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 크기 커지는 쪽으로 진화
거대동물이 왜 그렇게 큰 몸집을 갖게 됐는지는 과학자에게도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있다. 다만 진화의 방향성을 놓고 보면 몸집이 커지는 쪽이 당연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결론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진화생물학자인 존 타일러 보너 교수는 자신이 쓴‘크기의 과학’에서“지구 역사상 유기체 크기의 상한선은 항상 열려 있었다”며“대부분의 생명체가 몸집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고 설명한다.
몸집이 커지면 편리한 점이 많다. 천적이줄어들고, 그만큼 다른 경쟁 상대에 비해 먹잇감을 얻기가 쉬워진다. 대형 초식동물이 늘면 포식자들도 효과적으로 사냥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크기의 진화 방향이 어떤 종‘스스로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요인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차가운 기후에서 포유류와 같은 온혈동물의 몸집은 더 커져야 한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큰 몸뚱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냉혈동물은 따뜻한 기후에서 몸집이 더 커진다. 몸집이 커지면 외부 열을 차단하기에 그만큼 유리하다. 척추고생물학자들은 거대 초식공룡이 온화한 기후 덕분에 울창한 수풀에서 쉽게 먹잇감을 구할 수 있어 몸집이 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몸집이 커지면 소화 기관도 길어져 소화를 돕는 박테리아가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파충류 역시 충분한 환경만 뒷받침된다면 지금보다 몸집이 더 커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크기에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과학자들은 석탄기에 살던 바퀴벌레가 고양이만 했던 까닭이 당시 대기중 산소농도가 지금보다 2배 높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거대 곤충들은 다리에 산소를 공급하는 기관과 힘줄, 신경 다발이 발달했는데, 이들 기관이 산소를 몸 곳곳에 충분히 공급하면서 몸집이 커졌다는 얘기다. 미국 미드웨스턴대 알렉산더 카이저 교수는 2007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거대 곤충들의 기관은 지금보다 얇고 더 컸다”며“산소를 몸 전체와 다리 곳곳에 전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고 몸집도 점점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식지 면적도 크기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대와 남호주 박물관 연구진은 6만 5000년간 유라시아 대륙과 사이프러스에 살던 매머드와 하마의 몸 크기가 진화한 과정을 분석해 이들의 몸집이 서식 면적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북극해 랭글 섬에 살던 매머드의 경우 유라시아 대륙에 살던 매머드에 비해 몸 크기가 65%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먹잇감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넓은 면적의 서식지가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순신 동상만 한 사람 등장할까
브라키오사우루스 같은 거대 초식공룡보다 훨씬 큰 생명체는 지금도 있다. 현존하는 지구상 생명체 가운데 가장 큰 생명체인 그레이트배리어 산호는 길이만 2000km에 이른다. 미국 오리건 주의 한 숲에서 발견된 꿀버섯은 면적이 무려 8.9km2에 이른다. 생명체는 과연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
생물체의 크기는 세포 수가 결정한다. 세포의 자체 크기나 모양보다는 얼마나 많이 분열하느냐에 따라 몸집이 결정된다. 조혈세포, 생식세포, 체세포처럼 세포는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다르지만 몸집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세포의 수다. 쥐와 코끼리가 세포 종류에서 차이가 없지만 몸집이 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몸의 크기는 또 성장호르몬의 종류와 양에 따라 달라진다. 성장호르몬이 세포의 분열을 계속 명령해서 세포의 숫자가 점점 많아진다면 덩치도 따라서 커진다.
세포가 계속해서 분열만 한다면 생명체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생명체 스스로의 조절 능력을 벗어난 세포 분열은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거인국 사람은 실제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할 수 없다.
거인국 사람은 제대로 걸어 다니기는커녕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기 힘들 수 있다. 뜀박질은 물론 제자리에서 폴짝 뛰는 것도 어려울지 모른다. 뛰었다 떨어지는 순간 몸 무게 때문에 다리뼈가 박살날 수도 있다. 심지어 사람 키의 2배만 되도 한번 쓰러지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 있다. 중심을 잃고 쓰러져서 머리를 부딪칠 경우 정상인보다 30배나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너 교수를 비롯한 과학자들은“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사람의 다리는 물리적인 구조상 거의 코끼리 다리 수준으로 굵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덩치가 크고 무거운 동물들은 작은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굵은 다리뼈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몸집이 큰 동물은 크기에 비해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더 많은 근육이 필요하다. 몸집이 큰 동물은 근육량이 매우 커서 몸 안에 모두 넣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다리의 형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물론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예외인 동물이 있다. 바로 수중 동물들이다. 수중 동물들은 몸무게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의 부력 덕분에 중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이다. 대왕고래가 코끼리보다 14배 몸집이 무거워도 바다에서 잘 생활하는 이유도 부력 덕분이다. 고래들이 종종 뭍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몸무게에 짓눌려 질식하기 때문이다. 초식공룡 가운데 몸집이 가장 컸던 브라키오사우르스도 육지로 올라오기 전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서 보냈기 때문에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동물의 크기와 뇌 크기, 대사량, 생식주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몸집이 클수록 빠르고, 오래 살며, 개체 수는 작다. 뇌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생식주기는 길어진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몸집이 커지는 것과 함께 그에 맞게 생리 메커니즘이나 모습을 함께 바꿔 왔다. 한 예로 크기와 대사율의 관계를 놓고 보자. 하지만 코끼리가 한 번 먹는 식사량은 쥐 한 마리가 한 끼 먹는 양보다 절대적으로 많다. 코끼리는 자신의 몸무게에 맞추는 수의 쥐들이 먹는 음식물보다 훨씬 적은 양을 먹어도 살 수 있다. 이는 코끼리의 대사율이 쥐보다 낮기 때문이다. 대사율은 몸집(부피), 몸무게, 표면적과 관련이 있다. 포유동물의 경우 먹이를 많이 먹을수록 열량이 올라가고 그만큼 열을 발산하기 위해 동물의 몸집(부피)은 커진다. 하지만 표면적의 넓이는 몸집의 증가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코끼리는 운동 효율을 높이는 대신 대사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해석이다.
