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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업이 만들어낸 가짜 과학, 청부과학

 


 

정유회사는 어떻게 지구 온난화를 숨겼나

 

2023년 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특이한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이 논문의 연구 대상은 정유회사 엑슨모빌(ExxonMobil)의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를 연구한 오래된 내부 보고서들. 정유회사의 철지난 연구를 왜 지금 다시 검토한 것일까. 그 이유는 이 보고서에 ‘지구 온난화는 허구’라는 엑슨모빌의 오래된 거짓말을 밝힐 증거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엑슨모빌은 화석연료 시추와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미국의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석유 회사 일곱 곳을 가리키는 ‘세븐 시스터즈’ 중 하나다. 또한 엑슨모빌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배출된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열심히 부정해온 기업이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화석연료 사용이 지목되는 만큼, 엑슨모빌의 수익 창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 1997년, 엑슨모빌의 당시 CEO였던 리 레이먼드는 세계 석유 의회 연설에서 지구가 온난화가 아닌 새로운 빙하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3년 후인 2000년 엑슨모빌은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은 불확실하다"며, “기후 변화에 관한 예측이나 과감한 조치를 하기 힘들다”는 내용의 보고서 ‘지구 기후변화-앞으로 나아갈 더 나은 길(Global Climate Change-A Better Path Forward)’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기후 변화가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 활동, 화산 분화, 엘니뇨 현상” 등에 의해 영향받을 수 있다고도 짚었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대처하지 못한 것과 알고도 대처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다르다. 엑슨모빌이 지구 온난화를 알면서도 은폐해왔다는 의혹은 2015년 처음 터져나왔다. 당시 공개된 문건에서 엑슨모빌의 과학자들은 경영진에게 인간이 초래한 지구 온난화가 “잠재적인 재앙”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제프리 수프란 미국 마이애미대 환경과학정책과 교수팀은 엑슨모빌이 지구 온난화를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있었는지 알기 위해, 엑슨모빌의 과학자들이 1977년에서 2003년 사이 작성한 연구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doi: 10.1126/science.abk0063 이 자료는 대기 중 온실 가스 농도에 따라 지구 온난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모델링하는 등, 기후 변화에 관한 32편의 내부 문건과 72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프란 연구팀은 엑슨모빌의 자료에서 찾은 16개의 온도 예측 자료와 실제 온도 변화 데이터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연구의 정확도를 평가했다. 그러자 16개 중 12개의 자료가 실제로 일어난 온도 변화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수프란 연구팀은 나아가 엑슨모빌이 만든 기후 예측 모델들의 신빙성을 알아보기 위해 기술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16개 예측의 평균 점수는 58~76%로 나타났다. 외부 학계와 정부 기관에서 1970~2007년 사이에 발표된 18개 예측의 평균 점수는 69%였다. 즉 엑슨모빌은 학계의 과학자들 만큼이나 지구 온난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과학에 의심을 섞어 판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자가 객관적인 실험과 데이터를 통해 지식을 만드는 가치중립적인 직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자의 연구가 항상 같은 목적과 속성을 가지고 수행되지는 않는다. 엑슨모빌 사례의 경우, 연구자들이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지만, 서로 다른 가치를 위해 반대로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학계와 정부의 연구자들이 미래에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연구 결과를 알리고 퍼뜨리는 데 집중했다면, 엑슨모빌은 이윤 추구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숨기고 반대가 되는 내용을 대중에게 퍼뜨렸다. 공중보건정책학자인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이렇게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수행되는 과학을, 용병처럼 청부받은 연구를 한다는 의미에서 ‘청부과학(mercenary science)’이라 불렀다. 청부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숨기고 조작하며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장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한다.

 

 

 

엑슨모빌의 사례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청부과학의 시작은 무려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12월 15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미국에서 가장 큰 4개 담배회사의 사장들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담배 업계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계속해서 나오면서 담배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모인 사장들은 흡연이 사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뒤흔드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담배 회사가 사용한 중요한 전략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담배산업연구위원회’를 만들어서 담배가 유해하다는 연구에 이의를 제기하고, 담배의 무해성을 입증하는 연구에 자금을 투자했다. 이를 위해 담배와 관련없는 다른 분야의 과학자를 이용하기도 했다. 또 담배의 유해성이 정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홍보물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뿌렸다. 또한 언론에는 담배의 유해성이 과학계에서 논쟁 중인 사안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담배의 유해성이 당대 논쟁의 대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1950년대, 담배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적 증거가 쌓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언제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새로운 연구에서 신뢰할 만한 증거가 더 쌓일 수도 있고, 어쩌면 기존의 결과를 뒤집는 증거가 나올 수도 있다. 과학은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증거를 쌓으며 불확실성을 조금씩 제거해나가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담배 회사가 노린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들은 과학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커다란 의혹으로 만들어 과학적으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던 담배의 유해성을 논란거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이클스는 담배 회사의 청부과학자들이 “불확실성을 제조(manufacturing scientific uncertainty)”했다고 표현했다. 과학에 대한 의심을 부추기고 커다란 논란으로 만들어라. 이것이 가짜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의 전략이었다.

 

 

한국에도 있다

 

“청부과학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진행형인 ‘가습기 살균제 참사’죠.”

