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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이 보인다. 2년 1개월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고, 5월부터는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다. 이에 웅크렸던 과학계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강원, 제주를 비롯해 곳곳에서 학술대회,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고, 학계와 산업계를 가리지 않고 교류를 재개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5월 11일 기준 국내에 4051개의 학회가 등록돼 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연구자들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분야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학술대회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과학자는 아직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해

 

4월, 어김없이 또 춘계학술대회 시즌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많은 학술대회가 다시 오프라인 개최를 선택했다. 4월 29일 서울 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진행된 제11회 세계유방암학술대회(GBCC 2022) 안내데스크에도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오랜만에 큰 규모로 열리는 대면 학술대회에 연구자 1500여명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랜만에 만난 연구자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날 학회에 참석한 이현지 씨(녹십자아이메드 강북센터)는 “온라인에서는 보안상 (환자 질환 사례 등) 구체적인 대 화를 나누기 힘들었다”며 “얼굴을 보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니 강연 외적인 것들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 A 씨도 “강연 중에 궁금한 걸 바로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그리웠다”고 말했다.


정준 GBCC 조직위원장(강남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교수)은 “강연을 듣고 업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온·오프라인의 차이가 크지 않다”며 “학술대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참가자들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면 개인적인 노하우 등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실제 지난해 11월 포스텍 생물학연 구정보센터(BRIC)가 국내 생물학 계열 대학원 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학술대회에 참가한 59%가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답변자의 약 90%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예전의 오프라인 방식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디지털에서는 비언어적 표현 알기 힘들다


기업도 오프라인 행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학술대회나 박람회 같은 큰 행사는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이날 D 제약사의 관계자는 “기업이 굳이 비용을 내면서 학술대회에 오는 것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서”라며 “기업 입장에 서 ‘온라인’ 학회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후원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오프라인을 강조하는 이유는 고객 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술대회에서 기업 부스는 제품을 판매하는 창구인 동시에 불편한 점이나 보완할 점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P 제약사 관계자는 “마케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연구원이 ‘예’라고 대답했을 때 실제 긍정적인 의미인지, 예의상 답변인지 구분해야 한다”며 “이런 디테일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에서 알아채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학술대회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코로나19가 만든 변화를 일부 수용하기도 한다. 오프라인으로 개최하되 온라인 플랫폼을 동시에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학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열린 GBCC 2022도 유튜브와 카카오톡 채널 중계를 병행했다. 오프라인 참석이 힘든 1000여 명의 유방암 환자를 위한 소통 창구였다. 정 조직위원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학술대회가 제주에서 주로 열려 환자들은 참석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 온라인 한 스푼 하이브리드 학회


온라인 중계는 ‘국제’ 행사를 여는 데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짧은 일정으로 해외 방문이 힘들 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해외 석학들도 많이 참여했다. 그런데 외국인 강연자 중 2명이 학술대회 직전에 코로나19에 감염돼 입국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다. 정 조직위원장은 “원래라면 세션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온라인으로 강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풍경은 또 있다. 일반적으로 학술대회 강연장 바깥에는 포스터 세션이 있다.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곳이다. 대한화학회, 전기전자재료학회, 환경분석학회 등 많은 학회에서는 최근 종이 포스터 대신 e포스터를 도입하고 있 다. 4~5개의 모니터 화면으로 수십~수백 개의 연구 성과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궁금한 연구를 클릭하면 저자가 직접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전혀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기도 한다. 일례로 5월 11~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 린 박람회 ‘바이오코리아 2022’의 전시관 한가운데에는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반짝였다. 전통적으로 실험 기구나 제약 회사가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다른 생소한 모습이었다. 비대면 시대에 주목받은 원격진료나 가상현실(VR) 치료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소개됐다. 


 “재택근무 탓에 외국 회사와 일하는 것 같았다” 


산업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됐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재택근무도 양극화됐다. 지난해 11월 취업 포털 사람인이 60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56.8%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중소기업은 34.7%에 불과했다.

 

이런 격차는 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제 품을 연구·개발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긴밀히 소통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로 소통의 불편함이 늘었다.

 
4월 29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2 부산 국제원자력산업전에서 원자력, 플랜트 설비 등을 공급하는 기업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원자력 설비를 개발해야 하는데, 공무원과 공기업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일이 늦어졌다”며 “마치 외국 회사와 일하는 것처럼 시차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소통의 불편함은 장비와 기기 설계 등 하드웨어를 제작하는 기업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 왔다. 직접 현장을 눈으로 보고 설계도를 그려야 하는데, 메일과 전화로만 내용을 주고받다보니 정확한 의사 전달이 힘들거나,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휴대용 방사선 측정기 제작업체인 엠원인터내셔널의 박규태 대리는 “다른 기관과 협력해 연구개발을 할 때 화상회의로 정보 교류를 했다”며 “상세한 내용을 서류상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반면 코로나19가 만든 온라인 비대면 문화를 기회로 삼은 기업도 있다. 모델링 및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아레스의 정용은 대리는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보니 실물 제품이 없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업무의 차이가 없었다”며 오히려 “비대면 상황에서도 꼭 필요한 훈련 같은 것을 소프트웨어로 대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부산=이영애·한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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