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마지막 질문을 잊어버렸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럴 때를 대비해 메모를 해놨거든요. 금방 찾을 거예요. 음…, 그런데 못 찾겠네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음….”
인류의 지능지수가 정말 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중이었다. 내용이 디지털 시대의 멀티태스킹과 산만증으로 넘어갔을 때, 그만 준비하고 있던 마지막 질문을 잊어버렸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메모도 해뒀지만 그 메모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상 위는 기사를 위해 프린트해 둔 10여 편의 논문과 책, 기사, 그리고 이전의 다른 통화 기록을 적어 둔 메모지로 난장판이었다. 모니터에도 관련 자료가 가득 떠 있었다. 때마침(?) 휴대전화까지 울렸다. 패닉에 빠졌다.
“멀티미디어 때문에 저도 바보가 됐나 봅니다.”
현대인이 정말 바보가 돼가고 있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신경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을 꼽고 있다. 특히 검색의 대명사, ‘구글’이 주범으로 꼽힌다.
이 주장의 선봉장은 독일 울름대 의대의 만프레드 슈피처 교수(정신병원장)다. 그는 2012년 ‘디지털 치매’라는 책을 펴내며 세계의 디지털화 추세를 정면 공격했다. “태블릿 PC, 노트북, SNS, 게임 등 다양한 디지털 매체와 콘텐츠들이 두뇌의 지적 능력을 떨어뜨리고 사회에 해악을 미친다. 학교에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을 설치하는 정책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 중 ‘구글링(구글 검색)’에 대한 비판은 독설에 가깝다. 지난 10월 초 독일의 국제방송인 ‘독일의 소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구글링은 전혀 유용하지 않다”며 “자료가 많아도 사전 지식이 없으면 불필요한 자료를 걸러내지 못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다른 경로로 얻은 지식이지 검색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연구 결과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11년,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벳시 스패로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어려운 문제를 접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검색부터 떠올렸다. ‘검색형 인간’이 된 것이다. “검색만 잘 하면 되지, 그게 뭐가 문제일까? 도서관에서 책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슈피처 교수의 지적대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는 뇌가 나태해진다. 우리 뇌는 어딘가 기억력을 의지할 곳이 생기면 금세 정보 기억을 포기한다.
스패로 박사팀이 한 또다른 실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장을 보여준 뒤 “저장했습니다”라고 알려주거나 “삭제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어느 쪽이 더 기억률이 높았을까. “삭제했습니다”라고 알려준 문장이다. “저장했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뇌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 판단해 기억을 포기한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메뉴판처럼 모든 게 준비돼 있는 환경에서, 뇌는 깊이 기억하거나 탐구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가속화하는 것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다. 인터넷 브라우저와 메모장, 캘린더가 한 손에 가득하기에 우리는 약속도, 전화번호도 외우지 않는다. 궁금한 게 생기면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 두뇌는 텅 비어간다.
검색만 문제가 아니다. 대중교통 안이나 시내 광장을 보면 사람들 상당수가 페이스북이나 ‘카톡’을 하면서 홀로 있다. 한번 하면 손에서 놓기 힘들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인터넷 이용 시간이 늘면서 반대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2년 영국왕립학회보에 실린 연구를 보면, 실제 만남은 두뇌에서 사회, 인지 능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중 일부(안와전두피질)를 활성화시키고 커지게 한다. 반면 SNS 등 디지털 만남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터넷만 들여다 보는 생활 습관으로 뇌가 퇴화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에 의한 산만증도 문제다. 손에 필기구를 든 채 휴대전화와 프린트, 모니터가 놓인 책상에서 전화를 받던 기자는 결국 대화하다 말고 질문을 잊어버렸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정작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일은 더욱 흔해졌다.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이동하는 일은 뇌에 부담을 준다. 하나의 일에 몰두하면 ‘작업기억’이라고 하는, 컴퓨터로 치면 램 같은 기억 공간이 가득 찬다. 이곳을 비워야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데, 이리저리 산만하게 수많은 작업을 하게 되면 이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김성찬 서울탑마음클리닉 분당클리닉 원장은 “시각 자료를 보고 난 뒤에는 뇌에 잔상이 남는다”며 “이후 문제 풀이 등의 과제를 시키면 주의력이 분산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하고 나면 머리 속에 계속 생각이 남는 데, 이 때문에 어떤 일을 새로 하기 위해 필요한 기억 공간이 부족해져 능률이 떨어진다(단, 공간능력은 예외).
