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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기술 살리고~살리고~

김종국 인기 비결은 짧은 성대

2003년 일본에서 ‘노래를 잘 부르게 해주는 알약’이 등장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먹고 10분쯤 지나면 목소리가 맑아지고 평소 어림없던 고음과 저음도 나온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노래를 잘하게 하는 기능성 음료가 나와 화제를 모았다. 음료를 마시면 폐활량이 늘어나고 성대가 유연해져 발성이 잘 된다고 한다. 도대체 노래가 뭐 길래. 노래를 살리고 죽이는 목소리의 비밀을 알아봤다.

‘고음불가’도 헤비메탈 부를 수 있다

“그댄 나의 챔피언~ 너와 나의 챔피언~”

두 남자가 멋들어지게 2006 월드컵 응원가를 열창한다. 분위기가 달아오를 무렵 갑자기 한 남자가 불안한 저음으로 “대~한민국”하며 우스꽝스럽게 끼어든다. 최근 국민유머로 자리 잡은 ‘고음불가’의 한 장면. 개그맨 이수근 씨는 노래를 ‘못 불러’ 인기를 얻었다.

마음먹은 대로 노래가 안되는 이유는 뭘까. 노래는 목으로 하는 게 아니다. 공기의 흐름을 분배하는 능력이 먼저다. 가수는 그런 능력을 토대로 목에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두성(頭聲), 비성(鼻聲), 흉성(胸聲) 등 다양한 테크닉을 이용해 노래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처음부터 이런 기술을 구사하는 것은 무리다. 자연히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목을 세게 조이게 된다. 악을 쓰기 시작하며 목에 힘이 들어가는 시점, 바로 이 부분이 육성의 한계다.

노래를 부를 때 음을 잡지 못하거나 박자를 놓치는 음치는 테크닉과 감성은 고사하고 맘 편히 마이크 한번 잡아보는게 소원일 것이다. 귓속 달팽이관 안에는 소리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내유모세포와 음량에 반응하는 외유모세포가 있다. 이들 세포의 배열이 비정상적이면 음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어 음치가 된다. 성대의 어느 한쪽이 길다든지 두께가 차이가 나는 사람도 발성을 조절하기 어려워 음치가 되기 쉽다.

음치탈출 방법은 없을까. 예송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은 “노래의 장르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후두와 성대의 근육이 다르다”며 “자신이 부르고 싶은 장르에 맞춰 후두 근육을 훈련시키면 음치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대에는 성대 근육의 긴장도나 지구력을 조절하는 윤상갑상근이 있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을 부르려면 윤상갑상근을 강하게 수축해서 성대를 최대한 긴장시켜야 강한 비트의 고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요들송을 부르기 위해서는 윤상갑상근을 빨리 움직이고 성대 근육을 유연하게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인지과학자인 영국의 콜린 체리 박사는 아주 심하게 말을 더듬는 환자들에게 이어폰을 주고 자신이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줬다. 그랬더니 이들은 평소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지 않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스스로 말더듬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최고의 ‘약’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음치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 음치탈출의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성대 짧은 당신은 ‘저음불가’

이수근 씨가 ‘고음불가’라면 가수 김종국 씨는 ‘저음불가’가 아닐까. 고음으로 치면 가수 김종국 씨를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남성은 가성을 사용하지 않고 고음을 올려봐야 2옥타브를 간신히 넘는게 고작이다. 하지만 김종국 씨는 거의 3옥타브까지 육성으로 소화한다. 비결이 뭘까.

목소리는 진동수, 세기, 음색으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남성 목소리의 진동수는 150~160Hz, 여성은 240~250Hz다. 수치가 올라갈수록 날카로운 고음이 된다.

이렇게 남녀의 음역대가 차이 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성대의 길이다. 변성기 전 성대의 길이는 0.8cm 정도지만 변성기를 거치면 남성은 평균 성대 길이가 1.8~2.4cm에 이르고 여성은 1.3~1.7cm까지 성장한다. 변성기에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는 것은 성대가 급격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성대의 길이가 짧으면 고음을 소화하기 쉬워진다. 성대를 통과하는 진동수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대가 짧은 여성이 남성보다 고음과 가성을 구사하는 데 유리한 편이다.

18세기경 성악하는 남자 중 일부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를 하기도 했다. 성 호르몬의 분비를 감소시켜 후두와 성대가 자라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성대는 소년의 크기인데, 폐와 인두(목구멍)는 성인과 같은 기형적인 발성구조를 갖게 돼 여성과 남성의 음역을 모두 가질 수 있다. 거세된 남성 소프라노인 ‘카스트라토’의 목소리가 신비롭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종국 씨는 바로 이런 선천적인 조건을 갖췄다. 변성기가 지났음에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여성과 남성의 음역을 공유하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조성진(‘핫뮤직’ 편집장) 씨는 “김종국 씨의 목소리는 얇고, 힘도 거의 실리지 않는다. 성량이 풍부한 것도 아닌데다, 고음 위주의 창법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음의 비중이 약하다”면서도 “타고난 미성에 예술적인 가성을 구사해 노래가 부드럽게 들린다”고 평가했다.
 

