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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자전거 vs 강관자전거

소비자는 디자인을 산다

우리 생활을 바꿔놓은 가장 대표적인 소재는 아마도 플라스틱일 것이다. 가공이 쉽고 다루기도 쉬워 처음에는 유리제품을 대체하더니 1970년대에는 자동차 부품에 쓰인 철과 같은 금속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플라스틱의 이런 잠재력을 보고 새로운 발명에 뛰어든 곳이 있었는데, 스웨덴의 이테라사였다.

1982년 2월 이테라사는 자신들이 디자인한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자전거가 빌헬미나 공장에서 대량 생산에 들어갔음을 각 신문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신문 홍보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1981년 9월 자전거 판매상들에게 처음으로 제품을 소개하면서부터 이테라사는 적극적인 언론 공세에 들어갔다.

이테라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언론 공세를 펼쳤는지 플라스틱자전거가 생산에 들어가기도 전에 스웨덴 사람 중 플라스틱자전거의 사진을 보거나 듣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골조, 바퀴 부분, 바퀴와 연결되는 포크, 핸들 등 기존에 강관으로 만들어지던 자전거의 모든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바꾼 플라스틱자전거는 ‘극단의 기계’, ‘영구 기계’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이테라사는 제품을 선보인 1981년 9월부터 치밀한 사전 시장 조사도 벌였다. 나이, 계층, 직업에 따라 제품 선호도를 조사했고, 약 10만명이 플라스틱자전거 구입에 관심이 있으며 주고객은 여피족으로 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전문직종인들이 될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이테라사는 제품의 고급 이미지를 위해 가격도 기존의 자전거보다 약간 높게 산정했다. 또 대량 주문에 따른 물류 수송비를 절감하고자 완제품을 판매상들에게 수송하는 대신 반제품으로 포장해 판매상들에게 배달하고, 판매상이 완제품을 조립하는 새로운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이런 준비 끝에 1982년 2월 이테라사의 플라스틱자전거는 마침내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플라스틱자전거는 고객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판매는 부진했고, 언론에서는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 주고객으로 삼았던 이들은 플라스틱자전거를 외면했다. 원활한 수송을 위해 판매상에서 자전거를 조립하도록 한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판매상에 배달된 자전거 박스에는 조립에 필요한 부품들이 빠져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첫해는 모든 예상들이 빗나갔고, 이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판매상들은 아예 플라스틱자전거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83년 자전거경주에서 1000여대가 한꺼번에 팔리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쇠퇴해가는 플라스틱자전거를 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85년 플라스틱자전거는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다.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 우선 자전거 시장이 포화상태였다. 자동차회사인 볼보에서 소형자동차를 개발하다가 플라스틱자전거 개발로 방향을 바꾼 라스 사무엘슨과 얀 올손은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스웨덴에 자전거 붐이 일자 1980년대에도 이 붐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1970년대 말 40만명을 넘어선 자전거 사용 인구가 1980년대에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특히 사출성형으로 제작할 수 있는 플라스틱자전거는 기존 자전거와 달리 부수적인 수작업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대량 생산으로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1982년에 이미 자전거 시장은 완전히 포화상태가 됐고, 자전거 인구도 197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고 말았다.

플라스틱자전거가 디자인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강관자전거보다 특별히 좋은 점도 없었다. 강관자전거만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핸들, 바퀴살, 차체 등이 두껍고 투박할 수밖에 없었다. 플라스틱자전거가 시판에 들어간 1982년도에는 스포츠자전거가 유행해 강관자전거의 날렵한 외관이 돋보였기 때문에 플라스틱자전거는 상대적으로 더욱 무거워 보였다. 실제로 플라스틱자전거의 무게는 강관자전거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도 자전거는 강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자전거에 플라스틱을 쓴다는 것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부적합한 기술의 조합으로 여겼던 것이다. 일례로 플라스틱 핸들은 유연성이 있어 달릴 때 길에서 받는 충격을 잘 흡수했지만, 사람들은 그로 인해 핸들이 흔들려 오히려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테라사는 나중에 플라스틱자전거의 핸들만 다시 강관으로 되돌리기도 했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이테라사는 지나치게 생산 비용만을 절감하려 한 탓에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미적 선호도나 안전성 등을 고려하지 못했다. 시장의 변화에 따라 자전거 디자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공학자에게는 소재의 한계 때문에 디자인이 왜곡되는 것이 당연해보일 수도 있지만 소재뿐만 아니라 제품의 이미지도 함께 소비하는 일반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플라스틱자전거 VS 강관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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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희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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