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우주탐사는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국가가 주도하던 ‘올드 스페이스’였지만 미래는 다릅니다. 우리와 같은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우주에 뛰어드는 ‘뉴 스페이스’가 주류가 될 것입니다.”
2020년 6월, ‘서울포럼 2020’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최된 제2회 서경 우주포럼에서 미국 아스트로보틱의 댄 헨드릭슨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주개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올드 스페이스 시대에는 우주 선진국들이 군사 목적이나 과학 지식, 국가 위상 제고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목표를 위해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을 투자했다. 하지만 이제는 민간 기업들이 주축이 돼 초고속 인터넷이나 우주여행과 같은 상업적 목표를 추구하는 새로운 우주개발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우주개발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술 혁신과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군사 분야에서의 경쟁 등 다양한 이슈가 중첩되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어느 한 영역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안보와 경제, 기술 영역을 독립적이 아닌 서로 융합되고 상호 연결되며 진화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과 민간 우주산업의 부상
뉴 스페이스 시대에는 이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정부와 군 외에 다양한 민간 플레이어가 활동한다는 점이다. 정부, 군, 대기업만이 주도했던 시대에 한계가 도래했다. 동시에 기술혁신의 주체가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미국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와 같은 민간 기업으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우주 분야에서 새로운 참여자의 역할이 늘어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첨단 과학기술은 정부나 군, 덩치가 커서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이기 어려운 소수의 대기업이 주도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촌각을 다투며 발전하고 있어, 새로운 플레이어의 참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2019년 미국 공군이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우주 피치데이(Space Pitch Day)’와 같은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통해 정부와 군이 우주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민간 투자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향을 증명하듯 모건스탠리는 향후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이 정보기술(IT) 등 다른 기술 분야와 융합되면서 2040년에는 규모가 1조 달러(약 1184조 원)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정부 예산안이 약 558조 원 규모인데, 그 두 배가량의 금액이 우주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기업들은 다각적인 지원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비용 절감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2002년 설립된 스페이스X가 2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럽 그루먼, 레이시온 등 오랜 역사를 지닌 거대 방산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이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며 전 세계 군사력 1위인 미군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민간 기업이 우주발사체와 위성을 개발하고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국가가 주도하는 우주개발보다 비용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발사체의 경제성이 향상되면서 우주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우주를 서비스가 가능한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kg당 발사 비용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970~2000년에는 1kg의 물체를 우주에 보내는 데 약 1만 8500달러(약 2100만 원)가 들었다. 이에 비해 2019년 스페이스X의 팰컨9으로 1kg의 물체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낼 때엔 약 2720달러(약 322만 원)밖에 들지 않았다. 2019년 이후 스페이스X 외에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비용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는 민간 우주기업들의 꾸준한 연구개발과 도전 덕분에 가능했다. 2016년 미국 국방부 예하 국방혁신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민간 기업과 미국 정부의 연구개발비 격차는 두 배 이상 벌어졌다. 록히드 마틴, 노스럽 그루먼 등 전통 방위산업체는 다른 분야의 테크 기업에 비해 연구·개발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데, 이 점도 민간 우주 스타트업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한편 뉴 스페이스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전개와 궤를 같이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진보는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위성 항법 시스템(인공위성을 이용해 지구 전역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고도·속도를 계산하는 시스템)과 통신 위성 등 우주 기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주 기반 기술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드론 등과 융합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기술이 다시 우주에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3D프린팅, 빅데이터, AI 등 혁신 기술은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운용,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주 기반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성과들을 흡수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재사용 발사체, 군집 소형 위성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등 새로운 우주 비즈니스 모델도 생겨나고 있다.
