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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시모어 벤저 교수의 생체시계 돌연변이 초파리 발견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을 주기로 사계절이 순환한다. 휘영청 뜬 보름달도 한 달이 지나야 다시 밤하늘을 밝힌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주변 환경의 주기성은 하루 24시간의 변화일 것이다. 지구의 자전으로 만들어지는 밤과 낮의 순환에 모든 생명체들은 나름대로 적응해 살고 있다. 밤이 되면 졸리고 아침에 눈이 떠지는 이유도 우리 몸이 24시간 주기로 각성과 이완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를 ‘일주리듬(circadian rhythm)’이라고 부른다. 물론 사람만 이런 주기성을 보이는 건 아니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 단세포 미생물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런 주기성은 일출과 일몰 같은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일까, 아니면 우리 몸이 지니고 있는 리듬일까.

예를 들어 외부와 차단된 건물 내부의 인공조명을 28시간 주기로 점멸할 경우 우리는 곧 하루가 28시간인 생활에 적응해 살아갈 것 같다. 24시간에서 4시간이 더해진다고 해서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과학자들은 이런 의문에 대해 실험으로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 결과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인 우리 몸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1999년 ‘사이언스’에 실린 한 논문을 보면 엄격한 통제로 28시간 주기로 잠을 자게 했지만 몸은 여전히 24시간 주기로 체온이 오르내리고 멜라토닌과 코티솔 같은 호르몬 분비량이 조절됐다. 결국 실험참가자들은 피로가 누적돼 ‘삶의 질’이 뚝 떨어졌다. 도대체 몸속의 무엇이 우리를 24시간의 틀 속에 묶어놓고 있는 것일까.

해 뜰 무렵 고치에서 나오는 초파리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생물학부의 시모어 벤저 교수팀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24시간 일주리듬을 잃어버린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벤저 교수는 원래 고체물리학자였다. 그런데 우연히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전공을 바꿨다. 사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프랜시스 크릭도 원래 물리학도였다가 ‘우연히’ 슈뢰딩거의 책을 읽고 진로를 수정한 경우다. 이론물리학자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을 고안해 양자이론을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지만 ‘생명이란 무엇인가’로 생명과학 발전에도 지대한 기여를 한 셈이다.

벤저 교수는 알투(rⅡ) 파지 변이체라고 알려진 박테리오파지(박테리아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를 연구해 유전자가 DNA조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는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밝힌 직후로 유전자와 DNA의 관련성을 규명하는 연구가 한창이었다. 그러던 중 벤저 교수의 실험실에 로널드 코놉카라는 대학원생이 들어왔다. 코놉카는 유전자가 생명체의 형태(예를 들어 눈의 색깔)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이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때 가장 파악하기 쉬운 행동이 바로 주기성이었다.

코놉카는 초파리의 ‘우화(羽化)’가 해 뜰 무렵 일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초파리 고치에서 성충이 나오는 때는 하루 가운데 해 뜰 무렵에 몰려 있다. 촉촉하고 점차 온도가 올라가는 이른 아침이 고치를 갓 벗어난 곤충이 날개를 말리고 비행을 준비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EMS라는 DNA를 손상시키는 약물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다양한 돌연변이체를 만들었다. 그 뒤 돌연변이체 자손을 얻어 이 녀석들이 우화할 무렵이 됐을 때 24시간 내내 깜깜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는 몸속에 내장돼 있기 때문에 정상 초파리나 생체시계 유전자가 손상되지 않은 돌연변이체는 이런 환경 아래서도 24시간 주기로 우화하는 패턴을 보일 것이다.예상대로 돌연변이체 대부분은 24시간 우화주기를 보였다. 그런데 한 돌연변이체의 새끼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우화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코놉카는 약 2000가지 돌연변이체의 우화 패턴을 분석해 우화의 주기가 19시간으로 당겨진 종류와 28시간으로 늦춰진 종류를 발견했다. 앞의 돌연변이체를 포함해 모두 3가지 생체시계 돌연변이체가 나온 것이다.

