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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이 손님은 무슨 헬리콥터를 타고 오시네. 운 좋게 ‘재난구조’ 칸에 걸려서 어디로든 이사 갈 수 있게 됐다고요? 그럼 우리 부동산에 잘오셨네요. 마침 어디에 집을 구해야 기후재난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있을지 딱 고를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마련해뒀거든요. 홍수, 태풍, 그리고 폭염까지 한국이 특히 취약한 기후재난 세 가지에 두루 대비할 알짜배기 정보를 알려 드리죠

 

한반도 어디든 원하는 지역, 원하는 건물에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살고 싶으신가요?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강남!”을 외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오늘날 좋은 집의 조건은 땅값이 비싼 동네의 세련된 집이죠. 하지만 여기, 그런 건 다 필요 없고 아무튼 안전한 곳에 집을 구하고 싶다는 손님이 계십니다. A씨를 모십니다. A씨, 안녕하세요?


“안녕 못 해요. 저는 7월에 서울의 한 반지하에 입주했어요. 어쩔 수 없었죠. 넓으면서 서울에 있는 저렴한 집은 반지하밖에 없었거든요.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그런데 8월엔 중부지방 집중호우, 9월엔 태풍 ‘힌남노’가 찾아왔어요. 장대비를 맞으며 집 뒤에 고인 빗물을 퍼냈죠. 그래도 전 상황이 좀 낫죠.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던 날,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는 지하철이 침수돼 한밤중에 집에 가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어요.”


기후재난이란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여름이었습니다. 8월엔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인해 14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으며, 9월엔 태풍 힌남노가 사상자 12명을 냈습니다. 두 재난을 통해 발생한 이재민은 총 2893명(9월 16일 기준)입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21년 미래 위험성이 높은 재난 유형을 선정하고, 그 피해 양상을 시나리오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선정된 미래 위험성이 가장 높은 재난 유형 5종은 풍수해, 폭염, 감염병, 미세먼지, 그리고 산업재해였습니다. 5종 중 2종이 기후변화와 관련 있었죠.


풍수해 시나리오는 예언서 수준입니다. 시나리오 명은 ‘수도권을 강타한 가을 슈퍼 태풍’입니다. 수도권에 슈퍼태풍이 상륙해 도시가 마비되고, 저지대가 침수됐다는 내용입니다. 2022년 여름을 거의 정확히 예견했죠. 수도권이 마비되고 저지대가 침수된 이유는 슈퍼태풍이 아니라 집중호우 때문인 부분만 조금 다릅니다.


한편, 폭염 시나리오 명은 ‘40℃의 폭염이 전국을 덮친다’입니다. 장마는 옛말이고, 폭염만 내리쬐는 여름이 다가와 사람들이 고통받고, 가뭄이 찾아온다는 내용입니다. 8월 중부지방은 비가 하도 내려 걱정이었지만, 남부지방은 비가 하도 안 내려 걱정이었죠. 휴일과 수요일에만 물을 쓸 수 있도록 제한급수가 시행된 마을도 있었습니다.


“홍수, 태풍, 그리고 폭염까지. 기후재난 3대장이네요. 이제는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다음 집을 고를 땐 기후재난에도 끄떡없는지 먼저 고려할 거라고.”


좋은 결심입니다. 부지, 건물, 그리고 인프라. 부동산의 3요소라 할 수 있죠. 각각의 요소를 조목조목 따져 A씨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부지, 잠기지 않는 땅인지 확인하세요


“당연히 잠기지 않는 땅에 살아야죠. 근데 그게 어디냐고요.”


환경부가 제작한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을 통해 하천범람지도와 도시침수지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시침수지도의 경우 아직 일부 지역만 제작된 상태입니다.)


홍수위험지도 정보시스템은 가상시나리오를 토대로 ‘어디가 얼마나 잠길 것인지’ 나타낸 지도입니다. 하지만 ‘어디가 얼마나 피해를 받을지’ 가늠할 땐 침수범위와 규모 외에도 고려할 요소가 많습니다. 2017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신 기후체제 대비 건축물 분야 기후변화 취약성 진단 연구’ 기본연구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발생하는 피해를 열 가지 공간변수를 활용해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제작한 서울시 침수피해 위험지역 지도가 수록돼 있습니다. 현재 건축물이 앞으로 올 수 있는 위험에 얼마나 취약할지를 나타낸 지도입니다.


열 가지 공간변수는 크게 민감성 변수와 적응능력 변수로 나뉩니다. 민감성 변수는 침수 위험성과 관련된 변수입니다. 건폐율, 지하 층수, 가구 수, 지표수집적도, 평균해발고도 차, 맨홀 밀도가 있습니다. 한편 적응능력 변수는 이미 벌어진 침수에 얼마나 잘 대응할지 나타내는 변수입니다. 용적률, 층수, 공시지가, 건축물 사용기간이 있습니다.


홍수피해와 관련된 공간변수인데, 단위면적당 공시지가나 건축물 사용 기간은 왜 고려할까요. 연구를 이끈 이은석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단위면적당 공시지가가 높은 건축물의 경우 피해가 발생해도 잘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건축물 사용기간에 따라서는 피해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했죠.


