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와 루나가 무너지면서 코인 전체에 대한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미래 기술로 주목받던 암호화폐 기술에 왜 이런 불신이 생겼을까.
최초의 코인은 ‘비트코인’이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인물이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만들었다. 당시 사토시 나카모토는 백서(White Paper)를 통해 “순전히 개인 대 개인의 P2P(Peer to Peer) 전자화폐라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의 온라인 지급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탈중앙화된 화폐’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탈중앙화에서 탈 탈중앙화로
비트코인과 함께 처음 등장한 것이 블록체인 개념이다. 비트코인 이용자들은 ‘블록’이라는 일종의 장부에 약 10분마다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이를 공유한다. 동기화되는 장부를 나눠 갖는 격이기 때문에 서로서로 감시하는 역할을 해 투명하게 거래 내역을 관리할 수 있다. 블록이 ‘체인’처럼 연결돼 있다고 해서 이런 기술을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블록체인에는 트릴레마가 있다. 소수의 관리자가 없어야 하고(탈중앙화), 블록에 저장된 데이터를 외부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며(보안성),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블록체인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확장성),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이용자들끼리 데이터를 관리하며 탈중앙화 요건을 충족하지만, 블록 하나에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적어 1초에 7건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다. 즉, 확장성을 만족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양한 암호화폐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암호화폐 ‘이오스’는 전체 코인 보유자 가운데 21명의 블록 생성자(노드)를 선출하고, 이 노드에서만 거래를 검증해 연산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전체 네트워크에서 합의를 끌어내지 않고 21명의 대표 노드만 선출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탈중앙화를 이뤘다고 보긴 어렵다. 이더리움도 1초에 20~30건의 거래만 처리할 수 있어서 확장성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이더리움 개발자들은 개선판인 ‘이더리움 2.0’을 올해 하반기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더리움 2.0에선 ‘샤딩’을 활용해 거래 처리 속도를 높인다. 샤딩은 노드를 ‘샤드’라는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이 서로 다른 이더리움 거래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블록체인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는 6월 10일 열린 춘계 한국 블록체인 학술대회에서도 오갔다. 오진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사람들이 블록체인에 열광했던 이유는 탈중앙화 때문이었는데, 확장성이 떨어지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재중앙화하는 시도를 하는 게 블록체인 기술의 현재 한계”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코인이 쏟아지는 상황을 ‘닷컴버블’에 비유하기도 한다. 닷컴버블은 1990년대 중순부터 인터넷 관련 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난 현상으로, 2001년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며 소수만 살아남았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닷컴버블 당시에도 사람들이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면서 일부 기업이 성장한 것”이라며 “지금 암호화폐 시장도 비슷한 길을 걷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암호화폐 ‘리플’을 개발한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랩스 대표도 암호화폐 시장은 닷컴버블과 비슷하게 흘러갈 거라 내다봤다. 미국 방송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수천 개의 디지털 토큰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명목 화폐는 180개 정도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회사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도 “대부분 암호화폐는 가치저장 수단, 교환 매개, 거래 단위라는 통화의 3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대부분은 화폐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코인 옥석 가리기, 가능할까
그럼 어떤 코인이 사라지고, 어떤 코인이 남을까. 우린 사라질 코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강형석 스탠다드프로토콜 대표는 “자산에 대한 자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구조인지를 가장 먼저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루나를 예로 들었다.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는 자신들만 볼 수 있는 지갑을 갖고 있었다”며 “LFG가 어떻게 루나 가격을 회복하는지 코드로,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단 건 주권을 지키지 못한단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암호화폐 너머에 있는 블록체인의 용도를 봐야 한다. 강 대표는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걸로 뭘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점차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다”며 “웹 3.0의 기반인 블록체인도 그 기술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은 옥석을 가려내기 어렵다. ‘자기 주권을 지킬 수 있는지’는 코드를 살펴봐야 제대로 알 수 있고, ‘블록체인의 용도’는 모두가 찾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코인을 걸러내야 하는 거래소조차 통일된 상장 기준이 없다. 테라와 루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상장과 폐지 기준을 함께 조율하고 있다. 5대 가상자산 거래소는 6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 간담회에서 “즉시 공동협의체를 출범하고, 10월까지 상장을 위한 심사 가이드라인, 주기적 위험성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 8년 안에 비트코인 사라진다
가상자산의 미래를 훨씬 어둡게 보는 의견도 있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금융 MBA 교수가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비트코인 말고 다른 코인들은 모두 개발사에서 소스 코드를 바꾼 적이 있다”며 “중앙 관리자가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으면 블록체인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소스 코드를 바꾸지 않는다면 8년 안에 비트코인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풀어야 하는 ‘해시 퍼즐’ 난이도가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채굴 비용이 많이 들면 최상위 채굴자가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차상위 채굴자가 채굴을 이어가기엔 최상위 채굴자와 채굴 속도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블록이 2016개 생성될 때마다 난이도가 조정되고, 한 번 내려갈 때 75%까지밖에 안 내려가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신기술이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회의적이다. 이 교수는 “주식시장은 자본 시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형법 제246조로 처벌받는 도박이 아니지만, 지금의 가상자산 시장은 도박”이라며 “신기술이니까, 블록체인이니까 도박이어도 괜찮다고 할 순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