제자의 발견에 깜짝 놀란 벤저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유전자 분석법을 이용해 이 세 돌연변이체가 한 유전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장 난 결과라고 추측했다. 당시 생체시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동식물의 24시간 주기처럼 복잡한 행동에는 수백~수천 가지의 유전자가 관여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발견은 충격이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우리가 찾아낸, 서로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3가지 일주리듬 돌연변이체가 동일한 유전자에 문제가 생긴 결과라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연구자들은 이 유전자를 ‘period(주기, 줄여서 per라고 씀)’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기가 상실된 변이를 per0, 주기가 짧아진 변이를 pers(short의 s), 주기가 길어진 변이를 perl(long의 l)이라고 명명했다. 1984년 미국 록펠러대 마이클 영 교수팀은 마침내 per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그 실체를 파악했다. 그리고 3년 뒤 3종의 돌연변이체 각각에서 per 유전자의 어디가 고장이 났는가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3가지 모두 염기가 하나 바뀌면서 변이가 생겼는데, per0의 경우는 시토신(C)이 티민(T)으로 치환되면서 아미노산 글루타민을 지정하는 코돈(CAG)이 종결코돈(TAG)으로 바뀌면서 여기서 아미노산 합성이 멈춰버렸다. 정상 단백질보다 훨씬 짧은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생체시계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머지 두 변이의 경우는 단백질 크기는 같지만 중간에 아미노산이 하나씩 바뀌면서 그 효율이 바뀐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pers는 정상 per보다 기능이 높아져 주기가 짧아졌고 perl은 정상 per보다 기능이 떨어져 주기가 길어졌던 셈. 이런 해석은 정상 per 유전자를 과잉 발현시킬 경우 주기가 짧아지고 발현을 억제할 경우 주기가 길어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아무튼 20년 가까이 걸린 per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생체시계 유전자의 존재뿐 아니라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유지하려면 발현량이 정밀하게 조절돼야 함을 알게 됐다.


현대인의 생체시계는 위기상황

흥미롭게도 초파리의 per유전자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생쥐나 사람에게서도 발견됐다. 곤충과 포유류가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게 7억 년 전으로 추정되므로 생명체가 얼마나 오랫동안 생체시계를 바탕으로 생존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생쥐나 사람은 per유전자가 3개로 늘어나 각각 per1, per2, per3로 불린다. 2001년 미국 유타대 신경학과 루이스 타첵 교수팀은 유전적으로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가계를 조사하다 이들이 per2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족성 전진성 수면위상 증후군(FASPS)’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저녁 7시만 되면 잠이 쏟아지고 다음날 새벽 4시쯤 깬다. 다른 사람보다 일주 리듬이 3~4시간 앞당겨져 있으니 늘 피로함을 호소한다. 그 뒤 사람의 생체시계 유전자가 여럿 발견됐고 그 대략적인 메커니즘도 밝혀졌다.

최근에는 이런 생체시계 자체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생체시계의 교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19세기 말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래 강력한 인공조명으로 사람들의 생체시계가 교란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여행으로 인한 시차 현상, 야간 교대 근무에 따른 활동시간대의 변동 등이 심신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다. 교대 근무자들이 만성피로를 호소하고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주최 암연구국제회의에서 참석자들은 다양한 연구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일주리듬이 교란될 정도로 바뀐 근로 시간대는 인류에게 발암요인으로 작용한다”고 결론지었다. 덴마크에서 실시된 조사 결과를 보면 6개월 이상 밤에 일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방암 발생율이 1.5배나 높았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시간대에 활동하면 인체 내 세포분열주기에 교란이 생겨 암조직이 더 쉽게 생긴다고 해석했다.

또 약을 복용할 때도 몸속 생체시계의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보통 혈압은 아침 6시 45분쯤 갑자기 올라간다. 아침에 집밖에 나갔다가 쓰러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따라서 하루 한 번 먹는 고혈압 예방약은 이때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게 취침 전에 먹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체시계를 생각하면 약물의 효과나 부작용을 검증하는 동물실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약효가 복용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면 주행성 동물인 인간이 복용할 약을 야행성 동물인 생쥐에 투여시켜 그 효과를 제대로 알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생명체가 굳이 생체시계를 마련해 스스로 행동을 제약하는 이유는 뭘까. 1997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퍼트리샤 드코시 교수는 생체시계가 파괴된 영양들다람쥐를 야생에 풀어놨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그 결과 밤에도 겁 없이 돌아다니던 이 다람쥐들은 정상 다람쥐에 비해 훨씬 빨리 포식자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생체시계는 어떤 종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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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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