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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외골격 로봇 ‘하이퍼’의 초기모델. 연구원 한 사람이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 입고 있는 옷은 생기원에서 개발에 참여한 한국군 차세대 복장인 ‘디지털 군복’과 ‘방탄조끼’.]

옷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가졌다. 갑옷은 적의 총칼을 막아내고, 관복은 권위를 더해 준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옷’을 가지고 싶은 건 당연한 소망이다. 문학과 예술 작가들은 이런 소망을 이야기로, 그림으로 풀어냈다. 투명인간이 되는 망토, 하늘을 날 수 있는 옷은 이미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동화책 속 고전이다. ‘힘이 세지는 옷’은 특히 인기가 있어서, 아직까지도 만화나 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이 작은(?)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과학자들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로봇을 몸에 입으면 된다.

인간의 팔다리 힘을 키워주는 로봇 장치를 ‘입는 로봇(wearable robot)’ 또는 ‘외골격로봇(robot exoskeleton)’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영화 ‘아이언맨’에서는 강철 옷을 입은 주인공이 슈퍼히어로가 돼 악당들과 싸우고, ‘아바타’에 등장하는 악당 쿼리치 대령은 로봇의 힘을 빌려 외계 행성의 주민과 싸운다. 이런 영화 속 상상력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만큼 막강한 성능은 아니지만 현실세계에서도 이런 입는 로봇은 이미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미-일 개발경쟁 한창… 한국도 출사표

입는 로봇 개발의 선두에 선 나라는 역시 로봇 기술이 뛰어난 미국과 일본이다.

상품화는 일본이 가장 빨랐다. 쓰쿠바대 연구팀이 창업한 로봇 전문기업 사이버다인은 노인이나 환자를 보조할수 있는 다리로봇인 ‘할(HAL·하이브리드 의족)’을 개발하고, 2009년 실제로 임대,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다리가 약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주 고객이다.  봇 1대의 가격은 500만~600만 원 정도다. 이 밖에 일본 자동차 회사 혼다는 두발로봇 ‘아시모’를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해야 하는 공장노동자들을 위한 하체강화 로봇 워크어시스트(Walk-assist)를 개발했다. 일본이 민간용 서비스로봇 개발에 주력하는 반면 미국은 외골격 로봇을 군사용으로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군수품 개발업체 레이시온 사르코스사는 2000년부터 미 육군용으로 외골격 로봇 ‘엑소스(XOS)’를 개발해 왔다. 이 로봇은 운동능력에 관한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엑소스를 입은 병사는 볼링공 두 개를 한 손으로 들고도 두 시간 넘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90kg이 넘는 역기를 손쉽게 들었다 놓는 괴력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두
손으로 펀칭볼을 두드리고, 다리로는 축구를 할 정도로 민첩하다. 록히드마틴사도 외골격 로봇 ‘헐크(HULC)’ 개발을 완료했다. 이 로봇을 입으면 90kg 이상의 짐을 지고 시속 16km로 산길을 뛰어 다닐 수 있다.

이런 일본과 미국의 외골격 로봇 경쟁에 한국도 끼어 들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하 생기원) 민군실용로 봇사업단이 개발한 ‘하이퍼(HyPER·Hydraulic Powered Exoskeleton Robot)가 유명하다. 한양대 한창수 교수 연구팀도 생기원과 함께 외골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120kg 짊어져도 끄떡없는 힘

한국 외골격 로봇의 수준은 어떨까. 아직 일본과 미국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생기원 민군실용로봇사업단은 군사용, 민간용으로 두루 쓸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퍼도 미국의 로봇처럼 ‘군용’ 성격이 강하다. 일본의 로봇처럼 전기모터를 쓰지 않고, 유압식 액추에이터를 썼다. 액추에이터란 동물의 근육에 해당한다. 전기모터, 유압식 실린더 등이 흔히 쓰인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로봇을 개발할 때는 주로 전기모터를 썼다. 국내에서 유압식으로 로봇을 만들고 있는 곳은 생기원 뿐이다.

