초기 화석군이 발견됐다.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동물 문에 속하는 화석들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특이하게도 눈을 가진 동물은 대부분 절지동물이었다. 현존하는 동물 중 약 80%는 거미류, 곤충류, 지네류, 갑각류 등 다양한 절지동물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역시 진화의 역사에서 눈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삼엽충은 화석으로 발견되는 동물 중에서 최초로 눈을 가지고 있던 생물이다. 최초의 눈이라고 하니 매우 원시적이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삼엽충의 눈은 매우 정교하게 발달한 겹눈이었고, 이런 눈 덕분에 비어있던 지구의 바다 환경 곳곳에 적응하고 진화해 나갔다.
광물 눈과 숨쉬는 다리 지닌 기묘한 ‘세쪽이’
삼엽충은 곤충, 지네, 새우와 같이 몸과 다리가 여러 개의 마디로 이루어진 절지동물이다. 캄브리아기 초기인 약 5억2100만 년 전에 바다에서 처음 등장한 뒤, 페름기 말에 일어난 지구 최대의 대멸종 사건 때 사라지기까지 약 2억7000만 년 동안 바다의 주인공이었다. 연구된 종의 수만 2만 종이 넘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종이 발견되고 있다. 화석 생물로는 가장 다양한 집단이다. 공룡이 지금까지 약 5000종이 발견된 것에 비하면 그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절지동물 대부분의 뼈대(외골격)는 키틴질과 같은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유기물질로 돼 있다. 그런데 삼엽충의 뼈대는 방해석(탄산칼슘, CaCO3)이라는 광물질로 돼있다. 뼈대가 돌인 셈이다. 방해석은 시멘트를 만드는 석회암의 주성분으로, 바다에 사는 산호나 조개의 딱딱한 골격이 대부분 탄산칼슘으로 이뤄져 있다. 칼슘과 이산화탄소는 바다에서 구하기 쉬운 원료이기 때문에 탄산칼슘 골격을 갖게 되기 쉬운데, 활발한 운동능력을 가진 절지동물 중 삼엽충만 방해석 골격을 가졌다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 삼엽충은 다리가 연약하고 부드러운 편이어서 죽고 나면 떨어져 흩어지기 때문에, 주로 등껍데기만 남아 화석이 됐다.
삼엽충의 외골격은 머리, 가슴, 꼬리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특히 가슴은 여러 개의 마디로 이뤄져 있다. 삼엽충 종류에 따라 적은 것은 두 개, 많은 것은 최대 100개가 넘는 가슴 마디를 가지고 있다. 다른 절지동물이 그렇듯, 삼엽충도 죽고 나면 등껍질이 마디마디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완벽한 모습의 삼엽충 화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슴은 각 마디가 각각 분리가 되는 반면, 머리와 꼬리는 여러 개의 마디가 융합된 형태로 구분이 된다. 잘 알려져 있듯, 삼엽충이라는 이름은 몸이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서 붙었다. 하지만 머리, 가슴, 꼬리로 나뉘었기 때문은 아니다. 곤충도 머리, 가슴, 배로, 새우도 머리, 가슴, 꼬리로 이뤄져 있지만 삼엽충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삼엽충은 등껍질의 중심축이 볼록 솟아나 있다. 이 중심축 때문에 세로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때문에 삼엽충이라 불리게 됐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말로는 ‘세쪽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엽충의 마디 하나하나에는 한 쌍씩 다리가 있다. 따라서 매우 많은 다리를 가진 삼엽충도 있었다. 각각의 다리는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가닥은 걷는 기능을 하고, 나머지 가닥은 숨을 쉬기 위한 아가미였다. 물고기는 숨을 쉬기 위해 물을 빨아들이거나 헤엄을 치면서 물을 마셔야 하지만, 삼엽충은 가만히 앉아서 다리만 살랑살랑 움직여도 숨을 쉴 수 있었다.
