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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한 마디로 40년을 건너다 │ 문자판 기술자 이재원 씨

경륜의 40년 장인 I 문자판 기술자 이재원 씨의 ‘화학실험실’

“초침이 분리되지 않도록 축을 빼야 하잖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장치를) 만든 거야. 요걸 축에 쏙 끼운 다음에 당기면 다른 부품이 망가지지 않지.”


“아, 여기 구멍이 축이랑 맞물리는 거야?”


1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스퀘어. 정미사 문을 열자 열띤 대화가 들려왔다. 정미사를 운영하는 문자판 기술자 이재원 씨와 양금사를 운영하며 시계를 판매하는 양병권 씨의 대화였다. 세운스퀘어는 예지동 시계골목의 임시대체사업장이다. 12년 전 이주한 이 씨와 양 씨를 비롯해 예지동 시계골목의 상공인 대다수가 이곳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상인들이 고장 난 시계를 시계기술자에게 맡겨 수리하는 예지동 시계골목의 생태계가 여기에도 남아있다. 세운스퀘어 1층에는 시계를 판매하는 판매점이 있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시계기술자의 작업장이 있다. 7층에는 시계기술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학원인 국제시계연구원이 있어 신진기술자를 배출한다.


이 씨와 양 씨는 4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을 함께한 동료이자 단짝이다. 함께 해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기자가 질문을 던질 때면 두 사람은 한 몸처럼 답했다. 이 씨가 하던 말을 양 씨가 잇기도 하고, 거꾸로 양 씨의 말을 이 씨가 완성하기도 했다.


“두 분 그러면 매일 일하실 때마다 보셨으니까 어쩌면 아내 분 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기자의 물음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아 그럼, 우리는 총각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세월을 그렇게 많이 보낸 거지. 맨날 다방도 같이 가고. 자식들 결혼식도 다 가고.” 


이 씨가 문자판 기술을 배운 건 70년대 후반의 일이다. 문자판 기술인의 제자로 들어가 기술을 터득했다. 문자판은 시계 전면부에 숫자나 브랜드 로고가 그려있는 판이다. 문자판 기술자는 이 문자판의 문자를 그리거나, 판에 색을 입히거나, 무늬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 씨는 “그때는  제도기로 글씨를 쓰던 시절이었다”며 “기술이 점차 발전해 동판에 무늬를 새긴 뒤 찍어내는 식에서 유리판에 무늬를 새긴 뒤 찍어내는 식으로 변했다”고 했다. 


고객이 컴퓨터 이미지 파일로 무늬를 보내오면, 이걸 필름에 인쇄한다. 그리고 유리판에 필름을 씌운 뒤 감광액을 묻힌다. 이후 유리판을 암실에서 부식시키면 유리에 무늬를 새길 수 있다. 사진을 현상하는 과정과 같다. 


“마니아들이 (인터넷) 카페에서 보고 많이 와. 연예인도 있고. 산다라박이 노란 캐릭터 시계를 의뢰한 적도 있어. 미국, 일본에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씨의 설명에 양 씨는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큰 시계병원의 성형외과니, 외관을 바꾸고 싶은 시계는 다 이곳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이 씨의 작업장은 마치 화학실험실 같다. 전기 도금 장치, 도색 스프레이, 매스실린더 등 손때 묻은 도구들 가운데 빨간 전기오븐이 눈에 띄었다. 이 씨는 “전기오븐은 온도가 90℃까지만 올라가도록 직접 개조해 문자판을 건조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하나하나 그의 손을 타지 않은 물건이 없다.
직접 그리는 방식에서 동판 인쇄로, 그리고 유리판 인쇄까지. 벌써 세 차례 기술이 변했다. 매번 기술을 새로 배우는 데 어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이 씨는 덤덤히 답했다. “하는 대로 따라가야지 뭐 어떻게 해. 자꾸 개발하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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