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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분석 보고서 I 현대 과학의 토대를 쌓은 수상자들

 

2022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현장에 세상의 이목이 쏠렸다. 고유전체학부터 양자얽힘에 대한 연구,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까지. 노벨상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멀리는 1960년대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의 연구는 현재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꿔놨다.


2022년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현재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그리고 현재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또 어떤 새로운 기술을 창조해 내고 있을까.

 

최근 노벨상 수상 트렌드로는 단연 ‘수상자의 고령화’를 꼽을 수 있다. 그만큼 노벨상을 받은 연구 역시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다.


물리학상을 받은 벨 부등식을 검증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은 1969년 제안됐고, 1972년 그 결과를 냈다. 화학상을 받은 업적도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됐다. 클릭화학의 개념은 두명의 수상자가 각각 2001년, 2002년 발표했고, 생체직교화학은 2003년 처음 제시됐다. 생리의학상의 주요 업적으로 꼽히는 네안데르탈인의 염기 분석도 1997년 처음으로 진행됐다.


이번 노벨상 수상 업적은 빠르면 20년, 늦으면 50년 전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셈이다. 하지만 이를 한물간 연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과학의 토대가 돼 현재 진행되는 연구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양자얽힘 실험 I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의 기반이 되다


노벨위원회는 물리학상의 수상 공로를 “양자얽힘 실험과 벨 부등식의 위반 확립, 양자정보과학의 선구자”라고 밝혔다. 공로에 맞게 수상자로는 알랭 아스페 프랑스 에콜폴리텍 교수와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 존 클라우저 미국 J.F 클라우저 협회 창립자가 이름을 올렸다.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는 최근 주목받는 분야다. 양자통신은 양자얽힘 현상을 이용해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고, 해킹할 수 없도록 하는 기술이다. 2021년 차일링거 교수의 제자인 판젠웨이 중국과학기술대 교수팀은 통신선과 위성을 이용해 4600km, 최장거리 양자 통신에 성공했다.


양자컴퓨터 기술도 한창 연구 중이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중첩과 간섭, 얽힘 현상을 이용해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최적화 문제와 복잡계 해석 등 일부 분야에서는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성능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구글, IBM 등 글로벌 기업에서 양자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양자 컴퓨터의 대부분은 큐비트처럼 양자중첩을 이용한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번 물리학상의 주제인 양자얽힘은 양자컴퓨터의 하드웨어보다는 알고리즘과 연관된다. 손원민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는 “특히 양자 오류를 줄이는 알고리즘이 도입된 ‘측정 기반 양자컴퓨터’에 양자 얽힘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양자 컴퓨터 연구는 양자 얽힘을 이용한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방향으로도 이어져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성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논문을 ‘어느 분야 과학자들이 인용했는지’ 분석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글로벌R&D분석센터는 과학동아가 선정한 노벨상 수상자의 대표 논문을 기초로 해당 논문을 인용한 논문의 ‘웹 오브 사이언스(WOS)’ 카테고리(분야)를 분석했다. 분석은 기초 논문이 받은 인용의 규모, 인용이 발생하는 연구분야 비중 분포 등에 대해 수행했다.


클라우저 창립자가 1969년 실험 방법을 제안한 논문, 아스페 교수와 차일링거 교수가 각각 1982년, 1998년 발표한 실험 논문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논문을 가장 많이 인용한 분야는 양자통신과 관련된 분야였다. 이준영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글로벌R&D분석센터 책임연구원은 “세 편의 논문을 인용한 논문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며 “분야를 살펴보면 초기에 입자물리, 장물리학 분야가 높았으나 점차 줄어들고, 최근에는 양자기술, 컴퓨터과학과 관련한 논문에 인용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수상자들을 비롯해 여러 과학자의 노력으로 양자통신과 양자컴퓨터에 필요한 과학적인 토대는 모두 마련됐고, 이제는 공학적으로 얼마나 효율을 높일 수 있느냐가 남은 상태”라며 “최근에는 양자통신이 유지되는 시간이나 거리를 얼마나 늘리고, 오차를 얼마나 잡을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클릭 한번으로 분자 결합 I 화학공학 넘어 면역항암제까지


화학상도 최근 연구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학상의 공동수상자 세 명은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bioorthogonal chemistry)의 발전” 공로를 인정받았다. 클릭화학은 두 개의 분자를 쉽게 결합하는 방법을, 생체직교화학은 이를 세포 내부의 복잡한 환경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한 방법을 말한다.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의 개념은 처음 제시된 이후 화학공학 산업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활용 중이다. 최준원 아주대 응용화학생명공학과 교수는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은 지금 유기화학 분야에서 아주 널리 쓰이는 도구”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는 3세대 항암제로 꼽히는 면역항암제를 꼽을 수 있다. 항암제 대부분은 세포독성을 가지는 만큼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면역저하, 탈모 등 부작용을 겪어 왔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가 면역항암제다.