 

박진영 부산대 느린 재난 연구팀 전임연구원이 운을 뗐다. 그는 과학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연구하는 과학사회학자다. 한국에서의 담배 소송 사례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연구하면서, 그는 청부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가습기에 담은 물에 섞어 쓰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심각하게 다친 사건이다. 2011년 4월 숨쉬기 힘든 임산부 환자들이 이유 불명의 폐질환으로 입원했고, 같은 해 8월 말에야 그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음이 드러났다. 2022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1994년~2011년 사이 가습기 살균제로 2만 366명의 사망자와 약 95만 명에 달하는 건강피해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피해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에 섞여있던 살균 물질인 PHMG였다. 피부에 발랐을 때는 큰 독성을 나타내지 않던 PHMG가 호흡기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이 원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회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청부과학자를 고용했다.

 

2011년, 대표적인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인 ‘옥시레킷벤키저’는 조명행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와 유일재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에게 PHMG의 독성을 연구해달라고 의뢰했다. 2017년 대법원은 옥시가 이 과정에서 유 교수에게 회사 측에 유리하도록 실험 결과를 내줄 것을 부탁하고 자문료 2400만 원을 줬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를 통해 옥시 측은 기업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할 수 있었다.

 

 

결국 2017년, 유 교수는 배임수재 및 사기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 4개월, 추징금 2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조 교수의 경우 대법원에서는 무죄로 판결났다. 그러나 연구 윤리를 심사하는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2020년 그의 연구에 관해 조사한 후 법적 판단과 별개로 “연구 부정행위가 명백하다”고 결론내렸다.

 

2011년 한국의 과학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회사를 위해 수행한 연구를 보면, 앞서 살펴 본 해외 사례와 놀랍도록 닮았다.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되는 기존의 연구 결과를 뒤집기 위해 청부과학자를 활용했다. 옥시의 경우 전문가에게 청탁해 독성 물질에 관한 가짜 지식을 생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지식으로 언론에는 의혹을 부추기고, 법정에서는 피해자들이 제출한 증거의 영향력이 낮아지도록 하는데 활용한다. 

 

이렇게 청부과학의 전략이 비슷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담배 회사의 전략이 너무 성공적이었던 나머지, 정유 회사를 비롯한 다른 산업계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차용해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CFC)를 생산하던 화학 산업계부터, 제초제에 독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농업 회사, 적당량의 음주가 건강에 좋다고 홍보하는 주류 회사까지. 

 

“사실상 청부과학은 전 세계를 배경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죠.”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렇게 널리 퍼져있다면, 청부과학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청부과학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논문 뒷편에 실린 ‘이해 관계(Ethics declarations)’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코올의 건강 효능 연구를 주류 회사가 지원했다거나, 탄산음료 회사가 지원한 충치 연구라면 의심해 볼 여지가 충분하겠죠.”

 

 

 

과학자가 과학을 배신할 때

 

청부과학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엄청나다. 혈액형별 성격론 등 유사과학이 귀엽게 보일 정도다. 우선 청부과학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강 문제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에릭 콘웨이가 쓴 ‘의혹을 팝니다’에 따르면, 1954~1979년 사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된 125건의 소송 중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끝난 재판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그 사이 흡연에 관한 규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청부과학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을 덜 믿도록 하고, 심지어는 과학 부정론자로 만든다. 청부과학은 의혹을 자꾸 만들어내 기존 과학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담배 산업을 연구한 과학사학자인 로버트 프록터는 담배 산업에 종사한 과학자들이 지식이 아닌 “무지를 생산했다(manufactured ignorance)”고 표현했다. 앞서 소개한 수프란의 논문도 같은 지점을 지적한다. 그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학계와 정부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지만, 엑슨모빌은 자신들이 아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연구해왔다”. 청부과학은 과학이라는 자기 자신의 형태마저 부정해버리는 과학인 셈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청부과학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사회 여기저기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를 돕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수프란 연구팀이 밝혀낸 정유회사의 청부과학은 엑슨모빌이 기후 변화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민 운동인 ‘#Exxonknew(엑슨은 알고 있었다)’로 번져나갔다. 이와 함께 뉴욕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정유회사를 상대로 환경 소송을 벌였다. 수프란 팀의 연구는 소송에서 증거로 쓰였으며, 연구진이 직접 증인이 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비슷하다. “2016년 검찰 조사로 옥시 측이 PHMG의 독성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을 비롯해 여러 질환을 일으킨다는 점이 불확실한 사실로 남았을 겁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이 정부에게 피해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가습기 살균제 제조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질 수밖에 없었을 거고요.”

 

옥시의 청부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아니라 피해자를 돕는 과학은 없는 걸까?

 

박 연구원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돈을 받으며 기업 측의 이익을 대변한 과학자도 있었지만, 백도명 전 서울대 보건대 교수처럼 발벗고 나서서 피해자를 돕기 위해 노력한 과학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청부과학을 넘어 ‘피해자 중심 과학’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청부과학은 과학이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과학 지식의 생산이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목적에 의해 분화된 것이죠. ‘청부과학은 나쁘다’에서 논의를 끝낼 것이 아니라, 청부과학이나 언던사이언스로 인해 발생한 피해자를 위한 과학이 무엇일지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 봅니다.” 

2023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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