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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생리의학상 I 인류 진화의 비밀 밝힐 타임머신을 만들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고인류 유전체와 인류 진화에 대한 비밀을 밝혀 낸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에게 수여됐다. 페보 소장은 1997년부터 25년간 진화인류학 연구소에서 고인류 유전체 연구를 이끌어 온 ‘고유전체학(Paleogenomics)’ 분야의 개척자다.


네안데르탈인 등 고인류 유전체를 해독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인이 속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지식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켰다.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화석으로 남은 고인류들과 현대인의 진화적 관계를 밝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뼈의 형태로 고인류 사이의 계통 관계를 추론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높다. 형태가 진화하는 방식과 속도는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계통분류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코자 현생 생물종의 계통분류 연구에 DNA 염기서열을 활용했다. DNA 염기서열은 시간에 비례해 일정한 속도로 변하며, 이를 설명하는 정교한 집단유전학 수리 모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87년 앨런 윌슨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팀은 현대인의 염기서열을 분석·비교한 미토콘드리아 이브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연구는 아프리카 외 지역 사람들의 염기서열은 매우 비슷한 반면, 아프리카 사람들의 염기서열은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밝혀 호모 사피엔스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DNA로 맞춘 인류 진화의 퍼즐


현대인 시료만을 이용해 지난 20만 년 동안의 진화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고인류 유전체 정보의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대두됐다.


페보 소장은 미토콘드리아 이브 연구가 수행된 직후인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윌슨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는 고시료 DNA 추출 및 해독에 필요한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고인류 유전체 정보에 대한 오랜 갈증을 하나씩 해소했다. 


페보 소장은 고시료 DNA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았다. 네안데르탈인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지금은 멸종된 동굴곰 등의 DNA 연구를 통해, DNA 추출 및 해독 과정에서 오염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오래된 DNA의 화학적 특징도 밝혀냈다. 이중나선 구조 DNA는 시간이 지나면 쪼개져 끝부분이 한 가닥만 남는다. 이 부분에서 시토신 염기가 유라실이 되는 ‘시토신 디아미네이션’이 발생한다. 페보 소장은 오래된 DNA일수록 이 시토신 디아미네이션이 DNA 양쪽 끝에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페보 소장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해독에도 성공했다. 2006년 핵유전체 일부 해독, 2008년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완전 해독, 2010년 유전체 초안 해독 등 엄청난 성과를 연이어 발표했다. 노벨위원회의 설명처럼 “불가능해 보였던(seemingly impossible)” 일을 이룩한 것이다.


 
고인류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조각


페보 소장의 연구는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과는 약 55만 년 전에 갈라진 별개의 집단이고, 현대인은 약 20~30만 년 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원했음을 확고히 증명했다. 


고인류의 유전자가 현대인들에게 남아있단 사실도 알렸다. 페보 소장은 아프리카 밖으로 이주한 호모 사피엔스가 약 6만 년 전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과 만나 후손을 남겼고, 우리와 같은 유라시아 사람들의 유전체에는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조각이 약 2% 정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페보 소장은 데니소바인이라는 새로운 고인류 집단도 찾아냈다. 페보 소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2008년 남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손가락뼈의 유전체를 분석해 데니소바인을 세상에 알렸다.


데니소바인 역시 유라시아 동부로 이주한 현대인과 만나 후손을 남겼는데, 오늘날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필리핀의 일부 수렵채집인들이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6% 정도 갖고 있다.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티베트 사람들에게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EPAS1 유전자 변이도 물려줬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해독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에 걸쳐 넓은 지역에 살았던 10명이 넘는 고인류의 유전체가 해독된 상태다. 9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엄마와 데니소바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13세 소녀 ‘데니’의 유전체도 이 중 하나다. 페보 소장의 연구는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고인류의 역사와 행동까지 새롭게 조망했다.

유전자 유산은 인류 삶에 어떤 영향 미칠까


고인류 유전체 연구가 우리의 건강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사람들 간의 유전적 차이는 질병에 취약한 정도와, 약과 치료에 대한 반응 등 다양한 형질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유전적 차이의 상당 부분을 고인류에게서 물려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중증화 가능성을 낮추는 12번 염색체상의 변이가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서 유래했다는 페보 소장의 최근 연구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존 앤서니 카프라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팀은 전자의료기록을 이용해 다양한 신경정신질환 관련 형질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질환과 관련된 형질이 네안데르탈인의 변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표현형의 다양성을 폭넓게 조사하는 이른바 ‘심층표현형연구(Deep Phenotyping)’가 계속되면 고인류 유전자 유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더욱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페보 소장이 우리에게 선물한 인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지식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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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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