인간 활동이 거대동물 멸종 앞당겨
그렇다면 세상을 떵떵거리며 호령하며 살아가던 거대동물은 왜 사라진 것일까. 과학자들 사이에선 학설이 분분하다. 인류 조상의 무차별적인 사냥 때문이라는 측과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측, 환경이나 날씨의 급격한 변화로 사라졌다는 견해가 엇갈린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는 거대 포유류의 멸종과 관련한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다.
미국 위스콘신대 재클린 질 교수는 거대 초식동물들이 인류가 사냥을 시작하고 대형 산불이 일어나기 전 멸종했다고 보고 있다. 질 교수팀은 미국 인디애나 주의 한 호수에서 채취한 동물 똥을 분석한 결과 거대 동물들이 1만 4800년 전에서 1만 3700년 전 서서히 멸종 됐다는 분석을 지난해 11월‘사이언스’에 소개했다.
하지만 사람에 의한 멸종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만만찮다. 미국 워싱턴대 타일러 패이스 교수와 와이오밍대 토드 슈러벨 교수는 인류가 거대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한 1만 3800년 전~1만 1400년 전에 멸종했다는 연구 결과를 같은 달에 발행된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올해 초에는 호주 지역에 살던 거대 포유류들이 사냥으로 멸종했다는 호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사이언스’1월 5일자에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호주 지역에서 살던 거대 포유류가 소빙하기를 거치며 대부분 환경에‘적응’했지만 인간이 거대 포유류 새끼를 사냥하기 시작하면서 5만년 전~4만 년 전 빠르게 멸종했다는 것. 이에 대해 질 교수는“인간 활동이 거대 동물의 멸종의 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며“지금도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거대 동물은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분간 거대 동물을 사라지게 만든 정확한 원인에 대한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2억 년 뒤‘코끼리오징어’등장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괴물 같은 거대 생명체가 등장할 가능성은 없을까. 2004년 영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두걸 딕슨이 쓴‘더 퓨처 이즈 와일드(The Future is Wild)’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예측을 내놨다. 국내에는‘미래 동물 대탐험’이란 이름으로 번역된 이 책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고척추생물학자, 지질학자, 진화유전학자 등 전문가 약 30명이 예측하는 미래 세계를 담고 있다.
과학자들은 신생대 후반부인 현대가 끝나면 500만 년간 빙하기가 불어 닥치고 급격한 기후 변화가 생기면서 수많은 생물종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긴 빙하기가 끝나고 그 뒤부터 지구는 다시 따뜻하고 안정된 환경이 된다. 따뜻해진 지구는 바닷물의 수면이 올라가고, 다양한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생물의 종 다양성이 아주 높아질 전망이다. 이 가운데 육지로 올라온 수중동물이 식물이 번성하는 습지에 살면서 점차 대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먹이를 많이 먹을수록 덩치가 커지는 파충류 가운데는 현존하는 코끼리보다 훨씬 큰 거대동물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수컷코끼리보다 몸무게가 무려 24배 더 나가는 거북이 등장 할 가능성이 높다. 거대한 몸집의 이 거북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껍질 일부가 몸집이 커지면서 연약해지는 갈비뼈와 척추를 대신해 근육을 지탱해 준다. 덩치가 커지면서 천적도 사라지기 때문에 수명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곤충과 갑각류, 거미류 같은 육상의 절지동물 몸집도 지금보다 훨씬 커진다. 산소 농도가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뒤 다시 한 차례 대멸종을 더 거쳐 2억년 뒤 지구는 또 다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지금의 판구조론을 적용하면 각각 분리됐던 대륙들이 한데 뭉쳐 거대한 하나의 초대륙이 된다. 과학자들은 초대륙으로 바뀌면 대륙 내부는 매우 건조한 사막이 형성되고 바다에는 거대한 태풍이 계속해 휩쓸고 지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급격히 기후가 바뀌는 환경에서는 특수한 형태의 생물종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육지에 사는 거대한 오징어인‘코끼리오징어’의 등장은 대표적인 예다. 대멸종으로 사라진 척추동물을 대신해 오징어 같은 두족류가 뭍으로 올라온다는 것. 심지어는 현존하는 코끼리와 비슷한 몸무게인 8t 가까이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앞으로 등장할 동물의 종류와 덩치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거대동물이 출현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역사상 수많은 거대동물이 지금까지 출현했다가 사라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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