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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테크놀러지의 등장은 새로운 기회와 약속을 제공한다.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이 빌 게이츠를 만들어냈듯, 월드와이드웹의 폭발적 성장은 넷스케이프나 야후같은 새로운 부자 그룹을 만들어냈다.

'20세기의 마지막 신대륙' 인터넷에 새로운 개척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단 몇초만에 전세계 곳곳을 연결해주는 인터넷은 또하나의 세상인 '글로벌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를 열어 보인다. 새로운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로 연결된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법칙과 질서가 지배하는 곳. 그곳을 먼저 정복한 사람이 곧 신대륙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인터넷은 그런 의미에서 ‘기회의 땅’이다. 인터넷이 가진 새로운 원리를 먼저 개발해낸 사람들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인터넷이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사이버 거부(巨富)들도 등장했다. 인터넷이라는 시장을 기반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Netscape Communications)사. 일반 사용자들이 컴퓨터에서 정보의 보고인 월드와이드웹(WWW)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일약 인터넷 스타덤에 올랐다.

야후(Yahoo)라는 이상한 이름의 회사는 인터넷을 여행하는 사용자들의 안내소 역할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유유넷(UUnet)과 같은 회사는 우리나라의 아이네트와 같이 일반 사용자나 기업들이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도록 접속서비스를 제공, 성공한 기업이다. 오픈마켓(Open Market)사는 인터넷에 상점을 개설하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빌려주는 사이버 임대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이밖에도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돈을 만드는 회사 사이버캐시(CyberCash)나 인터넷 전화인 ‘인터넷 폰’을 개발한 보컬텍(Vocaltec), 그리고 매크로미디어(Macromedia) 등 인터넷에서 부상하고 있는 기업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넘쳐나는 열정, 각고의 노력이 결합돼 성공을 낚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흥 거부로 등장하는 인터넷의 벤처 기업들은 꿈과 열정이 살아있는 ‘사이버 실리콘 밸리’를 형성해간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기업이다. 획기적인 신제품을 내놓아 여기저기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스타가 된다. 당연히 시장에서의 기업 가치도 함께 치솟아 직접적인 부로 연결된다.

앞서 열거한 기업들은 모두 최근 미국에서 주식을 공개했고 유망종목으로 손꼽힌다. 이 기업들을 만든 창업자들은 물론 성공과 함께 주가 폭등으로 ‘백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모험 자본가들도 인터넷에 등장하는 기업들의 가능성을 점치며 유망한 기업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MIT 미디어랩 설립자이며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를 쓴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olas Negrofonte) 교수도 최근 투자한 와이어드 벤처(Wired Venture)가 상장을 하면서 주가가 올라 2백60만달러 이상을 가진 백만장자가 됐다. 이처럼 인터넷을 주 활동무대로 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서 최근에는 이들 ‘사이버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만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증권 분석가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MIT 미디어랩의 네크로폰테 소장. '와이어드 벤처' 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


넷스케이프사의 제임스 클라크·마크 앤드리센
단 하루만에 5천억원 벌어


인터넷에서 성공한 기업들 중 선두를 달리는 넷스케이프사는 ‘인터넷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PC 사용자의 90% 가까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것처럼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월드와이드웹을 검색하는 사용자의 80% 이상이 넷스케이프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쓸 정도다. 94년 4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설립 2년여만에 소프트웨어 황제 마이크로소프트와 견주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회사 공동설립자인 클라크와 마크 앤드리센은 전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인물이 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수 출신인 클라크는 52세의 젊지 않은 나이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과 기백은 오히려 앞서가는 인물. 그는 80년대초 PC 혁명의 여명기에 실리콘그래픽스사(SGI)라는 워크스테이션 전문업체를 설립했다. 메인프레임(대형컴퓨터) 중심의 컴퓨터 환경이 보다 작고 성능이 뛰어난 데스크톱 중심으로 변해갈 시기였다.

특히나 실리콘그래픽스는 컴퓨터가 다루는 데이터가 문자 중심의 정보에서 점차 화상 분야로 옮겨갈 것을 정확히 예측해내 이 영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할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어낸 ‘쥐라기공원’을 본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벨로시랩터의 날렵하고 사나운 몸놀림 역시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의 작품이다.

하지만 클라크는 SGI가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회사를 그만두었다. 자신이 황무지를 개척해 일군 회사가 겨우 열매를 거둘 때쯤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는 데스크톱 환경이 이제는 네트워크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감지해냈다. 클라크는 어느날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졸업반 학생이었던 마크 앤드리센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전자우편을 보냈다.

당시 마크 앤드리센은 일리노이 주립대학 국립 슈퍼컴퓨팅 응용센터(NCSA)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임금은 시간당 6.85달러. 그는 과학 연구용 3차원 영상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지만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NCSA가 관심을 갖는 월드와이드웹 검색 프로그램 ‘모자이크’를 개발해냈다. 모자이크는 윈도 환경에서 월드와이드웹을 누구나 간편하게 검색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로, 월드와이드웹의 발전과 인터넷의 대중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클라크가 앤드리센에게 관심을 가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모자이크 프로그램의 상용 버전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앤드리센이 클라크를 찾아 실리콘 밸리로 갔다. 첫 대면 이후 클라크는 앤드리센이 상당히 사업적인 감각에서 뛰어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고 한다. 그렇게 50대의 노장과 23세의 패기로 가득찬 젊은이는 동업자가 됐다.

