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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itat ‘화성 1년 살이’를 계획 중이라면

 

대강의 상황은 이러하다. 나는 화성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헤르메스나 지구와 교신할 방법도 없다. 모두들 내가 죽은 줄 알고 있다. 내가 있는 이 거주용 막사는 31일간의 탐사 활동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면 질식사할 것이다. 물 환원기가 고장 나면 갈증으로 죽을 것이다. 이 막사가 파열되면 그냥 터져버릴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다. 나는 망했다.  - 앤디 위어 ‘마션’ 중

 

가장 유명한 화성인을 한 명 꼽으라면 이 사람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될 것이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 이야기다. 영화에서나, 원작 소설에서나 와트니의 화성 생존기는 눈물겹다. 홀로 화성에 낙오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화성 토양에서 감자를 키워먹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화성인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가벼운 마음으로 화성에서 1년 살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안심하시길. 와트니처럼 치열하게 생존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당신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 과학자들은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의 결실을 2050년 화성인 김 씨가 보낸 하루 속에서 살펴보자.

 

연습도 실전처럼, 화성 생활 시뮬레이션 

 ‘마스 듄 알파’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잠이 덜 깨 비척이며 식당으로 향한다. 풀, 신선한 풀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식물농장에서 양상추를 수확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이게 그건가 보다. 낮엔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좀 할 생각이다. 지난주, 건강검진 결과를 설명할 때 의사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근육량이 모자라다나.

 

화성생활이 단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 고이 접어두도록 하자. 화성의 하루는 지구만큼이나 분주하게 굴러간다. 2023년 6월부터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위치한 미국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에서는 아주 특별한 실험이 시작된다. 실험의 이름은 CHAPEA(Crew Health and Performance Exploration Analog유사 탐사 시 선원 건강 및 수행능력). 인간이 화성 기지에서 살아갈 때 받는 신체정신적 영향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서 계획된 화성 거주 시뮬레이션 실험이다.

 

NASA는 이 실험을 위해 텍사스의 사막 위에 화성과 똑같은 환경을 구현한 주거지 ‘마스 듄 알파’를 마련했다. 주거지의 면적만 약 158m인 이곳에는 주방, 의료공간, 오락공간, 헬스장, 업무공간, 식물농장, 화장실 등 다양한 목적의 공간이 마련돼있다.

 

4명의 지원자들은 마스 듄 알파에서 1년간 고립된 채로 살아가야 한다. 다행히 심심할 틈은 없다. NASA는 “거주지는 가능한 화성과 유사한 환경으로 구성된다”며 “자원제한, 고립, 장비고장, 중대한 작업 부하와 같은 환경적 스트레스도 여기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실험기간 동안 지원자들은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시뮬레이션 우주산책, 통신, 작물 키우기, 식사 준비 및 섭취, 운동, 유지보수작업, 과학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스콧 스미스 NASA 존슨우주센터 영양생화학 연구소장은 “이 모든 경험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며, 우리가 지켜보고자 하는 것도 인간의 반응”이라고 했다.

 

▲ NASA가 화성 거주 시뮬레이션 실험을 위해 마련한 주거지 ‘마스 듄 알파’는 3D 프린팅 방식으로 ‘인쇄’해 건설됐다. 3D 프린팅은 화성 기지 건축방식 중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극한 환경에서 화성인을 보호할 

 ‘인쇄된’ 흙집 

 

지붕에서 ‘쿵’ 소리가 나는가 하더니 건물 유지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또 운석인가 보다. 화성은 대기가 희박해 운석이 자주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흙집은 간혹 떨어지는 운석을 훌륭하게 막아주고 있다. 초코크림을 쌓아 만든 것처럼 울퉁불퉁한 벽을 손으로 쓸어본다.

 

김영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미래스마트건설연구본부 연구원은 “화성에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지구와는 다른 낮은 기압과 큰 온도 편차, 미세 운석 및 우주방사선 노출, 강한 먼지 폭풍 등 화성의 극한 환경에 적용 가능한 건설기술을 개발해야한다”고 짚었다.

 

특히 관건은 어떻게 화성에서 강도 높은 재료를 구할 것인가다. 김 연구원은 “건설에 필요한 재료를 지구에서 화성으로 운송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화성 현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건설 재료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렇게 우주에서 현지 자원을 활용해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기술을 우주 현지자원활용(ISRU) 기술이라 부른다.