우주산업, 첨단기술과 손 잡다
지난해 7월 11일,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 비행에 성공하면서 우주관광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곧이어 7월 20일에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설립자도 우주선 블루 오리진을 타고 우주로 향했고, 9월 19일 스페이스X도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민간인들로만 구성된 우주 탐사대가 궤도 비행에 도전한 첫 사례였다. 10년 뒤인 2030년엔 우주관광 시장의 규모가 40억 달러(약 4조 7500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주산업은 위성과 발사체를 생산하는 ‘업스트림(Upstream)’ 분야와 위성 영상 및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운스트림(Downstream)’ 분야로 구분된다. 우주발사체의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면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첨단 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다운스트림 산업과 서비스가 창출되는 시기가 왔다. 우주 인터넷과 위성 항법 시스템, 우주로 향하는 물질의 급격한 증가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우주 쓰레기 처리 등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업스트림 분야에서는 군의 수요 증가와 함께 미래 부가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우주항공 모빌리티 산업이 있다. 여기에는 2024년경 한국의 도시 권역에서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도심항공 모빌리티도 포함된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위성산업협회(SIA)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우주 경제의 규모는 3710억 달러(약 439조 원) 수준이다. 세부적으로는 지상 장비(네트워크 장비, 소비 제품)가 1353억 달러(약 160조 원), 위성 서비스(전기통신, 원격탐사, 과학, 국가안보)가 1178억 달러(약 139조 5000억 원), 비위성 산업(정부 우주 예산, 상업 유인 우주비행)이 1007억 달러(약 119조 원), 위성 제조가 122억 달러(약 14조 5000억 원), 발사 분야가 53억 달러(약 6조 원) 순이다.
여기서 위성과 관련된 산업만 분리해보면 그 규모는 약 2710억 달러(약 321조 원)로 전체 우주 경제의 73%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위성 서비스 영역과 지상 장비의 비중이 위성 관련 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위성 제조와 발사 분야는 7% 미만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융합된 서비스 분야가 확장하는 흐름에 따라 향후에도 이런 경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우주개발의 경제성과 안정성이 확보되면 이를 바탕으로 보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것이다. 미래의 부를 책임질 우주산업의 발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최초의 ‘조’만장자는 우주에서 나온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뉴 스페이스 시대는 변화, 혁신, 그리고 위기로 가득하다. 개인에게는 새로운 방향성이 되고, 군에게는 새로운 안보 환경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기로이며, 국가 차원에서는 이제 막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선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주산업의 기반을 만들어 나아가야 할 시기다.
확실한 것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돼 살아갈 미래에는 우주가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는 우주가 돈이 되는 우주 상업화의 시대다. 미국 비영리단체이자 세계 최대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의 피터 디아만디스 회장은 미국 경제지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첫 번째 조만장자(trillionaire)는 우주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우주는 이제 블루오션을 뛰어넘은 ‘블루스페이스’다.
아쉽게도 한국은 후발주자로 국내의 우주 산업은 여전히 올드 스페이스 시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주는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이미 뉴 스페이스 시대가 시작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스타트업이나 개별 기업 차원에서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과 관련된 투자를 추진하기 어렵다.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이 개발되면서 발사 비용이 줄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는 추세지만, 우주산업은 여전히 빠른 시일 내에 수익이 발생하기 어렵고 그만큼 규모의 경제 없이는 도전조차 어려운 조심스러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사업성과 비전만 바라보고 추진하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자원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국내 우주산업은 당분간 국가 주도의 미래 전략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미국과 같은 동맹국과 외교, 안보 부분에서 협의해야 하고, 국방 공조 또는 협력을 해야만 하는 분야라 정부 정책의 일관성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은 물론 대학과 기업, 연구소, 영국과 일본을 포함한 다양한 동맹국 등 파트너와 우주 분야에서 더 적극적인 민관군산학연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행보는 2019년부터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우주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미국이 과거 냉전 시대 소련을 대상으로 했던 우주경쟁이 21세기에는 중국으로 대상이 바뀌어 재현될 것임을 상정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과연 지금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건 무엇인지’ 가려내려는 노력이다. 이제 막 우주로 한 걸음을 내딛은 우리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국제협력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미래 세대가 우주에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현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의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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