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은 10년 뒤, 20년 뒤 어떻게 변할까.
산업의 미래를 알아야 진로도 정할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 시장은 지금 같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센터는 메모리반도체의 주요 수요처다. 데이터센터는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유통하는 핵심 인프라로 구글, 메타 등의 빅테크가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수요 상승은 메모리반도체의 수요 상승으로 이어진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4월 발간한 시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시장은 2021년 약 4522억 달러(594조 원) 규모다. 2029년에는 8931억 달러(1173조 원) 규모로 늘어난다. 8년 안에 2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이 세계 반도체 성장세에 계속 올라탈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여러 산업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산업의 흥망성쇠도 국가별로 다를 수 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에 강하다. 잠깐 배경 설명을 하자면,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로 구분된다. 메모리반도체는 주기억장치(RAM 또는 ROM)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반도체다. 시스템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처럼 정보를 처리하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반도체다.
한국은 작은 시장에서 거인이다. 한국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 영역에서 20년간 점유율 1위를 유지했다.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인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020년 41.7%를 차지했고, SK하이닉스는 29.4%를 차지했다. 각각 1, 2위이다. 합하면 총 71.1%로 과반을 훌쩍 넘긴다.
대신 큰 시장에서는 꼬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2%로 세계 13위에 불과하다. 이 시장은 미국의 인텔, 엔비디아, AMD 등이 꽉 잡고 있다. 한국은 후발주자로 경쟁력이 떨어진다.
메모리반도체, 등락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당신이 한국에서 반도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반도체 기업에서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다. 메모리반도체는 대규모 장치산업이다. 거대한 공장을 짓기 위해 막대한 자원이 든다. 처음 의사 결정 단계부터 반도체 생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장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공급량을 조절하기 힘들다.
이런 수요-공급 불일치로 대략 2년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내린다. 메모리반도체 1위인 한국에서는 메모리 가격 변동에 따라 매출 변화가 크다. 업계의 채용 규모도 덩달아 출렁인다. 예를 들어 D램 평균 가격은 2012년 1.7달러, 2014년 3.1달러, 2016년 2달러, 2018년 4달러, 2020년 3달러를 기록했다. 대략 2년 주기로 오르내림을 거듭하고 있다. 메모리 가격에 따라 기업 매출도 춤을 춘다.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2년 201조 원, 2014년 206조 원, 2016년 201조 원, 2018년 243조 원, 2020년 236조 원이다. 긴 흐름에서 보면 성장하고 있지만, 짧은 기간으로 보면 등락을 반복한다.
한국이 시스템반도체 시장 진출한다면
우리 입장에서 또 다른 변수는 시스템반도체다. 만약 한국 기업들이 시스템반도체 시장까지 장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 반도체 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크고 안정적이다. 대규모 장치 투자가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인텔, 엔비디아, AMD 등은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다. 인텔은 2017년 627억 달러에서 2021년 790억 달러로, AMD는 2017년 53억 달러에서 2021년에는 164억 달러로 계속 상승세다. 시장조사기관 OMDIA는 전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2021년 2871억 달러 규모에서 2030년 4231억 달러로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한국에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성공의 방법이 있다. 첫째는 반도체 설계 인력을 키우는 것. CPU와 GPU는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능력에 따라 더 빠르게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소자와 회로를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영역이다. 노태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반도체소부장기술센터장은 “물리, 수학 등 기초학문에 더 투자해 인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사업단을 발족했지만 여전히 시스템반도체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노 센터장은 “(기초학문에 투자를 많이 하는) 중국이 곧 한국을 따라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는 위탁 생산, 일명 ‘파운드리’에 집중해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파운드리는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제조하는 전문 생산업체를 가리킨다.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기업은 많지만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소수다. 메모리반도체 분야만큼 비중이 크진 않지만, 대규모 장비 투자가 일부 필요하고, 초고난도의 공정 기술도 필요하다. 파운드리 시장은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5G, 고성능 컴퓨터 시장이 성장하면서 덩달아 성장할 전망이다.
시스템반도체는 AI,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의 주요 부품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미래 산업의 핵심 부품이라 볼 수 있다. 최근 인공위성의 위성통신에 사용하는 주문형 반도체(ASIC)도 시스템반도체 영역이다. 우주 산업이 확대된다면 방사선 등 극한 환경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도체 연구개발도 중요해질 수 있다. 전기차 효율 상승, 위성통신,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최첨단 산업의 거의 모든 영역은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다.
미래에는 제3의 반도체 나타나 시장 재편할 수도
반도체 인력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현재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는 모두 실리콘반도체에 포함된다. 반도체에 사용하는 주재료가 실리콘이라서다. 일각에서는 실리콘반도체의 미세공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자의 간격이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단위인데 2nm 이하가 되면서 전자의 제어가 힘들어졌다.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대안으로 화합물반도체가 연구되고 있다. 화합물반도체는 두 종류 이상의 원소 화합물로 이뤄진 반도체를 말한다. 실리콘으로 만들 수 없는 반도체레이저, 발광다이오드 등의 소자가 지속해서 개발 중이다. 또한 대표적으로 최근 저전력 반도체로 배터리와 함께 떠오르고 있는 질화갈륨(GaN)과 차세대 반도체 소재인 탄화규소(SiC)가 있다. 상용화 전 단계인 갈륨옥사이드(Ga2O3)도 있다.
전력 반도체는 전력을 변환, 처리, 제어하는 반도체다. 전기자동차에는 배터리뿐 아니라, 전력 반도체의 성능 향상도 중요하다. 화합물반도체 연구개발은 기존 실리콘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는 분야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를 소형화할 수 있다. 화합물반도체는 고온에서 사용이 가능하고 전기적 특성이 우수한 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정 기술이 실리콘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다.
현재 실리콘반도체 산업에 비해 화합물반도체는 시장 규모가 작다는 한계가 있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의 시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화합물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310억 달러 수준이다. 전체 중 7%가 채 안 돼 산업의 규모가 작다. 그러나 화합물반도체는 최첨단 반도체와 관련된 연구 분야인 만큼 관련 연구개발 수요만큼은 잠재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라면 산업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현재 완전히 성장한 분야에서 일할 것인지, 향후 발전할 수도 있는 분야에서 일할지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