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비과학적 주장을 피할 수 있을까
‘가짜 과학’으로 분류되는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과학의 ‘권위’만 등에 업고 있으며, 실제로 과학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유사과학적 주장들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과학철학자인 리 맥킨타이어 미국 보스턴대 철학과 과학사 센터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과학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만든 요인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증거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증거가 있다면 기존의 주장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유사과학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점성술이나 타로 카드를 판독할 때는 지금까지와 반대가 되는 경우가 생겨도 이전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죠.”
즉, 그럴듯한 주장을 듣는다면 직접 그 내용을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책이나 논문 등의 연구가 있는가? 그 연구는 적합한 과학적 방법론을 거쳐 연구되었는가? 연구는 동료 평가*를 거쳐 과학계 내부에서 인정받았는가? 간단한 검색만 몇 번 거쳐도 가짜 과학을 믿을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지구 평평론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다
하지만 가짜 과학을 믿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사람의 믿음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믿음이 허무맹랑한 음모론이나 청부과학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지구 평면설’을 들어보았는가? 말 그대로 지구가 구형이 아니라 평평하다는 내용의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처음으로 계산한 지 약 2200년이 지났지만, 지구 평면설은 여전히 살아있고 오히려 더욱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웹에서는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을 ‘지구 평평론자(flat earther)’라고 부르는데, 미국에는 이들의 모임인 ‘평평한 지구 학회(Flat Earth Society)’가 정기적으로 학회를 열 정도다.
2018년, 매킨타이어 연구원은 이 학회에 직접 참여했다. 그곳에서 평평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을 하려 시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고, 항상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학 부정론자들과 직접 만난 건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왜 그들을 직접 만났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매킨타이어 연구원은 이렇게 답했다. 그가 지구 평평론자를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지구 평면설은 지구 평평론자들의 정체성이었다는 점이다. 매킨타이어가 인터뷰한 많은 지구 평평론자들은 최근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가족을 잃는 등의 큰 일을 겪으면서 지구 평면설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지구 평면설이라는 새로운 믿음과 그 와중에 만난 다른 지구 평평론자들이 큰 힘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지구 평평론자로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놀림이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퇴직 권유 같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순교자처럼 자신의 믿음을 견지한다. 지구 평평론은 이미 믿음을 넘어서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05년, 세계 줄기세포 연구를 선도한다고 알려져있던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연구가 조작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전 세계 과학계에 충격을 안겨줬는데, 사건 발생 후에도 소수의 황우석 지지자들이 계속해서 황 교수를 둘러싼 음모론을 제기했다. 황 교수는 성공을 시기한 사람들이 조작한 음모에 빠졌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논문 조작 파문을 일으킨 한 과학자를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김종영 당시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황빠’ 현상 이해하기’라는 논문에서, 속칭 ‘황빠’로 불리는 황우석 지지자들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많은 지지자들이 황 교수가 약속한 난치병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을 관찰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황 교수의 말은 진실과 거짓으로 구분되는 언명이 아니라 언젠가 이뤄져야 할 믿음의 대상이었다.
이런 관찰들은 과학 부정론자들의 믿음과 그들의 정체성이 연결돼 있고, 따라서 그들을 설득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과학 부정론자를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설득하려면 먼저 들으라
“저는 과학 부정론자들이 당신의 말을 듣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듣고 있으면 무슨 헛소리냐고 반문하며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이 혀끝까지 차오르겠지만, 상대방도 나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당신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과학 부정론자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의 설득이 무조건 실패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고, 모욕하는 거죠.”
상대방을 싸움에서 이길 적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예를 갖추고 대화하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당연한 만큼, 피곤하고 한숨 나오는 결론이기도 하다. 과학 부정론자를 설득하려면, 우선 지구가 평평하고 지구 온난화는 음모이며 백신에는 나노머신이 섞여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줘야 한다는 뜻 아닌가. 그냥 과학 부정론자들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마음 편하게 살면 안될까? 그러나 매킨타이어 연구원은 “무시는 간편한 방법이지만 최악의 결과를 낳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과학 부정론은 실제로 사회의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 부정론자는 실제로 사람을 죽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이 서양의 음모고,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치료할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가 위험하다고 믿었죠. 그가 에이즈를 마늘, 레몬 주스, 비트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홍보한 결과 약 30만 명이 숨을 거뒀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매킨타이어 연구원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은 정중하고 참을성 있는 대화를 통해서입니다. 항상은 아니지만,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용어 정리
동료 평가(peer review) : 한 연구자의 논문을 같은 학문 분야 내의 다른 전문가가 평가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