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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안정제 리브륨

연구포기 상태서 뜻밖의 결과-정신질환 치료의 획기적 기원

폴란드 태생인 슈테른바흐는 미국 망명후 신경안정제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후 제약회사들의 경쟁으로 약효능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약의 남용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1800년대 초부터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현대약을 발견하여 온 과학자들은 정신의 병에 효과가 있는 약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초에 클로르프로마진과 메프로바메이트가 개발되었다. 이들 약은 항히스타민제와 항균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정신질환 환자에 효과를 보인 화합물을 단서로 발견된 것이다.

이를 기폭제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1950년대 하반기 미국 로슈의 슈테른바흐는 클로르디아제폭시드를 발견했다. 이는 벤조디아제핀 구조를 가진 항불안제의 시발이 되어, 이 계열 약물은 미국 의사가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이 되었다.

슈테른바흐의 발견은 '우연의 발견'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연의 발견은 '본래 계획했던 연구결과가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나타난 뜻밖의 발견'을 말한다. 따라서 그의 발견은 '행운의 발견'이라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슈테른바흐는 애초에 항정신병약, 항불안제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여 발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정신병을 앓은 많은 환자에게 가져다 준 행운이었다.

레오 슈테른바흐(Leo H. Sternbach)는 폴란드 태생으로 1930년부터 크라코브(Cracow)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의 일환으로 염료합성에 대해 연구했다. 그 후 취리히의 스위스 연방기술대학의 루지츠카(Leopold Ruzicka, 193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연구실에서 일하다 제2차 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 뉴저지의 제약회사 로슈(Hoffmann-La Roche)에서 화학자로 근무했다.
 

신경안정물질 벤조디아제핀을 발견한 레오 슈테른바흐


비정규과제로 시도된 정신치료제 개발

당시 로슈는 연구원들에게 정규과제 이외에도 흥미있는 분야에 대한 탐색연구를 권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954년 슈테른바흐는 새로운 정신관련 약의 개발을 과제로 삼었다.

이미 개발된 클로르프로마진과 메프로바메이트가 무수히 많은 유도체를 합성하여 선정된 것이므로 이들과는 다른 구조의 화합물로부터 새로운 약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더욱이 당시는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과정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으므로 오늘날과 같이 생화학적 가설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없었다. 자연 그는 크라코브에서 자신이 연구했던 염료 화합물이 클로르프로마진과 유사한 구조적 특징을 가진 것에 착안했다.

다행히 그 얼마 전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진정항경련 근이완과 같은 지표가 정신관련 약의 효능을 파악하는데 효과적임이 입증되었으므로 일단 구조가 합성되면 동물을 사용해 시험해 볼 환경이 설정된 상황이었다.

슈테른바흐는 크라코브에서 연구하던 대로 일련의 합성과정을 통하여 중간물질인 벤조헵톡스디아진을 얻고 다시 화학적으로 일정한 부위를 변형시키는 연구를 하였다.

그가 폴란드에서 연구하던 당시는 폴란드의 열악한 연구사정 때문에 단지 최종 산물이 염료로 가치가 있는지만 알아보고 중간물질과 최종 산물의 구조를 확인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로슈의 향상된 연구환경에서는 철저한 연구가 가능하였다.

구조 분석 결과, 형성된 중간물질은 가정했던 벤조헵톡스디아진이 아닌 벤조퀴나졸린옥시드인 것을 알았다. 본래 가정했던 물질이 아니었고 그 물질이 반드시 약효를 나타내리라고 예측한 것도 아니므로 그는 이 물질에 각종 시약을 반응시켜 40개 정도의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했다. 효능을 시험해본 결과 어느것도 근이완, 진정작용과 같은 정신질환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슈테른바흐는 언제까지나 이 연구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1955년 하반기부터 다른 시급한 연구과제 때문에 이 분야 연구를 줄일 수 밖에 없었고 과제는 미완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결국 1957년 4월에는 여러 합성 실험결과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실험실이 복잡하게 되었다. 모든 실험대는 결정성 물질을 함유한 접시로 덮여 있었고 플라스크와 비커에는 결정이 생기기를 바라는 모액(母液)이 채워져 있었다.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면 대청소를 해야 했다.

