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에서 태어나 먼지로 돌아간다.”
삶의 허망함을 말할 때 즐겨 쓰는 은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인간과 지구는 먼지에서 태어났고, 또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갈 운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약 95%는 산소, 탄소, 질소, 수소 등의 원소로 이뤄져 있다. 이런 원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결합해 단백질, 탄수화물, 지질, 핵산, 물 등의 분자를 이룬다. 또 우리 몸에는 세포가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칼슘, 인, 염소, 칼륨, 황 등 21가지 원소들이 미량 포함돼 있다.
이와 같은 25가지 재료들의 고향은 우주다. 우주 공간은 텅 빈 진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가 가스 형태로 떠다니고, 우주먼지(Cosmic dust)도 퍼져 있다. 우리은하를 기준으로 성간가스의 질량은 전체의 약 10%, 우주먼지의 질량은 약 0.1%를 차지한다. 우주먼지는 크기가 수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수준으로 작다.
성간가스와 우주먼지의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암흑성운이다. 암흑성운은 영하 10~100K(절대온도)의 차가운 가스와 먼지로 이뤄진 성간물질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상태다. 때문에 지구로 향하는 별빛이 통과하지 못해 검은 얼룩처럼 보인다. 오리온자리에 있는 말머리성운도 그 중 하나다.
우주먼지의 대부분은 별이 수명을 다해 죽는 과정에서 생긴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138억 년 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플라스마 상태의 물질에서 수소와 헬륨, 리튬, 베릴륨 등 가벼운 원자가 만들어졌다(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보통물질의 98%는 이때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원자는 서로 융합하며 더 큰 핵을 형성했다. 가벼운 원자핵이 모여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어내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탄소, 산소, 철 등 수십 가지 원소들을 차곡차곡 만들었다. 이런 핵융합 과정에서 질량이 줄어든 만큼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됐다. 우리가 흔히 아는 별의 진화 과정이다.
그러나 별의 핵융합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핵융합 연료인 수소는 계속 감소하고, 내부에는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가 계속 쌓인다. 그러다 태양보다 약 10배 이상 무거운 별들에선 어느 순간 핵붕괴가 일어난다. 이를 초신성 폭발이라고 한다.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면 별의 껍질을 이루는 물질들이 모조리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린다. 또 태양 같은 별이 평생 뿜어내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가 몇 초 사이에 방출된다. 이 과정에서 철보다 무거운 코발트, 세슘, 금, 우라늄 등이 새롭게 융합된다.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포함해, 수소를 뺀 지구의 거의 모든 원소들은 별이 진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셈이다.
초신성 폭발이 만들어내는 잔해는 어마어마하다. 1987년 2월 23일 폭발이 관측된 대마젤란은하의 초신성 1987A의 경우, 폭발 이후 24년 동안 태양 질량의 40~70%에 해당하는 우주먼지를 만들어냈다. 이는 지구 같은 행성을 20만 개 만들고도 남을 양이다.
먼지 형태로 은하 전체에 퍼진 별의 잔해들은 뭉쳐져 새로운 별을 형성하기도 하고, 이산화탄소, 물, 유기분자 등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999년 발사한 무인탐사선 스타더스트(Stardust)가 2004년 빌트 2 혜성의 주변을 통과하며 가스와 먼지를 포집한 결과, 우주먼지 속에는 다양한 유기화합물이 있었고 그중에는 아미노산인 글리신도 있었다. 아미노산은 생체 분자인 단백질의 구성성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먼지에서 유기분자가 만들어졌을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최근에는 꽁꽁 얼어붙은 우주먼지의 표면에서 유기분자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흔히 우주에서의 화학 반응은 방사선을 쪼였을 때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두꺼운 얼음도 화학 반응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가령 원자들이 우주 공간에서 기체 상태로 만나 분자를 이룬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화학 반응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삼중 충돌이 일어나야 하는데(원자와 원자가 만나 들뜬 중간체가 되고, 여기에 또 다른 원자가 부딪쳐 분자를 생성한다) 그 빈도가 대략 1017년 동안 1번이다. 100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 동안 삼중 충돌 화학 반응이 0.0000001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음 위에서는 이런 확률이 높아진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메탄올 같은 단순한 성분이 차가운 얼음층에 덮여 우주먼지 입자를 형성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여기에 1년 동안 100만 개의 분자가 부딪힌다. 부딪힌 분자들이 쌓이고, 쌓인 분자들끼리 화학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 확률은 1억 년에 1번 정도로 여전히 낮지만 우주 역사를 통틀어 보면 100번 이상 기회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우주 환경을 재현해 빙결된 성간물질에서 유기분자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한 예로 강헌 서울대 화학부 교수팀은 극저온 초진공 장치로 영하 260도~영하 170도의 진공 환경을 만들고 인공 얼음 시편을 넣은 뒤, 이산화탄소, 메틸아민 성분을 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시편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질량분석기로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얼음 시편 위에서는 아미노산 분자가 만들어졌다. 생성 반응이 계속된다면 간단한 성간물질이 인간의 몸을 이루는 핵산의 염기분자(아데닌)를 생성할 수도 있다.
황량한 우주가 복잡한 유기분자를 스스로 만들었다면 어떻게든 지구 생명체 탄생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이 비밀을 풀 열쇠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지구에는 연간 약 4만t(톤)의 우주먼지가 떨어진다. 한반도는 바다를 포함한 지구 전체 면적의 0.019% 정도를 차지하니, 매년 약 7.6t의 우주먼지가 내려앉는다. 물론 태양계가 형성되고 수억 년 동안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우주먼지가 지구로 쏟아져 들어왔을 것이다. 이런 우주먼지가 생명체 탄생에 씨앗이 됐다면, 결국 우리 모두는 별의 먼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