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1일 프레스센터. 녹색문화 확산을 위한 심포지엄에서 전영우 교수는 기술 중심의 산업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서 녹색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인구의 92%에 이르는 도시인들에게 숲의 소중함을 알리고 숲을 보존하는데 동참하도록 하는 방안을 이야기할 때는 비장함까지 감돌았다. 숲이 훼손되는 속도는 너무 빠르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수는 절대적으로 적은데서 연유한 긴장감 같은 것이랄까.
그가 하는 일은 심포지엄에서 숲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 숲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좋은 책의 저자이기도 한, ‘숲 박사’ 국민대 전영우 교수의 일상은 만만치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숲은 문화의 터전
1992년부터 숲과문화연구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 행사를 비롯해 숲문화체험학교처럼 숲을 주제로 한 시민·사회단체 일은 모두 전 교수의 관심분야이자 활동영역이다. 그 중에서도 전 교수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녹색문화 운동. ‘숲을 베어 경작지로 일구다’(agricultura)라는 라틴어에서 ‘문화’(cultura)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숲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 바탕이자 터전임을 강조하는 생활문화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자연환경이 극도로 악화되던 시기에 10배 이상 숲을 키워온 경험이 있습니다. 독일·영국·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조림국에 속하죠. 전쟁으로 철저하게 폐허가 된 상태에서 3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완벽에 가깝게 숲을 복원했어요. 앞선 세대가 어렵게 만든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해야죠.”
이런 인식을 갖고 전 교수는 숲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고 계발하며, 숲과 인간의 생태적 조화로움을 밝히는 활동에 앞장서왔다. 그런데 숲에 관한 일이라면 마다 않고 찾아나서던 어느날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참 바쁘게 살았는데, 몸에 병이 들면서 제가 찾는 일도 저를 찾는 사람도 줄어들게 됐죠. 그래서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했어요. 자연도감류의 책이 아닌, 숲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책을 쓰고 싶었죠. 학교 뒤에 있는 북한산에 자주 올랐고, 오히려 더 많이 열린 감성으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숲과 소통하고 대화하기
‘숲, 보기 읽기 담기’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사계절을 자연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자연과 소통하며 느껴온 저자의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책”으로 평가된다. 장대비 오는 날엔 숲에 난 흙길을 맨발로 걸어보고, 바람 부는 날이면 숲 속에 발을 딛고 서서 바람에 온몸을 맡겨보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숲 속 나무 곁에 서서 머리와 어깨에 눈을 쌓아보면서 나무와 숲과 내가 하나임을 느껴볼 것을 권한다.
‘나무와 숲이 있었네’ 역시 감성적인 글과 사진으로 숲의 아름다움을 잘 전해주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 책은 나무와 숲이 단순한 천연자원이나 휴양지가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가치로 가득 찬 문화자원이라는 사실을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앞선 두책이 숲에서 느낀 감성을 정리한 것이라면 ‘숲과 녹색문화’ ‘숲과 시민사회’ ‘숲과 한국문화’는 숲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담은 책이다. ‘숲과 녹색문화’는 숲이 문화의 창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조명했고, ‘숲과 시민사회’는 시민사회가 어떤 역할을 할 때 숲이 제대로 가꿔지는지를 정리했다. 또 ‘숲과 한국문화’는 숲이 문명을 잉태하고 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이었음을 강조한다.
이번 학기에 전 교수는 ‘인간과 환경’이라는 교양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두가지 과제를 냈다. 북한산을 맨발로 걸어보고, 한그루의 나무를 정해 대화한 뒤 그 경험을 써보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선뜻 낯선 경험에 동참하지 못하던 학생들이 결국 자연과 하나된 느낌을 써내려간 글을 읽으며 전 교수는 “이것만으로도 수업은 대단한 성공”이라고 했다. 숲과 관련된 지식을 읽고 배우는 수준을 뛰어넘어 숲과 소통하고, 그것을 통해 감흥을 느끼고, 정신적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그가 요즘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은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솔바람’ 활동이다. 40년 전에는 우리나라 숲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소나무가 현재는 25%만 존재한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산불과 솔잎혹파리로 인한 피해에 지구온난화와 기타 다양한 환경재해로 생겨난 피해까지 겹쳐, 이런 추세라면 50년 이내에 남한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가능한 모든 보존활동을 펴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사진집과 우리가 알아야 할 소나무에 대한 책을 펴냄으로써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