 

화성 기지의 주요 자재는 화성 흙이다. 재료가 한정돼있으니, 가지고 있는 재료를 최대한 잘 활용해야 한다. 화성 토양에는 황이 풍부하다. 김 연구원은 “황을 용융시킨 다음 화성 토양과 혼합해 굳히는 아이디어가 제안된 바 있다”고 했다. 이른바 ‘황 콘크리트’다.

 

지구 물건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포장돼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 가져간 물자를 사용하고 나면 플라스틱 폐기물이 남는다. 이걸 녹인 다음, 화성 토양과 섞어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doi: 10.1016/j.matt.2019.07.023 김 연구원은 “황 콘크리트와 고분자 소재 모두 극심한 온도 변화와 우주방사선 노출로 내구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건축 자재가 가장 적합할지 알아내기까지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건축 방식에는 ‘대세’가 있다. 3D 프린팅이다. NASA의 마스 듄 알파도, 아랍에미리트(UAE)가 2017년 제시한 화성 시뮬레이션 거주지 ‘화성 과학 도시’도 모두 3D 프린팅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다. 원하는 형태의 건축물을 자유자재로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 덕이다. 김 연구원은 “3D 프린팅 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하면 행성 표면에서 무인 자동화 건설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열처리를 통해 화성 토양을 굳히는 방식으로 벽돌을 만들고, 이를 쌓아 구조물을 건설하는 방식도 있다. doi: 10.1038/s41598-017-01157-w 인쇄한 집이 더 튼튼할까, 아니면 벽돌집이 더 튼튼할까. 동화 속 아기돼지 삼형제처럼 늑대의 입김, 그러니까 화성의 극한 환경에서 어떤 집이 잘 버틸지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화성 하늘을 날아다닐 날을 그리며

 인제뉴어티 

 

스타십을 타고 화성에 착륙할 때는 죽는 줄 알았다. 웬 사기꾼에게 걸려서 화성 테라포밍 계획에 투자할 뻔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나의 화성살이는 꿈과 희망이 가득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방금 전에는 옆방 친구인 마크가 다음 달에 드론을 타고 극관 구경을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갔다. 화성에서의 삶이 궁금해 화성에 왔다. 화성에 와서도 다른 지역을 궁금해하는 우리를 보며 역시 인간이란 호기심의 동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어쩌랴. 우주는 이렇게 넓고 우리가 모르는 건 어마어마하게 많다. 신난다!

 

3월 22일(현지시간) NASA의 화성탐사 헬리콥터 ‘인제뉴어티(Ingenuity)’가 48번째 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구 밖 행성에서 동력비행에 성공한 건 인제뉴어티가 유일하다. 헬리콥터를 띄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렵다. 화성의 대기 농도는 지구의 약 1% 수준이다. 비행기나 헬리콥터가 떠오르려면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양력을 만들어야하는데, 대기가 옅은 화성에서는 공기의 흐름 자체를 만들기가 어렵다.

 

지면을 달리는 로버가 전부였던 화성의 운송수단에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사람도 화성 하늘을 누빌 수 있을까. 전은지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헬리콥터의 경우 날개가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가에 따라 양력이 좌우된다”며 “날개가 도는 속도에도 한계가 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가 옅어지기 때문에 헬리콥터에 사람이나 짐을 실으려면 어느 정도의 무게까지, 얼마나 높이, 얼마나 빠르게 운송할 수 있을지 등의 문제를 풀어야한다”고 했다. 전 교수는 “로켓을 추진장치로 활용한 드론 등이 더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화성까지 가는 것부터 정착할 땅을 고르는 것, 정착지를 꾸리는 것까지 모두 지구보다 몇 곱절은 더 어렵다. ‘굳이 화성에 가서 살아야 할까’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전 교수는 “저는 지구가 망할 때를 대비해서 화성에 이주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당연히 지구를 어떻게든 살 만한 행성으로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류가 화성살이를 꿈꾸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우주탐사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투자하고, 수조 가까운 돈을 들이는 이유를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건 호기심으로 설명해야 할 문제죠. 지성을 갖게 된 이후로 인류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어요. 철학, 예술, 과학 등 분야가 다를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는 수많은 지구인 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답은 지구에선 알 수 없으니 지구 밖, 화성에서 찾아보겠다는 겁니다.”

 

2050년, 붉은 행성 위의 당신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당신의 개척생활에 꿈과 희망이 가득하길 바란다. 

 

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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