94년 4월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스(후에 넷스케이프로 회사 이름을 바꿈)를 설립했다. 인터넷 기업들 가운데서도 가장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인 넷스케이프는 1년여만에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것도 모든 증권 관계자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마술을 연출해내며 기업을 공개한 것이다. 상장 하루만에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71달러까지 뛰어 올랐다. 대부분이 25달러에서 30달러선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상의 두배를 넘어섰다. 넷스케이프 주식의 32%를 가지고 있는 클라크는 단 하루만에 5억7천만달러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앤드리센 역시 6천만달러에 가까운 부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마크 앤드리센은 순식간에 엄청난 부자가 된 이후에도 살아가는 모습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청바지에 T셔츠를 즐겨 입는 차림새 역시 마찬가지이고 종종 새벽 3시까지 일을 하는 것도 변함없다. 여가시간에는 다른 부호들처럼 경비행기를 타고 휴양지를 찾거나 요트를 즐기는 대신 달리 이웃들과 축구공을 차는 것으로 피로를 푼다. 팔로 알토(Palo Alto)의 방 2개짜리 집을 빌려 살다가 최근 방 3개짜리 집(역시 임대)으로 이사를 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넷스케이프가 상장을 해서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날, 그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아침 11시쯤에야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하루를 맞았다. 침대에 누워 신문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클라크와 함께 연일 화제의 인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자가 된 것을 실감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평상시와 같이 오전 10시쯤 출근해 5시면 퇴근하고 함께 살고 있는 여자친구, 그리고 아끼는 애완견과 산책하는 것이 변함없는 그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넷스케이프의 기술담당 부사장으로 일의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벽 3시까지 다음 제품을 구상하며 집에서 일을 하는 것도 평범한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저녁 외식을 부담없이 할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전음악 마니아인 그가 희귀한 앨범들을 언제든지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일 뿐이다.
 

넷스케이프사의 제임스 클라크(오른쪽)와 그의 '젋은' 사업 파트너 마크 앤드리센. '인터넷의 빌게이츠'로 불린다.


야후의 제리 양·데이비드 필로
취미가 사업으로 성공, 데이트도 골프도 뒷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또하나의 커플은 야후의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다. 두 사람은 취미삼아 시작한 일을 사업의 아이디어로 연결해 멋지게 성공해냈다. 월드와이드웹에 있는 웹 페이지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터넷 항해에 길잡이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냈다. 이제 야후는 전세계적으로 하루에도 50만명의 사용자들이 즐겨 찾는 웹 사이트이며 6백만건 이상의 접속 건수를 기록한다. 인터넷에서 광고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 가운데 수위를 다툰다.

스물 일곱의 제리양은 대만에서 태어났다. 세상을 알기도 전인 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삼촌을 따라 10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어려서부터도 영민하고 호기심이 강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제리 양이 3살부터 글을 익혔으며 항상 질문이 많아 자신을 괴롭혔다고 전했다. “엄마, 저것이 뭐죠?”, “왜요?”라는 말은 제리가 즐겨쓰던 말이었다.

미국에 건너와 새너제이에 살면서 그는 항상 전과목 A의 우등생이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90년 졸업했다. 진로를 고민하던중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데이비드 필로를 만났다.

루이지애너주 태생인 필로는 튜레인 대학을 졸업한 후 스탠포드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양과 필로는 서로 밤을 새워가며 인터넷을 배회하다가 자신들의 ‘올빼미식 취미’를 사업으로 연결할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했다. 서로 인터넷에서 발견한 사이트 목록을 정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두사람의 목록을 하나로 모아 인터넷 주소록을 만들었다. 인터넷 사용자와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디딤돌로 야후의 주가는 치솟기 시작했다.

동업자이며 동시에 절친한 친구인 양과 필로는 지금도 인터넷의 미래와 야후 서비스의 발전방향 등을 이야기하며 수시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밤, 낮 가리지 않고 쉬지않고 일해야하는 것도 ‘취미’가 ‘사업’으로 바뀌면서 이어져 온 일상이다.

제리 양은 때로는 “마음껏 잠자고 골프치러 다니던 때가 그립다”고 한 인터뷰에서 털어 놓았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말이다. 2년을 넘게 사귀고 있는 일본인 여자친구 ‘아끼코’도 자신과 놀아주지 않고 일만 한다고 항상 불만에 차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잠자고 골프치는 여유, 연인과의 데이트도 과감히 내일을 위한 거름으로 썩혀 놓는다.

청바지를 즐겨 입고 밤을 낮삼아 일하는 젊은이들. 눈 앞에 펼쳐지는 기회의 땅 인터넷에서 마음껏 사업의 아이디어를 펼치고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 내려는 땀과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막 그 땀이 결실을 맺어 성공과 부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회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인터넷에서의 성공은 이제까지의 기반을 닦은 기업들의 몫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사이버세대의 것이다.
 

야후의 제리 양(왼쪽)과 데이비드 필로. 스탠포드대학에서 만나 친구가 된 두사람은 이제 동업자로 발전했다.

 

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지선 인터넷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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