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현대자동차 강남시승센터. 한국의 1세대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 넥쏘(NEXO)를 4시간 대여하기로 했다. 수소차의 현재와 미래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차 키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넥쏘 카탈로그를 펼쳤다. 달리면 맑은 물을 만들고, 미세먼지를 빨아들여 공기를 정화시키는 차. 넥쏘 1만 대가 도로를 달리면 경유차 2만 대가 내뿜는 오염물질을 정화하며, 나무 60만 그루를 심는 효과를 낸다고. 수소차가 ‘달리는 공기청정기’라는 얘기다.
수소차에 오르기 전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으로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한창 차에 관심이 많을 30대여서인지 즉각 반응이 왔다. 충전은 얼마나 걸리냐, 가속페달을 밟는 느낌은 어떻냐… 질문이 쏟아졌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켰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웅~ 하는 엔진 시동 소리가 나야 할 텐데. 옆자리에 탄 동료가 “전기차도 이래요. 이게 시동 걸린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수소차의 첫인상은 조용함이다.
목적지를 중부고속도로 나들목에 위치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설치된 H하남수소충전소로 설정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운영 중인 수소충전소는 현대자동차가 운영하는 양재수소충전소, 서울시가 운영하는 상암수소충전소,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국회수소충전소 등 세 곳이다. 전국적으로는 총 33개(연구용 8개 포함)가 운영되고 있다.
이날 서울에서는 국회수소충전소만 운영 중이었다. 수소 택시 등으로 충전소가 붐빌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수소차의 가속 성능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발지에서 약 30km 떨어진 H하남수소충전소를 최종 목적지로 택했다.
막히지 않는 시간. 시속 100km가 될 때까지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디지털 계기판 위 연비를 확인했다. 수소 1kg당 95.7km라고 뜬다. 기자가 타고 다니는 휘발유(가솔린)차는 이 정도 속도로 달리면 연비가 리터(L)당 10km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킬로그램 단위를 리터로 환산할 때 1대 1로 변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큰 차이다(정확하게는 수소와 휘발유가 만드는 열량이 다른 점을 고려해 열량 기반 단위인 TOE(석유환산톤·1TOE는 1000만kcal)로 비교해야 한다).
20여 분 뒤 LPG 충전소와 나란히 위치한 H하남수소충전소에 도착했다. 흰색 철제로 밀폐된 수소탱크와 충전용 노즐 한 개가 충전소의 전부였다. 이곳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축에 속했다.
김태연 하남만남주유소 총무는 “H하남수소충전소는 트레일러 방식”이라며 “밀봉된 탱크 내부에 있는 트레일러가 압축기에 연결돼 있어 충전으로 빠져나간 수소의 양만큼 압축된 수소를 실시간으로 충전소 탱크에 채워 넣는다”고 설명했다.
수소차에 수소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시동부터 꺼야 한다. 주행 상태에서는 연료탱크에서 공급되는 수소의 압력과 온도가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충전 노즐에서 공급되는 수소의 압력, 온도와 같은 상태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시동을 끄자 비로소 전기자동차와 수소차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전기자동차의 경우 시동을 켤 때나 끌 때 모두 소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소차는 시동을 끄면 압력 조절을 위한 제어시스템이 가동되고, 주행 중 수소와 산소가 반응한 만큼 물이 새어 나온다. 이 과정이 15초 정도 걸린다.
김 총무는 “충전 노즐의 온도는 영하 40도”라며 “수소는 압력에 민감한 만큼 충전소 직원의 안전교육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충전 과정에서 탱크에 저장돼 있던 수소가 빠르게 이동하면 노즐과 차량의 결합 부위의 온도를 영하 40도 아래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충전소 직원은 충전이 끝나자 뜨거운 물주머니로 노즐의 말단을 문질러 온도를 올렸다.
넥쏘의 경우 수소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6.39kg이다. 김 총무는 “수소차는 가솔린차나 전기차와 달리 연료를 가득 넣지 않는다”며 “이상 현상으로 연료탱크 내부 압력이 올라갈 경우에 대비해 최대 95%까지 충전한다”고 말했다.