'아에이오우~' 부르고 싶은 장르에 따라 후두 근육을 훈련하면 음치 탈출도 꿈이 아니다.


콧소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애교 있는 독특한 콧소리로 브라운관을 점령한 현영. 모델 출신으로 몸매가 뛰어나고 성형수술 사실을 숨기지 않을 만큼 성격이 솔직한 것도 인기의 비결이겠지만 무엇보다 한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녀만의 비음이 인상적이다.

콧소리가 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발음할 때는 입천장(연구개)이 완전히 닫혀서 입안의 공기가 입에서만 순환하고 코로 빠져나오면 안되는데, 공기가 코로 빠지면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축농증이나 비염으로 코 속의 공명 공간이 막혀서 소리의 울림이 변해 콧소리가 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입 모양을 바꿔서 비음을 낼 수도 있다.

비음은 성적 매력과 관련 있다. 인간의 성적 자극을 연상시키는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3가지. 과거 모든 남성들의 우상이었던 미국의 마릴린 먼로는 이 3가지를 모두 갖췄다. 그녀의 관능적인 몸매(시각)와 코맹맹이의 여린 목소리(청각) 그리고 그녀가 애용했던 향수(후각)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중 청각을 보면 여성은 남성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호감을 가지며, 남성은 여성의 높고 여린 목소리에 매혹된다. 현영처럼 여성이 높은 음으로 애교 섞인 콧소리를 내면 여성들에게는 ‘귀엽다’ 남성들에게는 ‘섹시하다’는 느낌을 준다. 김형태 원장은 “높은 진동수의 고음과 비음 섞인 목소리가 본능적인 욕구를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어의 특성상 콧소리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원래 우리나라 말에는 된소리 발음은 많지만 비음은 별로 없다. ㅂ, ㅍ이 들어간 발음만 비음이 조금 섞일 뿐 대부분 발음은 콧소리가 섞이지 않고 한 글자씩 박자를 두고 말하게 된다. 따라서 평소 익숙하지 않은 콧소리가 튈 수밖에 없다. 불어처럼 주로 코에서 공명을 일으키는 발음이 많은 언어권에서는 콧소리의 매력이 우리나라보다 덜하다.

따라하지 말란 말이야

“광고 듣겠습니다.”

가수 배철수의 성대모사로 단숨에 유명해진 방송인 배칠수 씨는 말 그대로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아나운서 손석희를 비롯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그의 ‘입’을 거쳐간 유명인만 줄잡아 50명이 넘는다. ‘천의 목소리’의 비결이 뭘까.

목소리는 목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는 폐와 성대, 구강과 입술의 합작품이다. ‘아’라는 소리를 낸다고 하자. 우선 뇌에서 언어 기능을 관장하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서 ‘아’ 소리를 내라고 명령을 내린다. 뇌의 명령을 받은 폐는 폐 안의 공기를 기도로 올려 보낸다. 이때 성대에 있는 30여개의 근육은 강도를 조절해 성대를 알맞게 닫는다. 이 압력으로 성대가 진동하면서 성대를 통과하는 공기가 소리(음파)를 만든다. 음파가 입 안(구강)을 통과하면서 공명을 일으키고 마지막으로 입술을 빠져나오면 ‘아’ 하는 소리가 난다.

간단한 발음 하나 하는데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뇌는 각 발음마다 ‘패턴’을 미리 저장해 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저장된 패턴에 따라 일순간에 어마어마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내려 보내 원하는 발음을 만든다. 패턴 수는 셀 수 없이 많다. 패턴은 주로 8~10세에 많이 만들어지고 사춘기 이후에는 형성 속도가 느려진다. 제2 외국어를 어릴 때 가르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대모사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김형태 원장은 “패턴 발생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를 만드는 패턴이 A인 사람이 성대모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뇌에 다른 사람의 패턴을 만들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한편 김형태 원장은 “무리한 성대모사는 성대를 해칠 수 있다”며 “특히 청소년은 언어와 발성패턴의 인식이 쉽게 학습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배칠수 씨가 음성인식시스템에 대고 가수 배철수 씨를 흉내냈다. 음성인식시스템은 둘의 목소리를 구별해낼 수 있을까?

목소리는 남성다운 색깔과 여성다운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목소리에도 성별이 있다는 말이다. 갓난아기의 목소리는 성별을 구분할 수 없지만 변성기를 지나면 남성과 여성의 음색은 확연히 달라진다. 이는 성대뿐 아니라 입의 뒤쪽 부분인 인두강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인두강이 굵고 넓어 남자다운 음색을 띤다. 사람마다 인두강의 길이와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성대모사를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두 사람의 목소리는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목소리는 한 가지 진동수가 아니라 기본 진동수의 배수에 해당하는 소리들이 여러 개 섞여 있다. 목소리는 일종의 ‘화음’인 셈이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음성인식시스템은 대개 목소리의 진동수를 분석하기 때문에 성대모사 소리를 진짜라고 오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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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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