슈테른바흐는 결정이 생기지 않은 오래된 모액들을 전부 폐기하기로 했다. 결정성 산물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전부 버렸고, 흥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 병에 담았다. 이때 함께 일하던 리더(Earl Reeder)가 두개의 검체를 손가락질했다.

하나는 1955년 벤조퀴나졸린옥시드에 메틸아민을 작용시켜 합성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56년 합성된 같은 물질의 염산염이었다. 이들은 수백㎎씩 남아 있었다.

마지막 실험에서 발견된 벤조디아제핀

슈테른바흐는 염산염을 약리부서로 보냈다. 그는 이 마지막 검체에서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고, 이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질환약 연구과제를 종결할 생각이었다. 이제까지의 결과를 종합하면 논문으로 발표할 정도의 내용은 된다고 자위하려 했다.

이 화합물은 1957년 5월 약리실험실에 제출되었다. 2-3일 후 약리연구원인 랜들(Lowell Randall)이 슈테른바흐에게 열기 띤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이 검체가 예비실험에서 아주 흥미있는 성질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화합물이 대조로 실험한 메프로바메이트나 클로르프로마진, 페노바르비탈에 비하여 우수한 약리 프로필을 나타낸 것이다.

즉시 약리실험실 연구원들이 자세한 실험에 착수했고, 슈테른바흐는 이 화합물의 구조를 세밀히 검증했다. 만일 벤조퀴나졸린옥시드 유도체라면 이 화합물만이 활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측했던 대로 이 화합물은 구조상 자리옮김에 의해 형성된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 임이 확인되었다. 최초의 벤조디아제핀 약물이 발견된 순간이다. 항불안제 클로르디아제폭시드(chlordiazepoxide)는 이렇듯 구조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되어 발견되었다.

클로르디아제폭시드의 미국 특허는 1958년 5월15일 출원되었다. 단기간 내에 1만6천명의 환자에 대한 임상결과를 얻어내어 19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허가를 얻었다. 리브륨(Librium)이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된 이 약은 1963년 신제품 디아제팜(diazepam)에게 그 왕좌를 물려줄 때까지 1960년대에 가장 많이 처방된 약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발륨(Valium)이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된 디아제팜은 1970년대 의사가 가장 많이 처방한 약으로 기록됐고 1980년대에도 10위권 내를 유지했다.
이밖에도 로슈는 20여 가지의 벤조디아제핀 항불안제를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이 계열 약물은 항불안 수면 근이완 항경련 등 4종류의 서로 다른 약리효과를 복합적으로 나타내며 약물에 따라 효과의 정도가 다르다.

약효능의 차이는 환자의 필요성에 맞추어 약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중에는 수면제, 수술이나 마취전 약물, 간질병 약 등이 있다.

슈테른바흐의 연구는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혜택을 주었을 뿐 아니라 로슈에게도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약의 영욕도 세상의 순리를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불안제는 미국의 다른 제약회사인 업존이 개발한 알프라졸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알프라졸람은 현재 로슈의 어떤 제품보다도 많이 처방되는 항불안제다.
 

미국에서 개발된 벤조디아제핀계열 약물들 구조


특허 경쟁에서 승리한 알프라졸람

미국 칼라마주 평원의 제약회사 업존(Upjohn)은 다른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부터 정신질환 약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다. 1960년대 중반 어느날, 연구과제 선정에 책임이 있는 수석화학자와 수석 약리학자는 연구 방향을 토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로슈의 벤조디아제핀 성공사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업존도 벤조디아제핀 계열을 다루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정이 공식화되자 담당 책임자는 화학자들을 모아놓고 '벤조디아제핀 유도체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특허문제 때문에 무언가 다른 구조상 특징을 가진 유도체를 찾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헤스터(Jackson Hester)를 포함한 중추신경계 연구원들은 새로운 각오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모든 벤조디아제핀 특허를 검토했다.

두개의 질소 원자가 포함된 7각형의 고리를 가진 벤조디아제핀은 비교적 복잡한 분자로, 변형의 가능성이 많았다. 이것은 로슈의 철저한 특허 방어에도 불구하고 변형의 여지가 남아 있을 유일한 희망이었다.

