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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이 모두 우영우나 헤일리 모스 변호사 같진 않다. 


말을 아예 못 하는 사람부터 우영우까지 다양한 유형의 자폐인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자폐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이렇게 폭이 넓은 스펙트럼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자폐를 잘 모른다. 자폐가 워낙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다,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폐 치료는 ‘완치’가 목적이라기보다 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30개월 때 자폐 진단을 받은 호민 씨의 어머니, 채영숙 씨의 말이다. 자폐는 ‘원인 치료’라는 게 없다. 채 씨는 “자폐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뿐”이라고 말했다.  


병원에 가면 아빌리파이, 리스페리돈 같은 약을 처방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약은 쉽게 불안해지거나 잠을 못 자는 것 같은 부수적인 증상만 나아지게 할 뿐이다. 김일빈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폐의 핵심 증상만 나아지게 할 치료제가 없어서 항불안제, 항우울제 등을 처방한다”며 “자폐의 원인이 특정되지 않은 게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신 질환 중 유전율이 가장 높다

 

뚜렷한 원인을 찾아보자면 ‘유전율이 높다’는 정보가 전부다. 2019년, 스벤 산딘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이 그 근거다. 연구팀이 어린이 200만 1631명의 가족력을 조사한 결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이 2만 2156명 중 80% 정도가 유전성이었다. doi:10.1001/jamapsychiatry.2019.1411 김 교수는 “자폐가 정신 질환 중 유전율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자폐 연구는 유전 요인을 찾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미국 시몬스 재단이 운영하는 자폐 연구 프로젝트 SFARI에 따르면, 자폐와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유전자는 지금까지 1075개. 그중 꽤 확실한(High Confidence) 후보 유전자만 해도 214개다. 여기서 ‘꽤 확실한 후보’란 최소 3가지 이상 자폐와 관련된 변이가 보고됐으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유전자만 추린 것이다. 국가마다, 인종마다 조금씩 결과가 달라져서 환자군을 넓히면 후보 유전자 수는 더 많아진다. 한국 자폐인 코호트를 모집했던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범위를 넓히면 보고된 자폐 관련 유전자는 1000개도 넘어간다”며 “아직 자폐 유전성 연구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 말고 유전되는 무언가

 

최근엔 유전자 말고 유전되는 무언가에서 원인을 찾는 연구도 한창이다. 바로 ‘비암호화 영역’이다.


우리 몸은 DNA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단백질은 우리 몸 곳곳에서 소화를 돕기도 하고, 침입자를 감지하는 수용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단백질을 만들 때 설계도 역할을 하는 DNA 서열이 바로 ‘유전자’다. 비암호화 영역은 유전체에서 유전자를 뺀 나머지 부분이다. 단백질을 암호화하고 있지 않다는 뜻에서 비암호화 영역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단백질을 만들어낼 때 설계도처럼 쓰이진 않지만, 일부는 유전자가 발현될지 말지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30억 쌍의 염기서열로 이뤄진 유전체 중 유전자는 2%도 안 되고, 나머지는 모두 ‘비암호화 영역’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이정호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팀은 이 영역에 주목했다. 자폐와 관련된 유전 변이가 비암호화 영역에 있다는 것을 찾아 7월 15일 국제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380-022-01697-2


연구팀은 2011년부터 자폐인과 그 가족들로 구성된 대규모 한국인 코호트를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모두 3708명이 모였으며, 연구팀은 이 중 813명의 유전체 서열 전부를 읽었다. 그 결과 자폐인들의 비암호화 영역에 공통된 변이가 있다는 것을 찾았다.


이번 연구의 공동 제 1 저자인 김일빈 교수는 “지금까지는 유전체 서열을 전부 읽어내는 것이 오래 걸리고 비싸서 자폐와 관련된 비암호화 영역 연구가 별로 없었다”며 “유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더 밝혀내야 할 게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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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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