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노벨위원회는 물질의 새로운 합성법을 밝힌 세 명의 화학자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배리 샤플리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와 모르텐 멜달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 캐롤린 버토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이들의 수상업적은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의 발전’이다. 부산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쉽게 두 물질을 결합하는 클릭화학, 그리고 이를 생체 내에서 구현한 생체직교화학은 어떻게 탄생했고,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혼합물로 가득하다.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물도 사실은 많은 종류의 미네랄과 이온이 들어 있는 혼합물이고, 우유에는 더 많은 단백질과 지방이 콜로이드라는 입자 형태로 섞여 있다.
우리는 물이라면 모두 같은 물로, 우유라면 모두 같은 우유로 보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은 분자가 가진 다양한 작용기 때문에 일어난다. 분자들은 서로 충돌하고, 작용기들은 상호작용하면서 결합과 분해를 반복한다.
이 같은 다양성의 바다 속에서 원하는 화학반응, 다시 말해 특정 결합을 끌어내는 일은 화학자들의 숙원이었다. 각각의 혼합물은 원치 않는 반응을 일으키는 다양한 작용기를 갖기 때문이다.
버클 끼우듯 간단한 클릭화학
배리 샤플리스 교수는 2001년 ‘금속촉매를 이용한 비대칭 산화반응’ 연구로 이미 노벨 화학상을 받은 적이 있다(이번이 두 번째 노벨상 수상이다). 그리고 1년 뒤인 2002년 ‘클릭화학’이라는 반응을 처음으로 개발하고, 이름 붙였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클릭화학은 마치 레고블록을 연결하거나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듯 분자들을 쉽게 연결시킨다는 의미다. 샤플리스 교수는 클릭반응을 항상 플라스틱 버클에 빗대어 기자들과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클릭화학은 아자이드(-N3) 작용기와 알카인(C≡C) 결합을 가진 물질을 구리 촉매를 이용해 결합하는 반응이다. 다른 반응과 달리 연결하고자 하는 물질에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안정적이다. 덕분에 클릭화학이 발표된 직후부터 신약개발과 유기화학, 생화학, 고분자 및 재료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급속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공동 수상자인 멜달 교수도 비슷한 시기에 독립적으로 이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화학 반응을 클릭화학으로 쓸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압도적으로 간단한 클릭화학의 반응환경과 배타성에 있다. 샤플리스 교수가 말하는 클릭화학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 반응물이 생성물로 거의 모두 전환돼야 하고 둘째, 다양한 작용기들에 대해 배타성 혹은 직교성(orthogonality)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은 물과 산소가 있는 조건에서 반응이 진행될 수 있거나, 생성된 결합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반응은 드물다. 놀랍게도 두 명의 수상자가 각각 개발한 반응은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구리 촉매가 활성화 에너지를 낮춰 상온, 상압에서도 손쉽게 반응할 수 있다. 반응물의 원자가 모두 생성물의 원자로 전환되고 부산물이 없다는 의미에서 화학자들은 ‘원자 경제성(atom economy)’이 높다고 표현한다.
또 클릭화학에 쓰이는 작용기는 자연계와 생체 내에서 흔히 나타나는 알코올(-OH)이나 아민(-NH2) 같은 작용기와 친화적이다. 생체 분자와 결합할 때 특이성이 높다는 의미다. 단백질이나 합성 고분자가 가진 수없이 반복되는 작용기들을 침범하지 않고 사용자가 원하는 부분만 공유결합으로 연결할 수 있다. 모든 과학자가 상상하던 일이 실현된 것이다.
복잡한 세포 안에서도 ‘클릭’
샤플리스 교수와 멜달 교수가 만든 클릭화학은 다른 공동 수상자의 손에서 발전했다. 버토지 교수는 세포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클릭화학을 개발했다.
기존 클릭화학에 쓰이던 작용기도 세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촉매인 구리가 세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클릭화학은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용액에서 원하는 반응을 정확하게 끌어낼 수 있었지만, 생체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포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버토지 교수는 구조적으로 응축된 알카인(strained alkyne)을 도입했다. 샤플리스 교수가 처음 만든 반응과 달리 금속촉매가 필요하지 않도록 한층 발전시킨 것이다. 버토지 교수의 방법은 살아있는 세포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2014년 샤플리스 교수도 ‘황 불화물 교환 반응(SuFEx・Sulfur-Fluoride Exchange)’이라 이름 붙인 새로운 클릭반응을 선보였다. 실리콘과 플루오린이 결합하려는 강력한 성질을 이용해 생체에 무해한 설페이트 결합(-OSO3-)을 이끌어내는 반응이다.