이 부연구위원은 “도시침수 피해는 과거에 물이 흐르던 길을 사람이 인위적으로 막고, 바꾸면서 생긴 것”이라며 “과거 물길지도를 살펴보면 현재 침수에 취약한 지역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지도가 있었는데 왜 전 몰랐을까요? 알았다면 피해서 집을 구했을 텐데….”
위험한 지역이 어딘지 알려주는 지도가 공개된다면 해당 지역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도를 공개해도 집값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김정섭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는 “침수 예상도나 침수 흔적도가 공개될 당시 해당 지역의 집값이 실제로 떨어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며 “침수 흔적도의 경우, 집값 하락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어 “침수 예상도의 경우 일부 가격을 하락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나 크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했죠. 김 교수는 그 이유를 “일반적으로 침수가 된 지역은 다시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므로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했습니다.


“침수하니까 생각났는데, 해수면 상승은 걱정 안 해도 되나요?”


날카로운 지적이시군요. 해수면 상승이라고 하면 보통 도시가 바닷속으로 잠기는 것만 우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안가만 잠길 테니, 내륙 지역에서 살면 괜찮을 거로 생각하죠. 하지만 그 전에 걱정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정호 한밭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2021년 ‘해수면 상승을 고려한 연안 도시 방재성능목표 강우량 평가’ 논문을 통해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다로 빗물을 배출하는 배수구가 잠길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배수구가 해수면 아래에 잠기면 빗물이 원활히 빠지지 않겠죠. 해수면이 상승하면 하천 수위도 상승합니다. 하천을 통한 빗물 배출도 원활하지 않을 겁니다. 이 교수는 “내수 침수 위험도에 대응해 방재성능목표 강우량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종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해수면 상승의 경우, 제일 좋은 방법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것”이라며 “하지만 한번 형성되면 수백 년 가는 도시를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해수면 상승에 의한 피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먼 미래를 보고 방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물, 바람과 침수에도 끄떡없나요?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선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세 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 반지하의 주거 목적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 시장의 발표 이후 반지하 금지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지하에 살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안전한 집에 살게 되는 건 아닐 텐데요.”


김 교수는 “특정 건물 형태가 위험하니 해당 형태를 아예 건설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보다는 관련 재난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건물에만 건축허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주택설계기준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오던 날, 강남의 물난리 속에서도 매번 살아남은 ‘방수빌딩’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지하주차장 앞에는 폭우가 내리면 바닥이 수직으로 올라와 빗물을 막을 수 있는 차수벽이 설치돼 있습니다. 덕분에 도로가 잠겨도 주차장에서 차량 피해는 없었습니다. 서초구에서는 이처럼 지하 공간이 있는 건물을 신축할 때 차수판을 설치해야 건축허가를 내주도록 차수판 설치를 의무로 하고 있습니다. 집중호우에 의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하 공간을 지키겠단 거죠.


이 부연구위원은 “반지하는 도시 안에서 저소득층이 생활기반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주거형태”라며 “반지하에 살아야만 한다면, 거주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기반시설의 형태를 바꿔줘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반지하 침수의 대부분이 도로에 흐르던 빗물이 유입되는 양상인 만큼, 반지하 밀집 지역 인근의 빗물받이 관리를 철저히 하고, 도로사면을 물이 잘 스미는 흡수성 높은 재질로 교체해주는 것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기후재난에 취약한 건축형태는 땅 위에도 있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부산에 상륙한 당시, 부산 마린시티에는 역대 최대의 빌딩풍이 불었습니다.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이죠. 부산대 연구팀에 따르면 이날 해운대 앞바다에서 측정된 순간최대풍속은 초속 23m였던 한편, 초고층 건물이 밀집한 마린시티에서는 초속 47.6m, 엘시티 주변에선 초속 62.4m였습니다. 하지만 국내엔 아직 빌딩풍에 대응하는 시설이 잘 없고, 빌딩풍에 의한 영향을 측정하는 실험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입니다.

 

인프라, 피할 수 없는 기후재난에 잘 견디고 잘 회복해야 해요


“오케이. 어느 지역이 기후재난에 취약한지 지도를 잘 보고 피하면 되겠네요. 반지하와 높은 빌딩, 그리고 해안가나 하천 근처도 피하고요. 그럼 전 새집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나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A씨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디에서 살든, 기후재난을 완벽히 피할 순 없을 거예요. 앞으로 더 강한 기후재난이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거든요. 유 교수는 “‘역대급’이라 불리는 재난이 자주 찾아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후재난을 잘 헤쳐나갈지 방법을 찾아보는 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침수지도 제작, 방수빌딩 등 사례는 모두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에요. 고무줄은 탄력이 높죠. 아무리 늘려도 다시 원래 길이로 돌아옵니다. 비슷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평소 상태로 회복하는지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김 교수는 “거주지 주변 인프라도 기후재난에 대비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며 공원과 대피소를 예로 들었습니다. “기후재난의 유형이 워낙 다양하니,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난 대응시설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최근 나오고 있다”며 “예를 들어, 도시에 공원을 만들 때 지하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과 지상에는 대피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녹지를 많이 확충해야 폭염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도 “녹색이 하나도 없이 건물이 빽빽한 저지대 주택은 피해야 한다”며 녹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후재난에 안전지대란 없으니,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단 거군요. 이 부동산 유능하네요. 물론 이 대화는 기자가 자아분열 해 뇌 속에서 나눈 대화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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