면역항암제는 크게 항체와 항암제로 구성된다. 항체는 암세포의 표면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도록 해 일반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이때 항암제와 항체를 결합하는 도구로서 클릭화학이 쓰인다. 최 교수는 “이외에도 고분자를 클릭화학으로 결합시켜 3D로 세포를 배양하거나, 어떤 물질의 표면에 다른 물질을 붙여 표면의 성질을 바꾸는 표면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이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KISTI의 분석 결과에서도 클릭화학의 파급력이 잘 드러난다. KISTI가 배리 샤플리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의 논문(2001년 클릭화학 발표), 모르텐 멜달 당시 덴마크 칼스버그연구소 교수의 논문(2002년 클릭화학 발표), 버토지 교수의 논문(2004년 생체직교화학 제시)을 각각 분석한 결과, 논문을 인용한 분야의 종류가 빠르게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엔트로피 방정식에 분석 결과를 적용해 논문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됐는지 알아볼 수 있다”며 “세 편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2001년 0.14 수준이었던 엔트로피가 2009년 0.5를 넘어섰고, 2022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0.589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엔트로피 수치는 0에 가까우면 좁은 분야, 1에 가까울수록 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세부 분야를 들여다봐도 초기에는 유기화학에서 인용한 비율이 30%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15% 수준으로 줄었다”며 “특히 고분자 과학이 8.8%, 재료과학이 3.9%로 늘면서 소재나 재료 분야에서 클릭화학을 활용하려는 연구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연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박진서 KISTI 글로벌R&D분석센터장은 “인용 관계로 논문을 묶어 분석한 라이덴 클러스터에 따르면 관련 분야에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논문 중 최근 5년 발표된 논문이 45%에 달한다”고 말했다.

 

인류 기원 밝힌 고유전체학 I 현대인의 질병 원인을 추적하는 단서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장은 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생리의학상 단독수상은 2016년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대 교수 이후 처음이다. 고인류학자인 페보 소장이 노벨상을 받은 점도 주목할만하다. 노벨상이 처음 수여되기 시작한 1901년 이래로 고인류학자가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페보 소장의 연구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생리의학상 수상 업적은 “유전체 연구를 통해 멸종된 호미닌과 인간 진화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한 점”이다. 페보 소장은 화석의 형태를 분석하던 방식을 벗어나 유전체를 통해 고인류를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독자적으로 진화했으며, 이후 이종교배를 통해 일부 유전자가 섞이게 됐다는 것을 밝혔다.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데니소바인에서도 유전체를 추출해 현생 인류와 유전자가 섞였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페보 소장이다. 화석이 다수 발견된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 데니소바인의 화석은 어금니와 손가락뼈 등 일부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금도 데니소바인을 두고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며 “하지만 페보 교수의 연구가 아니었다면, 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진 고인류의 정체를 명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보 소장의 업적은 단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체를 분석해낸 것만이 아니다. 고유전체 연구 방법론을 만들어낸 것도 페보 소장의 업적이다.


정 교수는 “이를 ‘스탠다드 오퍼레이션 프로토콜’이라 부른다”며 “이외에도 시료가 외부 DNA에 얼마나 오염됐는지 통계적으로 추론하는 방법도 페보 교수에게서 탄생하는 등 고유전체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페보 교수로부터 시작됐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페보 소장은 자서전에서 “지금도 나는 1997년 논문이 내가 쓴 최고의 논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서술했다. 그는 1997년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초기에 인류학 관련 연구에서만 주로 인용되다가, 점차 유전학에서 인용되는 비율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홍적세 중기 현생인류의 조상에 대한 연구에 고유전체 연구 방법이 활발히 쓰이고 있다. 정 교수는 “새로운 고인류는 꾸준히 발견되지만, DNA를 추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대신 비교적 최근인 홍적세 중기의 조상들이 어떻게 이동을 했고, 그들이 남긴 유전자가 현재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연구가 이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류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고유전체학이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정 교수는 “페보 교수의 업적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 진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넓고 깊은 창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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