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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은 화성에 한 평 남짓한 땅을 가지고 있었다.

핍의 아버지는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화성의 올림푸스 산 정상에 올랐다. 아버지가 살 수 있는 땅은 정상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곳이 전부였다. 그게 어디랴. 이 우주에는 자기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아버지가 본 매물도 화성 지각변동으로 하루 전에 생긴 땅이라 했다. 빨리 채가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분명 사갈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진행했다. 사인은 거침없었고,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쳤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토지 증서는 핍에게 상속되었다.   - 김준녕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중

 

우여곡절 끝에 화성에 도착한 개척자여, 환영한다. 그리고 축하한다. 이제부터 발을 디디는 어디든 다 당신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있었던 ‘홈스테드 법’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개발되지 않은 토지를 한 구역당 약 20만 평씩 무상으로 나눠주는 법이다. 이 법에 따라 당시 서부에서는 빈 땅에 깃발을 먼저 꽂는 사람이 그 땅 임자가 됐다.

화성도 마찬가지다.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 제1조에는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은 종류의 차별없이 평등의 원칙에 의하여 국제법에 따라 모든 국가가 자유로이 탐색하고 천체의 모든 영역에 대한 출입을 개방한다’고 써있다. 어렵게 들리지만 요지는 화성에는 땅 주인이 없다는 뜻이다. 당신이 화성의 일정 영토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국가라고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우주조약은 특정 국가가 화성의 영역을 전용하는 건 확실히 금지한다). 

자, 이제 골라보자. 어디에 터를 잡을까. 당신의 선택에 도움이 될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01 물만 채우면 여기가 한강 뷰 | 거짓말에 넘어가지 말 것

 

큰 문명은 큰 강 주변에서 탄생한다. 중국 황하 강에서는 황하 문명이, 이집트 나일강에서는 이집트 문명이 꽃을 피웠다. 한국의 수도, 서울이 한강 주변에 자리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건 지구 이야기다. 화성에서 “여기에 물을 채우면 ‘리버 뷰’나 ‘오션 뷰’가 된다”는 말로 당신을 유혹하는 부동산 업자가 있다면 뒷걸음쳐 최대한 멀리 떨어지자. 사기꾼이다.

 

2023년 지구인들은 화성에 직접 가보지 않고도 화성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달 및 외계행성 지도학 카탈로그(Lunar and Planetary Cartographic Catalog)’에 접속하면 누구나 쉽게 고도를 반영한 화성 지도를 다운로드 할 수 있다. 그 다음 해수면 높이가 어느 정도일지만 정하면 ‘물을 채운’ 화성의 모습을 시각화하는 건 간단한 문제다. 운석 충돌구에 물이 고여 생긴 동그란 호수, 협곡을 따라 물이 흐르며 생긴 강줄기 등에 이름을 붙여보는 작업 등도 화성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 화성에 물을 채운다고 해도 그 물은 오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태양풍 때문이다. 태양풍은 태양이 매초 약 100만t(톤)씩 뿜어내는 플라즈마 입자의 흐름이다. 에너지가 몹시 높아 기체가 태양풍과 만나면 플라즈마 입자의 흐름에 말 그대로 ‘쓸려간다’.

 

화성에도 바다가 있었다. 미국 애리조나대와 스탠퍼드대 등 공동연구팀이 2022년 국제학술지 ‘지구와 행성과학 회보’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성은 45억 년 전 태어났을 때부터 따뜻한 바다를 가지고 있는 행성이었다. 연구팀은 화성 대기의 진화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로 화성 탄생 초기의 대기 환경을 추정해봤더니, 당시 화성은 오늘날 지구처럼 지면에 가까울수록 수증기 농도가 높고, 지면에서 멀수록 수증기 농도가 옅었다. 물을 지표면 가까이 잘 잡아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초기 화성 대기 상층부에는 수소 가스가 모여 있었다. doi: 10.1016/j.epsl.2022.117772

 

연구를 주도한 카베 팔레반 연구원은 “수소 가스는 농도가 높을 때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며 “밀도 높은 대기는 강력한 온실 효과를 유발해 초기 화성에 수백만 년 동안 따뜻한 바다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후 수소가 점차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가면서 온실효과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다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화성의 자기장이 약해지면서부터다. 지구의 경우 태양풍으로부터 대기를 보호할 수 있는 자기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화성의 경우 약 40억 년 전부터 자기장이 점차 약해지기 시작해, 현재는 지구 800분의 1 수준의 아주 약한 세기의 자기장만 남아있다. 태양풍을 막아줄 방패를 잃은 셈이다. 대기부터 시작해서 지표면의 물까지 모두 태양풍에 휩쓸려갔다.

 

부동산 업자의 말을 철썩 믿고 땅을 산 다음, 집 앞 자그마한 운석 충돌구에 물을 채워 연못을 꾸민다고 생각해 보자. 오늘날 화성은 태양풍에 대기를 대부분 뺏긴 상태다. 이 때문에 대기압은 약 0.006기압으로 지구의 약 0.75%다. 기온은 -133~27℃를 오간다. 이런 환경에서 물은 액체로 존재할 수 없다. 고체 또는 기체다. 온도가 높아지면 물이 기체로 승화해 태양풍에 쓸려갈 거고, 온도가 낮아지면 얼어서 땅 아래에 숨어있을 거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기껏 채운 물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02 대규모 테라포밍 계획 | 신중히 투자할 것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냅다 물부터 부을 것이 아니다. 핵심 키워드는 자기장, 대기, 그리고 기온이다. 이 순서대로 해결해야 한다. 자기장을 회복해야 대기를 잃지 않을 수 있고, 대기가 두터워야 평균 기온이 높아진다. 물론 자기장, 대기, 기온은 한 사람이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대규모 테라포밍 계획에 투자자를 모으는 중인데, 지금이 딱 뛰어들 타이밍”이라고 권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우주탐사그룹장과 함께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화성 테라포밍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짚어봤다.