수소차에 수소연료가 10% 미만으로 남은 상황에서 연료탱크를 95%까지 충전할 경우 약 40분이 걸린다. 김 총무는 “수소차 운전자들은 가솔린차 운전자처럼 연료가 0이 다 될 때까지 타는 경우를 못 봤다”며 “거의 모든 수소차 운전자들은 수소연료가 30% 정도 남았을 때 충전하러 오기 때문에 길어야 30분이면 충전이 끝난다”고 말했다.
기자의 경우 수소연료 0.7kg을 충전하는데 총 12분이 걸렸다. 비용은 6100원이 나왔다. 1월 10일 기준 수소 1kg당 충전가격은 8800원이었다.
수소차 비싼 이유는 백금 때문?
시승을 위해 수소차의 스마트키를 받아들었을 때 고리에 붙은 띠를 보고 놀랐다. 7636만 원이라는 가격표였다. 2019년 기준 정부 보조금(2250만 원)과 지자체 보조금(1200만~1300만 원)을 지원받아도 본인이 부담해야 할 차 값이 약 4000만 원이다. 차 값을 지불할 준비가 됐다고 해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정부의 수소차 공급계획과 지자체별 보조금 제한 등으로 지자체 공모에 선정돼야 수소차를 살 수 있다.
수소차가 비싼 이유는 다른 차에 없는 연료탱크와 연료전지 스택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연료탱크는 연료인 고압 수소 저장 탱크다. 연료전지 스택은 연료전지 셀을 쌓아놓은 것이다. 정성욱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실장은 “이 두 장치가 전기차를 포함해 기존 자동차에는 없고, 이들의 양산 시스템도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수소차의 가격이 비싸다”며 “여기에 연료전지 셀에 들어가는 백금도 수소차의 몸값을 올리는 데 한 몫 한다”고 말했다.
백금은 지각 무게의 약 1ppb(10억분의 1비율, 1000t당 1g)를 차지하는 희귀 원소다. 은(Ag)의 약 100분의 1, 금의 약 4분의 1 정도의 양이 존재할 만큼 희귀하다. 현재 상용화된 수소차에는 대당 백금 약 70g이 들어간다.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1000만 원이다.
정 실장은 “수소연료전지 셀의 막전극접합체를 백금과 탄소를 섞어 만든다”며 “백금이 촉매 역할을 하는데, 현재 기술로는 백금을 대체할 만한 수준의 촉매가 없다”고 설명했다. 막전극접합체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반응을 유도해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며, 필름 형태로 만든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차와 수소버스를 넘어 수소비행기와 같은 이동체 전반에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료전지발전소나 제로에너지빌딩에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연료를 공급해야 하는 만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소형 디지털 기기에 도입될 확률은 낮다.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소재연구단장은 “이름만 전지일 뿐 수소연료전지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전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리튬이온전지는 충전하고 방전하는 시스템이지만, 수소연료전지는 필요할 때마다 연료를 공급해줘야 해 소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수소 생산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석유와 천연가스 등 각종 화석연료를 산화할 때 생성된다. 소 등 가축에서 나오는 메탄 같은 탄화가스에서도 얻을 수 있다. 정 실장은 “현재는 천연가스나 석유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한다”며 “이 때문에 청정연료로 불리는 수소도 결국 화석연료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2050년까지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 수소 생산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는 현재 널리 쓰이는 천연가스를 이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으로 얻은 전기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한다.
정 실장은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대신 물과 탄화가스를 이용해 질 좋은 수소를 얻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제도도 만들어지고 있다”며 “물을 전기분해할 때 쓰는 전기까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서 얻은 전기로 대체하면 완전한 청정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소가 폭발할 위험은 없을까. 정 실장은 “수소차의 연료탱크는 총알 만큼 빠른 물체를 충돌시키고 연료탱크를 낙하시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충돌 실험을 했고, 여기서 충분히 안전성이 입증됐다”며 “연료탱크를 관리하고 제어하는 기술은 충분히 고도화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연료전지 연구자에게 수소연료전지는 친환경의 관점에서 궁극적인 연구 목표”라며 “태양광, 풍력 같은 깨끗한 에너지로 수소를 만들어 일상 생활에 적용하면 더욱 나은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