박상덕 생기원 단장은 “유압식 로봇은 정밀한 제어가 어렵고 힘이 세서 동작 알고리듬을 만드는 데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큰 힘을 낼 수 있어서 군사용이나 산업용으로 쓰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하이퍼 초기버전이 처음 개발된 것은 2년 전인 2009년. 첫 번째 하이퍼(하이퍼1)는 마치 주사기처럼 뻗어나가며 길이가 바뀌는 ‘유압식 리니어 액추에이터’를 이용한다. 120kg 정도의 짐을 짊어지고 걸을 수 있다. 로봇 자체의 무게는 100kg. 건장한 성인 남자의 몸무게가 80kg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하이퍼1은 300kg을 거뜬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유압 공급 장치가 크고 무거워 실험실 안에서만 움직이는 걸로 만족했다.

생기원은 이런 문제를 개량해 구동장치를 EHA라고 불리는 작은 유압식 엑추에이터로 바꾸고, 배터리와 연결해 3시간 동안 움직일 수 있는 하이퍼2를 2010년 개발했다. 하이퍼1에 비해 힘은 조금 약하지만 야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하이퍼 개발 관계자는 “동작시간이 다소 짧지만 그건 큰 배터리를 연결하면 해결된다”며 “배터리 자체의 무게와 등에 짊어질 수 있는 짐의 부피를 고려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하이퍼의 동작시간과 정밀도, 운동속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다.


[생기원과 한양대 한창수 교수팀 이외에 민간기업에서도 입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사진은 국내기업 NT리서치가 개발한 외골격 로봇. 상체 보조 기능만 갖추고 있다.]



슈퍼솔저 되려면
생기원 연구팀은 하이퍼를 계속 연구해 언젠가는 ‘슈퍼솔저’를 탄생시킬 계획이다. 하이퍼 같은 외골격 로봇을 입은 군인 한명이 일반병사 수십 명에 해당하는 전쟁수행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하이퍼가 한국의 슈퍼솔저로 거듭나려면 아직 몇 가지 숙제가 남아있다. 먼저 양팔의 힘을 키워주는 ‘상체강화형 로봇’을 개발할 계획이다.

연구팀은 상체강화 로봇을 만드는 건 큰 숙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금의 하이퍼는 사람의 다리 힘을 키워주는 하체강화형 로봇인데, 하체 쪽을 먼저 개발한 이유는 그 쪽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상체 로봇을 개발해 연결하면 하이퍼는 미국의 엑소스처럼 양팔, 양다리의 힘을 모두 키워주는 완벽한 ‘입는 로봇’이 된다.

둘째로는 지금보다 훨씬 부드럽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하이퍼2는 사람이 힘들이지 않고 걷고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동작을 100% 보조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낮은 포복, 민첩한 달리기 등을 할 때는 로봇의 구동장치가 ‘윙윙~’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지른다. 외골격 로봇은 어떤 원리로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는 걸까. 하이퍼의 신발, 허리, 발목 등 곳곳에 25개의 정밀한 압력센서가 붙어 있다. 사람은 발로 압력센서를 밀고, 압력을 느낀 전자회로는 로봇에 명령을 보내 사람과 똑같은 방향으로 로봇을 움직여 준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 로봇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 차가 생긴다.

다른 방법으로는 인간의 근육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인 ‘근전도’나 힘을 줄 때 근육이 딱딱해지는 ‘근육경도’를 감지하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다. 일본의 외골격 로봇인 HAL이 근전도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연구팀은 “사람의 두뇌에서 근육 쪽으로 넘어오는 신경을 분석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근전도 방식보다 한층 더 진보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뇌 과학자들은 뇌세포 내에서 바로 신호를 꺼내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두뇌-기계 연결장치(BMI)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뇌 속에 전극을 꽂아 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실용화가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근적외선을 이용해 뇌 속의 산소량을 읽는 방식도 개발됐다. 외골격 로봇 전문가들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신호를 읽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꼭 한 가지만 채택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2~3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해 최적의 동작 알고리듬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웅희 생기원 로봇기술연구부장은 “걷기 기능을 완성한 만큼 하이퍼가 사람의 손과 팔 동작도 따라하는 기술도 곧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1~2년만 더 기다리면 한층 더 진보된 로봇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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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전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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