이들은 ‘생체직교화학(Bioorthogonal Chemistr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살아있는 세포 안 혹은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원하는 반응을 일으키고, 세포가 가진 고유의 생리학적, 생화학적 반응은 방해하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생체직교화학은 그간 어려웠던 여러 실험을 가능케 했다. 일반적으로 생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아미노산을 끼워 넣은 새로운 구조의 단백질을 만드는 실험도, 특정 아미노산에 표지를 달아 단백질이 어떻게 결합되고 분해되는지를 추적하는 실험도 생체직교화학을 쓴다.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분야는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다당류 물질인 글리칸에 관한 연구다. 글리칸은 단백질, DNA와 함께 생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고분자로 꼽히지만, 방법이 제한돼 연구가 쉽지 않았다. 분자의 특정한 위치에 결합해 형광이나 방사선 등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 중 다당류에 결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화학자들은 생체직교화학을 이용해 글리칸에도 쉽고 빠르게 결합할 수 있는 표지를 개발해냈다. 멜달 교수 또한 이 반응을 활용해 세포막에 표지된 글리칸이 세포 신호에 관여한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화학
세 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과학자들에게 유용한 도구를 선사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도 기여했다.
가령 샤플리스 교수가 개발한 2세대 클릭화학 반응에 쓰이는 플루오로황산(Fluorosulfate)은 대중들에겐 생소하지만, 목조건축물이 많은 미국에서는 쉽고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목조건축물을 훼손하는 흰개미의 소독제로 쓰이는 기체를 바로 사용하면 된다. 연간 3000t(톤) 이상이 만들어지면서도 제조 단가는 1kg당 1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이 기체는 온실가스로도 작용하는데, 결과적으로 클릭화학은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는 물질로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질병의 진단법이나 치료법을 연구할 때도 클릭화학은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특히 원하는 표적에 약물을 정확하게 결합하기 위한 약물전달이나 특정 질병 지표에 결합해 질병을 진단하는 장치 등에 클릭화학을 응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클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는 매일 마우스를 클릭해 인터넷에서 새로운 정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클릭화학은 비록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클릭화학과 생체직교화학으로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의 복지와 보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또 다른 ‘클릭’이 이번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이유다.
● 내가 만난 노벨상 수상자 I 안주하지 않는 과학자
안주하지 않는 과학자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배리 샤플리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당시는 필자가 스크립스연구소에 있는 그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시작한 시기다. 구리 촉매를 이용한 1세대 클릭화학이 유행처럼 널리 쓰일 때, 필자는 ‘클릭 다중합반응’으로 다양한 고분자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샤플리스 교수의 두 번째 클릭화학 반응인 ‘SuFEx’에 매료된 때이기도 하다.
샤플리스 교수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필자는 “고분자 같은 재료화학에서 당면한 문제를 클릭화학으로 극복해 당신이 두 번째 노벨상을 받는 데 기여하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는 2022년 두 번째 노벨상을 받았고, 필자는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그와 함께 연구하며 실험 결과를 두고 토의하는 일이 많았다. 한 번은 연구 결과를 그에게 소개하자 단번에 “아, 깨지는 클릭 반응(decomposing reaction)으로 고분자를 만들었구나”라며 단번에 기전을 눈치채기도 했다. 필자의 호기로움이 인상 깊었는지 “‘클릭’을 했던 사람은 이 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무거운 구리공과 구리판을 건네 줬다. 실험실 동료들은 필자에게 “그건 배리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필자는 지금도 이것들을 마치 트로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에도 샤플리스 교수는 이미 노벨 화학상을 한 차례 받은, 나이는 여든을 넘긴 과학자였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그는 여전히 연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안주하지 않는 ‘참 과학자’였다. 요즘은 안전 때문에 실험실 안에서도 실험 공간과 생활 공간을 분리한다. 하지만 그의 생활 공간에 있는 책상에는 새로 만든 화합물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는 새로운 물질을 직접 만지고, 두드리고, 태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종이 문서가 사라지는 ‘페이퍼리스’ 시대에도 칠판과 손글씨를 쓰며 학생과 연구원들을 지도하곤 했다. 궁금한 점과 아이디어, 실험 결과에 대한 의견은 직접 그린 화학구조와 함께 메모로 적어 줬다. 그는 열정적으로 칠판에 화학식을 그렸고, 분필이 묻어 더러워진 손을 옷가지에 닦아버리곤 했다. 남들에게 깔끔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자신의 연구와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와의 단골 대화 주제 중 하나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었다. 그 당시에 전설적인 과학자들과 했던 실험을 영웅담처럼 말하며 아이처럼 신나 있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반응을 기억하고, 여전히 공부하는 모습은 필자에게 세대를 초월한 철학서 한 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줬다. 마치 위대한 철학자들이 던진 메시지를 직접 전달받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얼마 전 필자는 샤플리스 교수를 떠나며 “이번 노벨 화학상을 꼭 받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의 대답은 “노벨상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며 “스스로 재미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멋진 인생”이라고 답했다. 욕심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의 모습을 보고, 지금도 샤플리스 교수와 헤어지며 했던 긴 포옹과 그때의 감동, 아쉬움에 스크립스 연구소에서 바라보던 넓은 라호야 바다가 그리워진다.
※필자소개.
김현석. 부산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유기화학으로 석사, 서울대에서 고분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는 포스텍 화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hyunseokchem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