 

가장 유명한 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주장이다. 화성의 극지방에는 거대한 드라이아이스 덩어리가 있다. 이를 ‘극관’이라고 부른다. 머스크는 여기다가 핵미사일을 1만 개 이상 터뜨리면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서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방출될 거라고 주장한다. 온실가스가 더 많아지니 자연히 화성 기온이 상승할 거란 이야기다. 문 그룹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핵폭탄을 터뜨리면 열이 발생하니 극관을 녹일 만큼은 될 것”이라며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방법은 합의가 안될 것”이라고 했다. 우주조약 때문이다. 우주조약 제4조에 따라 그 누구도 천체에 핵무기 또는 기타 모든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를 설치할 수 없게 돼있다. 문 그룹장은 “공학적 가능불가능 여부를 떠나 합의에 절대 이르지 못할 방법이며, 자기장이 없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도 곧 태양풍에 쓸려갈 테니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화성 테라포밍 이론의 주요한 축은 화성에 광합성을 하는 미생물을 보내 대기 중 산소 농도를 높이는 방식이었다. 임레 프리드만 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생물학과 교수는 1995년 국제학술지 ‘어드밴시스 인 스페이스 리서치’에 화성 테라포밍을 위해 남세균을 보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doi: 10.1016/S0273-1177(99)80091-X 남세균은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드는 세균을 일컫는다. 프리드만 교수는 특히 크루코키디옵시스(Chroococcidiopsis)라는 종의 남세균은 극한 환경에서 잘 버티기 때문에 화성 지표 암석 아래에서도 잘 자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자기장이 없다면 소용없다. 애써 만든 산소가 태양풍에 쓸려가 버릴 것이다.

 

 

 

결국 앞서 짚은 대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화성에 자기장을 만들어주거나 태양풍을 막을 다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짐 그린 전 미국항공우주국(NASA) 행성과학그룹장은 2017년 화성과 태양의 라그랑주점(L1)에 자기쌍극자를 설치해 태양풍을 막겠다는 계획을 제안했다. 화성과 태양 가운데에 자기쌍극자를 설치하면, 자기쌍극자가 화성을 가릴 정도로 강한 자기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원리다.

 

태양풍을 막으면 대기가 더 이상 손실되지 않는다. 이 다음 극관의 드라이아이스가 녹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온실효과가 발생한다. 그 덕에 기온이 높아지면, 얼어붙었던 화성의 바다가 녹을 거라는 기대다. 그린 전 그룹장은 “과거 화성에 있던 바다의 7분의 1은 이 방법을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그룹장은 “L1점에 자기쌍극자를 일으킬 강한 자석을 갖다 놓겠다는 계획인데, 이 자석이 태양광에너지로 전기를 일으켜 자장을 만든다면 태양에너지가 공급되는 한 영구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론 예산이 많이 들 테니 실현가능성을 확실히 점치긴 어렵다”고 했다. 

 

극관을 녹이더라도 지구 수준의 대기를 만들기는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콜로라도대와 북애리조나대 공동연구팀이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성의 극관, 토양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이산화탄소와 물을 모두 대기에 더해도 화성 대기압은 지구 대기압의 약 6.9%에 불과하다. doi: 10.1038/s41550-018-0529-6 그러니 명심하자. 화성 테라포밍에 투자하려면 과학적 타당성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지 꼭 살펴볼 것.

 

 

 

 

03 땅만 보지 말자 | 얻을 수 있는 자원도 살펴볼 것

 

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척자라면, 테라포밍이라는 거창한 꿈을 좇기보다는 우선 현 상황에서 가치가 높은 땅을 찾는 것도 좋겠다. 화성 개척자들에게 가장 귀한 자원은 물이다. 우주선의 연료를 얻기 위해서도(1파트 참고), 식수를 얻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화성의 지하에는 물이 대량 묻혀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미국 행성과학연구소와 NASA 등 공동연구팀은 화성 북반구 물 분포지도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50-020-01290-z 연구팀은 NASA의 마스 오디세이, 화성 정찰 궤도선 등이 수집한 데이터 20년 치를 분석해 이 같은 지도를 만들었다. 땅속에 물이 묻혀있는지 아닌지 알아내려면 간접적인 증거를 살펴봐야 한다. 유독 땅 근처 수소 농도가 높거나, 표면에서 온도 변화가 특수한 패턴을 보이면 그 아래 물이 있을 확률이 높다. 물 분포지도를 참고해 금싸라기 땅을 선점해 보자.

 

전문가(?)의 추천을 참고해도 좋겠다. 화성 물 탐사 선두주자인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 연구팀은 2019년 북반구 중위도의 ‘아르카디아 평원(Arcadia planitia)’이 화성 착륙과 기지 건설에 적합하다고 꼽았다. 이 지역에서는 30cm만 파도 얼음을 찾을 수 있다(다른 지역은 60cm는 파야 얼음이 나온다). ‘먹고 살기 편한’ 땅을 찾는 건 지구에서나 화성에서나 가장 중요한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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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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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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