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느 정도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정말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지만, 윗사람이 실망할까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거나 내가 속한 조직의 가치관에 동의하지 않지만 평화를 위해 애써 동의하는 척 하기도 한다. 어디 이뿐이랴. 흔치 않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게 핀잔을 들을까봐 숨기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단정하게 차려입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트레이닝복 차림에 한쪽 다리는 책상에 올린 채로 컴퓨터를 한다. 이처럼 ‘사람들 앞에서의 내 모습’과 ‘꾸밀 필요 없는 편한 상황에서의 내 모습’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 이번에는 이런 나를 숨기는 것의 괴로움과 ‘비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큰 가면을 쓸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사회적 무대에서 나를 바라보는 관중이 존재하느냐 여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크게 달라진다. 심리학자들은 공적인 상황에서 기대되는 규범에 따라 ‘착한 학생’이나 ‘열정적인 직원’처럼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긴채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공적 자아(public self)’라고 부르고, 편안한 상황에서 나오는 스스럼 없는 모습을 ‘사적 자아(private self)’라고 부른다. 흔히 이야기하는 겉모습이 공적 자아라면 속마음이나 본래 모습은 사적 자아에 가깝다.
평생 두 개의 자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간극이 ‘지나치게’ 벌어질 때 발생한다. 사회적 편견으로 자신의 출신, 인종, 성적 지향 등 정체성을 철저히 숨기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는 경우 우리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혼란과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자신을 숨기는 것은 단지 심적으로 괴로운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 UC버클리의 심리학자 크리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생활과 연애생활 등에 대해 사적인 질문을 하며 약 10분간 인터뷰에 참가하도록 했다. 그리고 일부 학생에게 인터뷰 도중 자신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숨기도록 요구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간단한 공간지각력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단 10분 정도였지만 자신에 대한 정보를 숨긴 사람이 숨기지 않은 사람보다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졌다(정답을 맞춘 비율 57% vs. 47%). 이후 연구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지구력, 주의력 등 다양한 인지능력과 사회성도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잠깐이지만 자신을 숨기는 것의 대가는 상당히 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한 위협을 받는 순간 안테나를 켜고 주변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알려지면 안 될 것 같은 말과 행동을 억누르는 등 짧은 시간 동안 매우 많은 ‘검열’을 하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는 과정은 엄청난 주의력과 추론, 자기통제 등의 고급인지능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이 능력은 ‘공짜’가 아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 행위는 상황적 맥락과 상대의 말, 미묘한 표정, 제스쳐 등의 자잘한 정보들을 최대한 수집, 통합해서 어떤 의미 있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으로, 마치 탐정이 추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행위는 뇌 활동 중에서도 유독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으로, 게임으로 치면 MP 소모가 어마어마한 필살기들이다.
즉, 정체성을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정신력, 인지적 자원을 주어진 과제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남의 눈치를 보고 내 행동을 검열하는 데에도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잘 못하게 될 수 있다. 온 열과 성을 과제에만 집중해도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자기검열까지 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지 않을까. 이 때문에 학자들은 도덕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 제정과 개인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억제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비밀이 많으면 몸도 아프다
개인의 정체성을 억제하면 안되는 이유는 건강상 문제도 있다.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불행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두통, 허리 통증 등을 잘 느끼며 암 발병률도 높다는 연구가 있다. 편견에 많이 노출될수록 세포의 노화가 심하다는 연구도 있다. 결과들을 고려해 보면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도 자기검열이 필요 없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대상(친구, 부모, 직장 상사 등)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규범과 예절이 완전히 달라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는 정도가 크다. 이 때문에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보다 주위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정도도 크며, 공적자아와 사적자아 사이의 간극 또한 비교적 큰 편이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다보면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거나 “부하 직원이라면 상사보다 일찍 와야지”처럼 습관적으로 강요 받는 역할이 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편견이 섞인 각종 ‘정답’과 오지랖처럼 개인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좀 줄어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검열 요소가 많은 사회에서는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클 테니 말이다.
이 기회에 내가 속한 환경이 내 정체성을 얼마나 그대로 잘 받아 주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또 내가 누군가에게 빡빡한 기대를 들이밀며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모두, 다른 무엇이 아닌 ‘나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