합성 연구팀은 특허를 피할 방법으로 모고리에 다른 고리를 붙여 두고리 화합물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냈다. 헤스터는 모구조의 1, 2 위치에, 스무스코빅츠(Jacob Szmuszkovicz)는 4, 5 위치에 고리를 붙이는 연구를 맡았다.

처음에는 고리를 하나 더 형성한 화합물에서 활성이 손실된다는 일치된 결과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으나 치환의 다변성은 무수히 많으므로 연구원들은 꾸준히 화합물을 합성해 나갔고 약리실험실에서도 지치지 않고 활성을 검색하였다.

이러한 끈기있는 연구는 세계적인 제약회사에서 공통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수천번 이상을 합성하는 노력은 하나의 우수한 약이 탄생하게 되는 실제 결과로 그 타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1968년 5월, 드디어 최초의 성공이 이루어졌다. 스무스코빅츠가 특허에 없는 화합물 중에서 발륨보다 활성이 강한 화합물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케타졸람' 이란 이름의 화합물이었다. 이 발견은 연구원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고 곧 다른 성과들이 뒤를 따랐다.

헤스터가 합성한 알프라졸람(alprazolam)의 구조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68년 10월 9일이었다. 헤스터의 조수인 그린(Robert Green)은 이 구조를 그날의 실험노트에 그려 놓았고 헤스터와 조수들은 실제 화합물을 1969년 1월 15일 합성해 내었다. 그후 2주 동안 분석, 정제 연구를 하여 순수한 검체를 약리 분석실로 보냈다.

1969년 2월 12일 약리분석실의 두 연구원이 헤스터의 실험실에 나타나 "무언가 중요한 것이 나온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실험한 중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은 발륨의 10배 활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명 자낙스(Xanax)로 알려진 항불안제의 발견 순간이었다.

1969년 10월 업존은 알프라졸람을 신약 후보물질로 분류하였고 곧 이 계열 화합물에 대하여 10월 29일 특허신청을 하였다. 이때 일본에서 제일 큰 제약회사인 다케다(武田)와 특허문제가 발생하였다. 업존이 출원한 지 7일 지나 다케다는 유사한 계열 화합물에 대하여 미국에 특허출원하였고 이미 이 회사는 1년전 같은 특허를 일본에 신청하였던 것이다.

업존 연구원들은 당황했지만 개발을 중지할 수는 없었다. 두 회사는 항불안제에 한해 특허권 공유 계약을 체결, 공동 개발 연구를 추진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1975년 9월 24일 헤스터의 특허가 다케다 특허를 앞선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업존은 성공적 임상결과를 가지고 1981년 10월 미국 식품의약국의 신약허가를 받았고 곧 다른 나라에서도 판매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다케다와 공동으로 개발하며 시장에 내놓았다.


리브륨을 소개한 광고물

탐닉성·남용 등 문제 낳아

벤조디아제핀은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큰 혜택을 주었으나 사소한 불안에도 남용되는 문제점을 낳았다. 문제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 있었다. 환자는 스스로 극복할 의지를 갖지 않고 약에 의존했고, 의사들은 사소한 증상에도 처방전을 남발해 사회적 지적을 받았다.

더욱이 정신질환약은 근본적 원인 치료가 아니라 증상만을 경감시키는 것이라는 근본문제까지 제기되었다. 가령 현재 사용되는 육체적 병의 약도 3/4이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지 원인 치료가 아니라는 통계가 제시되었고, 정신질환의 경우에 의사가 근본적 원인해결에 접근하기 위한 단계로 이러한 약이 필요하다는 긍정론이 대두했다. 점차 증가하는 정신질환 환자수에 대처하기 위하여 약물요법이 가능한 선에서 최선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이라는 점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되기는 했으나 슈테른바흐가 길을 닦은 벤조디아제핀은 정신질환 환자 치료에 획기적 기원을 이룩한 약임에 틀림없다.

이 약은 다른 정신작용약과 마찬가지로 탐닉성이 있다. 오래 사용하면 점차 더 많은 양을 써야 하고 중단하면 더 불안해지고 두통 구토 경련까지 나타나는 정신적 신체적 의존성을 나타낸다. 국내에서는 이 약을 향정신성약으로 분류하며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사진 및 자료, 로슈 및 업존 제공).

199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강건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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