슈피처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는 독일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멀티태스킹은 마치 서로 다른 두 명의 상대와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멀티태스킹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모두가 너무나 당연히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동시작업이 가져올 산만증의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
[“정신 없다, 정신없어!” 뉴스도 읽어야 하고 검색도 해야 하고 동영상도 봐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하고! 할 일 많은 현대인들에게 하루는 짧다. 그래서 개발했다, 멀티태스킹. 근데, 나 방금 뭘 했더라?]
8월, 외신 뉴스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일부 유럽 선진국의 지능지수(IQ)가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개개인의 기억력이 나빠진 것으로 모자라 온 나라의 평균 지능지수가 떨어진다니, 인류는 정말 바보가 돼가는 걸까.
이런 결과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일부 국가의 IQ 검사 결과가 이전에 비해 하락했다는 연구가 나왔다. 2004년 노르웨이에서는 1950년대부터 2002년까지의 IQ를 추적한 결과가 발표됐다. 그 결과를 보면, 70년대 중반부터 IQ의 증가 추세가 주춤해지기 시작했고, 90년대 말부터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005년에는 덴마크의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역시 1950년대 후반부터 상승세가 꺾여 90년대 후반부터 하락했다. 영국과 스웨덴 역시 2000년대들어 정체 또는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조사 결과가 지능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상식’과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이다. 곽금주 교수는 “IQ는 (나라가) 발전할수록 기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때마다 측정 방법도 그때그때 개발해 쓰는 실정”이라며 “IQ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하락의 원인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교육을 많이 받은 ‘똑똑한’사람들이 자손을 덜 갖는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맞다면 후대로 갈수록 ‘머리 좋은’ 유전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계산을 통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구가 ‘머리 나쁜’ 사람들로 채워질지도 예상할 수 있는데, 영국 울스터대 리처드 린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2050년에는 IQ가 약 1.3 정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인류 전체가 머리가 나빠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곽 교수는 “일부 조사 결과만 가지고는 인류 전체가 IQ가 하락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공간지각력 등 지능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IQ 수치만 가지고 인류가 멍청해지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전혀 없는 셈이다. 게다가 만약 린 박사의 예상처럼 앞으로 IQ가 계속 하락세를 유지한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애초에 이들 국가에서 IQ가 계속 올라갔던 것도 딱히 인류가 머리가 좋아져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IQ가 오르는 현상을 ‘플린 효과’라고 하는데, 주로 보건 등 환경 요인이 개선돼 나타난 현상이다. 따라서 이런 요건이 이미 다 갖춰진 선진국에서 더 이상 IQ가 오르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흔히 미래인이라 하면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퇴화한 ET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히려 머리를 쓰지 않게 돼 두뇌가 퇴화하는 건 아닐까. 놀랍게도 실제로 인류의 두뇌는 작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먼저 고백할 게 있다. ‘구글링’ 검색만 가지고 정보를 얻으려 하다가는 시쳇말로 ‘망할 수 있다’는 슈피처 교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인류의 두뇌가 퇴화하는지 알기 위해 사전조사로 열심히 검색을 했더니 정말 ‘뇌가 작아지고 있다’는 연구 논문이 꽤 나왔다. 그런데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단번에 ‘대부분 소수의 논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해설이 돌아왔다. 역시 모르고 하는 검색은 불필요한 정보를 거르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1988년 마시에 헨네베르크 교수팀이 ‘인간생물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화석이나 유골의 두개골 크기는 최근 들어 약간씩 작아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중석기 시대(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사이로 약 1만~3만 년 전)에 두뇌 용량이 최고에 달했고, 이후 줄어들어 현대에 가장 작아졌다. 줄어든 비율은 남자 9.9%, 여자 17.4%였는데, 연구팀은 이 정도로는 정말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지 혹은 오차 범위에 드는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더구나 비슷한 시기에 인류의 몸집 자체도 작아지고 있어서 그저 상대적인 결과일가능성도 있다.
정보 처리 능력에 대해서도 논란 중이다. 이 교수는 “3만 년 전 이후 문화나 문명의 복잡도를 생각했을 때 집단 전체의 정보처리 양은 늘었다”며 “하지만 작업의 분업화와 계급화로 오히려 개인의 정보처리 양은 줄어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스마트폰이나 구글 검색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류는 사회와 문명을 이룬 이후로는 늘 ‘머리를 덜 쓰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뜻이다.
인류는 문화적 존재다. 문화가 진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머리 덜 쓰는 경향이 몇 만 년 뒤 미래의 지적 능력에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뚜렷한 흔적이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폭발적인 디지털 문명이 이런 경향을 가속화할까. 답은 후대 인만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지능이 남아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