광물질 외골격과 눈, 그리고 다리에 아가미를 갖춘 동물 삼엽충은 과연 독특하고 강력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진화 과정을 통해 이런 몸을 갖게 됐을까. 삼엽충 이전의 절지동물 조상종들은 단단한 골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석 기록이 드물고, 따라서 진화 과정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징강 화석군과 버제스 화석군 등에서 삼엽충과 유사한 동물 화석들이 발견되고, 약 5억5500만 년 전인 캄브리아기 직전의 지층에서 파르반코르니아(Parvancornia )라는 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진화 과정을 유추할 수 있게 됐다. 파르반코르니아는 골격이 단단하지 않았고 머리와 꼬리의 골격도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좌우 대칭의 삼엽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었다. 과학자들은 파르반코르니아 또는 이와 비슷한 동물이 머리와 꼬리의 골격을 분리하고 가슴 마디를 추가하면서 눈을 발달시켜 삼엽충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멸종 두 번 견딘 놀라운 생존력과 눈
날지 못하는 공룡들은 약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 대멸종 시기에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삼엽충은 고생대 페름기 말(약 2억5200만 년 전)에 멸종했는데, 페름기 말 대멸종의 규모는 지구 역사상 최대였다. 공룡 멸종 시기보다 더 했다. 화석 기록으로 볼 때 90%에 해당하는 종이 이 때 지구에서 사라졌다. 대멸종은 고생대에만 세 번 있었다. 약 4억4400만 년 전 오르도비스기 말, 3억 5900만 년 전 데본기 말, 그리고 페름기 말 대멸종이다. 놀랍게도 삼엽충은 앞선 두 번의 대멸종에서 살아남았다가 페름기 말 대멸종 때에야 멸종했다. 대멸종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명확하지 않지만, 오르도비스기 말과 데본기 말 대멸종은 기온이 낮아지고 해수면이 내려가는 등 해양 생태계에 큰 변화가 닥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 페름기 말 대멸종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화산분출로 기후가 온난해지고, 대륙들이 모여 판게아라는 초대륙이 만들어지면서 해양 생물이 살기 좋은 대륙붕의 면적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두 번의 대멸종을 견뎌 온 삼엽충에게도 페름기 말 대멸종은 견디기 어려운 재앙이었을 것이다.
앞선 두 번의 대멸종을 견딘 놀라운 생존력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눈 덕분은 아니었을까. 삼엽충의 눈은 지금 봐도 놀랄 정도로 ‘최첨단’을 자랑한다. 머리 중간쯤에 좌우로 한 쌍이 달려 있었는데, 파리나 잠자리의 눈처럼 여러 개의 렌즈가 모여 하나의 눈을 이룬 겹눈이었다. 많은 것은 눈 하나에 렌즈만 수천 개가 모여 있었다. 일부 종은 시야각이 180°나 돼 자신의 꼬리까지 볼 수 있었고, 햇빛을 가려 눈부심을 방지하는 차단막까지 갖추고 있었다(오른쪽 페이지 첫번째 사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다른 절지동물은 물론 삼엽충의 친척 중에도 눈이 아예 없는 종류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다.
그뿐 아니다. 과학자들은 특이한 눈을 가진 파콥스(Phacops)와 그 친척 삼엽충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면서 또 한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렌즈들이 보통 겹눈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아래 두번째 그림). 대신 수정체 하나가 아주 큰 볼록렌즈처럼 생겼는데, 이런 볼록렌즈로 세상을 보려면 방해석의 복굴절 이외에도 또 하나의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렌즈를 볼록하고 둥글게 깎으면(볼록렌즈) 빛이 모인다. 하지만 이 빛이 정확하게 한 점에서 만나지는 않는다. ‘구면수차’라는 현상 때문이다. 구면수차가 생기면 렌즈를 통과한 상이 정확히 한 점에서 맺히지 않는다. 정확도가 생명인 눈에 이 문제는 치명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데카르트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하위헌스는 각각 독특한 형태의 렌즈를 개발했다. 렌즈의 한쪽 면을 좀 복잡한 형태의 곡면으로 만들어 모든 빛을 한 점으로 모이게 조정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가 삼엽충에도 발견된다! 파콥스의 친척인 크로조나스피스 스트루베이(Crozonaspis struvei , 약 4억6000만 년 전)의 눈을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이 삼엽충의 수정체는 단순한 볼록렌즈가 아니라 두 겹의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두 겹 사이 면이 하위헌스의 렌즈와 똑같은 형태를 띠어 빛을 정확히 한 점으로 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달마니티나 소키알리스(Dalmanitina socialis )라는 삼엽충의 렌즈 역시 두 겹의 방해석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삼엽충의 눈은 데카르트 렌즈와 똑같은 원리로 구면수차를 제거하고 있었다.
이렇게, 삼엽충은 광물질의 단단한 눈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식지에 적응하면서 비어 있던 생태계를 채워나갔다. 삼엽충의 전성기는 의외로 아주 길지는 않았다. 캄브리아기 때 폭발적으로 번성한 삼엽충은 오르도비스기 말의 대멸종을 겪으며 많은 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종은 살아남아 전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고생대가 끝날 때까지.
만약 눈이 아니었다면…
현재까지의 화석 연구 결과로는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은 단연 삼엽충이다. 하지만 삼엽충 이전에 원시적인 눈이 또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형태의 눈이기에 화석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원시 눈이 화석으로 남지 않았기에 발견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삼엽충 이전에 눈을 가졌던 생물을 발견하게 된다면 삼엽충은 최초의 눈을 지닌 동물 자리를 내놓고 2인자로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대신 캄브리아기 폭발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고생물학, 과학의 재미기도 하다.
삼엽충 이후로 지구에는 눈을 가진 다양한 생물들이 등장해 지금의 복잡한 생태계를 이뤘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가진 생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아닌 냄새나 소리 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생물들이 자연선택 돼 캄브리아기 폭발을 일으켰다면 어땠을까. 생물체와 생태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말이 없는 삼엽충 화석을 들여다 보며 다시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