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신경다양성’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신경다양성이 무엇인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번역한 강병철 번역가 겸 소아과 의사에게 들었다.
자폐란 현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레오 카너다. 카너는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고립되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변화와 예기치 못한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특이한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극단적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극단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간단히 말해 하루 종일 혼자만 있으려고 하면서 친구는 물론 부모와도 감정적인 교류를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일만 계속 하려고 하며, 뭐든지 평소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도저히 달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분노발작을 일으켰다.
카너는 비슷한 어린이 11명을 관찰한 후 그들의 행동을 정리해 1943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자폐란 말이 의학적으로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카너는 자폐란 상태를 매우 좁게 정의했다. 반드시 유아기에 증상이 나타나야 했고, 모든 특징이 다 나타나야 했으며, 심한 정도도 비슷해야 했다. 수많은 환자가 카너를 찾아왔지만, 카너 자신이 자폐로 진단하는 어린이는 1년에 8명꼴이었다. 이에 따라 자폐는 ‘극히 드문 유아기 정신질환’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1960년대 후반,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로나 윙은 남편과 함께 런던의 한 자치구에 자폐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는 연구에 착수했다. 영국은 의료의 사회성에 일찍 주목한 국가로서 인지장애 자녀를 둔 가족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에서 드러난 자폐증 추정 유병률은 1만 명당 4.9명이었다. 매우 적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카너의 진단기준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일부 특성을 나타내는 어린이는 훨씬 많았던 것이다.
자폐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자폐 어린이의 특징을 두서없이 나열해 보면 이렇다. △부모에게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눈을 맞추지 않는다 △일상이 동일하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한 가지 행동을 반복한다 △몸을 흔들거나 팔을 퍼덕이는 등 자기자극행동을 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따라 하거나(반향언어) 대명사를 바꾼다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다 △사물을 가리키거나 뭐냐고 묻거나 부모의 관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변에 친구들이 놀아도 무시하고 혼자 논다 △이유 없이 분노발작을 일으킨다 △풀이나 모래 위로 걷지 못한다…. 이렇게 열두 가지 특징을 모두 나타내는 사람만 자폐로 진단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아홉 가지만, 또는 다섯 가지나 세 가지만 나타내는 사람은 그보다 많을 것이다. 자폐를 엄격하게 정의한다면 세 가지 증상만 나타내는 사람은 자폐 진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로나 윙이 연구 중에 목격한 상황이 꼭 이와 같았다. 열두 가지 증상을 모두 나타낸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서너 가지 증상만 있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중요한 점은 서너 가지 증상만 있어도 평생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나와 결혼도 하고 직장에 들어가도, 금방 이혼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나쁜 놈,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자폐 진단을 받던 순간을 “평생 바다에서 떠돌다 마침내 구조된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이들에게 어려서 자폐 진단을 내리고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당사자와 가족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물론, 사회도 훨씬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로나 윙은 이렇듯 자폐인의 모습이 너무나 다양하고, 증상의 심한 정도도 모두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 ‘자폐 연속선’이라는 개념을 창안했으며, 나중에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한 이미지인 프리즘을 도입해 ‘자폐 스펙트럼’으로 이름을 고쳤다. 결국 자폐 스펙트럼이란, 진단기준을 넓혀 불필요한 낙인과 차별을 줄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개념이다.
10배 넘게 늘어난 자폐인
로나 윙은 나중에 자폐 진단기준 제정위원회의 장을 맡았다. 평생 꿈꿔왔던 대로 여러가지 기준을 마련한 후, 그중 몇 가지만 충족하면 자폐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제 반드시 유아가 아니어도, 말을 할 줄 알아도, 부모와 눈을 마주쳐도 자폐 진단을 받아 필요한 치료, 교육, 중재, 개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단기준이 넓어졌으므로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 1980년 1만 명당 4명꼴이던 자폐인은 1990년에 1만 명당 70명 수준으로 10년 만에 약 18배 늘어난다.
이때를 전후해 영화 ‘레인맨’이 크게 히트를 치며 자폐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예전에 매우 드문 병이었던 자폐가 10배 넘게 늘어났다는 수치만 보고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고 걱정하게 됐다. 이런 분위기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MMR 백신이 문제라는 둥, 환경오염 때문이라는 둥, 비타민 부족 때문이라는 둥 희한한 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고통받는 자폐 가족들을 속이고 착취하는 일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나의 범주로 묶인 다양한 자폐인
한편 자폐 스펙트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능력이 크게 다른 사람들이 자폐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이게 됐다. 1986년 자폐인이자 세계적인 학자인 템플 그랜딘이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출간했다. 통념상 말을 못한다고 생각되던 자폐인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사실은 일부 자폐인의 비범한 능력을 크게 부각시켰다. ‘자폐는 스펙트럼’이란 개념이 정설로 자리잡으면서 자폐인/비자폐인 이분법보다 인간 정신이 무수한 측면을 갖고 있으며, 모두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싹텄다. 1998년 역시 자폐인인 호주의 사회학자 주디 싱어가 신경다양성이란 개념을 창안했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무한한 다양성을 지닌 존재이며, 자폐란 특정 측면이 덜 발달한 대신 다른 측면이 발달한 현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신경다양성은 자폐인이 비자폐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가 아니란 인식을 확산시키고, 자폐인이 긍지를 갖고 자신의 삶을 축복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기능이 뛰어나고, 심지어 비범한 재능을 지닌 자폐인과 일상생활조차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자폐인이 하나의 범주로 묶이면서 내부에서의 차별이란 문제가 대두됐다. 누가 자폐인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인가? 목소리를 내는 자폐인과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폐인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은 과연 같은가?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자폐는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이란 생각이 힘을 얻으면서 중증 자폐에 대한 치료나 개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이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찧는 자폐인이 있다. 어느 정도 강도 이상으로 머리를 찧으면 전기가 통하는 헬멧을 씌우면 자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이것은 학대일까, 인간적인 중재일까? 머리를 찧는 행동도 자폐라는 정체성의 일부이므로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생명이 위험한 장애 행동이므로 치료나 교육을 제공해야 할까? 자신이 자해 자폐인 당사자라면 어떤 쪽을 택하겠는가? 부모라면, 자폐 활동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펙트럼이란 개념은 인간적인 동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양극단에 걸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은 데 따라 생긴 문제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풀어나가려면 앞으로도 많은 논의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영우가 그려낸 자폐의 세계는 따뜻하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소비되지 않고 자폐와 장애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병철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됐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