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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업 지키는 파수꾼, 디지털 보안

‘어떻게 하면 내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창작가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애써 만든 창작물이 온라인에 유포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 창작 의욕 저하를 불러온다. 이는 국내 문화 콘텐츠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문화강국을 넘보는 시점에서 영상 콘텐츠 보안 기술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0월은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창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대부분 국가에서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한 만큼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화제였다. 문제는 중국에서는 넷플릭스 접근이 차단돼 있어,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오징어 게임을 시청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오징어 게임의 영상 파일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60여 개의 중국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문제가 불거졌다. 콘텐츠 보안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상한 계기였다.

 

 
디지털 자물쇠, DRM


디지털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면서 콘텐츠 보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최근 대부분의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은 디지털로 제작·유통되고 있고, 누구나 손쉽게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해서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볼 수 있다. 여기에 반도체의 성능이 급격히 증가하고 5세대(5G) 이동통신이 도입되면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미래에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혼합현실(MR) 등 실감형 콘텐츠와 메타버스 플랫폼까지 콘텐츠의 범위는 더 확장될 전망이다.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은 디지털 환경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동시에 누구라도 불법 유통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초기에는 주로 ‘디지털 권리 관리(DRM)’ 방식이 사용됐다. 저작권자가 배포하는 디지털 파일을 암호화해 사용자와 사용 범위, 기간 등을 제어할 수 있는 방식이다. 


가령 온라인에서 영화를 7일간 시청할 수 있는 비용을 낸다면 암호화된 영상 파일과 함께 7일 동안 파일을 열 수 있는 암호키를 받아 사용하는 식이다. 초기 음악 시장이 불법 유통으로 고전하던 시기, DRM이 음원에 도입되며 불법 유통 시장이 거의 사라졌을 정도로 강력한 보안 기술이다.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여전히 DRM은 널리 쓰이는 추세다. 애플의 ‘페어플레이(Fairplay)’, 구글의 ‘와이드바인(Widevine)’,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레이레디(Playready)’ 등이 DRM을 적용한 대표적인 서비스다.


다만 DRM 방식에는 한계도 많다. 사용자가 암호키를 부여받은 장치 외에는 콘텐츠를 이용할 수 없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구독형 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할 때 미리 등록한 이용 장치가 아닐 경우 아무리 로그인을 해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이유다. 


쉽게 해킹하거나 우회할 수 있다는 점도 DRM 방식의 단점 중 하나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 쓰는 인증키를 해킹하거나 파일에 적용된 암호화를 해제한다면 곧바로 누구나 볼 수 있는 불법 파일로 바뀔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도장, 워터마크


최근에는 DRM과 함께 ‘워터마크’ 기술이 영상 콘텐츠에 도입되고 있다. 워터마크는 과거 인쇄물의 보안을 위해 주로 활용되던 방식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마크를 함께 인쇄해 불법 복사를 통한 유포를 막는다.


콘텐츠 산업이 인쇄와 필름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진화하며 워터마크도 디지털 워터마크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영상의 프레임마다 식별할 수 있는 부호나 코드를 심는 방식이다. DRM이 영상 디지털 ‘파일’에 보안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과 달리, 워터마크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영상’ 자체에 표식을 넣는다.


디지털 워터마크의 가장 큰 장점은 DRM 방식 등을 회피하는 캡처, 녹화 등 불법 콘텐츠 유포 방식까지 막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에 바코드, QR코드 등 디지털 표식을 삽입하면 추후 유포된 파일에서도 이를 식별해낼 수 있다. 온라인에서 불법 유통되는 영상에 대해서 삽입된 표식을 찾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면, 실시간으로 불법 유통 콘텐츠에 대해 검색 및 차단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워터마크 기술에서는 영상 콘텐츠를 즐기는 관객이 워터마크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상에 유포된 영상 콘텐츠 파일을 찾아내고 각 프레임의 워터마크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쉽게 추출하거나 이를 지울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파일의 불법 유포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물론, 누가 어떤 경로로 불법 파일을 유통하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포렌식 워터마크’ 기술이 도입되는 추세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워터마크를 삽입하는 대신, 유통 과정에서 구매자의 정보를 담은 워터마크를 실시간으로 삽입하는 방식이다. 이를 확인하면 손쉽게 불법 행위자를 선별해낼 수 있다. 물론 캠코더로 촬영하거나 녹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OTT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촬영 및 유포하는 행위를 막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산업 단지인 할리우드에서는 제작사들이 ‘무비랩(MovieLabs)’이라는 이름의 비영리 단체를 공동 설립해 콘텐츠 유통과 함께 보안 기술을 연구, 표준화하고 있다. 무비랩에서는 ‘영상 콘텐츠 보호를 위해 DRM과 워터마크 기술을 동시에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덕분에 할리우드에서 제작, 유통되는 영화 대부분에는 워터마크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영상 콘텐츠 산업 관계자들과 만나 국내 영화에 워터마크 기술을 도입하는 시범 사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터넷 프로토콜 TV(IPTV)를 통한 영화 관람이 늘면서 불법 복제 피해 또한 증가한다는 이유였다. 특히 해외 영화 대부분은 이미 워터마크 기술이 적용돼 유통되는 반면, 국내 영화에는 아직까지 워터마크가 삽입된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날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디지털 콘텐츠 온라인 유통 환경이 고도로 발달한 만큼 국내 저작권 정책도 다른 국가를 선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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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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