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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 양극화 고통 장기화 불러온다

데이터로 본 코로나19 백신 접종

 

지난해 12월, 91세 영국인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았다. 연이어 각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팬데믹 종식이 머지않았다는 희망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국내에서도 올해 2월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델타 변이가 등장한 이후 희망이 다시 잠시 사그라진 듯하다. 인도에서 시작된 델타 변이는 전 세계에 급격하게 퍼졌고, 한국을 비롯해 90개 이상의 국가에서 나타났다. 추가로 새로운 변이가 등장하면서 코로나19의 공포는 다시 커졌다. 백신 접종의 효능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온전히 백신 접종만으론 유행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증거도 세계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제 어떻게 하면 코로나19와 안전하게 동거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실제로 웬만큼 백신 접종을 마친 나라들은 소위 ‘위드 코로나(living with COVID-19)’를 준비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다행히 백신 접종률이 높은 곳에서는 확진자 규모가 증가해도 중증환자 수나 사망자 수는 빠르게 증가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접종자 수가 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 감염되는 돌파 감염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백신 접종자보다는 미접종자 사이에서 감염 확률이 높다.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위해선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데이터로 톺아보고 지금 시점에서 노력할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봤다. 

 

전 세계 47% 백신 접종…국가별 차이 커

 

백신 접종률은 전체 인구 중 백신을 맞은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얀센 백신을 제외하고는 대개 약 3~6주 간격을 두고 2회에 걸쳐 접종하게 돼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이미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시행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10월 12일부터 부스터샷을 시작했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를 생략했다.


백신 접종률은 보통 1차 접종을 마친 사람과 2차 접종을 마친 사람의 비율을 따로 산정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뉴욕타임스가 운영하는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올해 10월 11일까지 1차 이상 접종을 마친 전 세계 인구 비율은 47%(약 37억 명)다. 


백신 1차 이상 접종률 70%를 달성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30개국이 넘는다. 포르투갈에서 1차 이상 접종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88.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아래 그래프).

 


 자치령 국가나 일부 소규모 도서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높다. 2차까지 접종 완료한 국가에서도 포르투갈은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의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다. 인구의 80% 이상이 1번 이상 백신을 맞았다. 


한국(78%)과 덴마크(77%)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백신 접종을 조기에 시작한 국가들은 1차 접종률이 50%가 넘어가면 접종속도가 서서히 정체됐는데, 한국은 1차 접종률이 50%를 넘긴 뒤에도 꾸준히 접종이 이뤄져 백신 1차 접종률 70%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도달했다.


프랑스, 일본 등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초기엔 백신 접종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 두 국가의 백신 1차 접종률은 각각 75%, 74%로 높게 나타났다. 오히려 가장 먼저 백신 접종을 시작했던 미국, 이스라엘, 영국 등이 64~72%로 상대적으로 낮은 백신 접종률을 보인다. 
한편 인도의 백신 접종률은 50%가 되지 않는다. 접종 완료 인구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확진자 수가 많은 국가, 접종 속도도 빨라

앞서 언급한 국가들에서는 더이상 백신 공급 제한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신 접종을 희망하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캐나다, 미국 등 일부 국가는 12세 이상 청소년에게까지 접종을 시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10월 18일부터 청소년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그런데 여전히 국가별로 백신 접종률에 차이가 나타난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 문헌에서는 소득 수준, 교육 수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접종의 결정요인으로 주로 꼽는다. 


필자는 조금 다른 요인에 주목했다. 높은 접종률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유행의 크기’다. 유행 상황이 심각해지면 백신에 의한 감염 예방의 유익이 커지기 때문에 접종률도 같이 오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포함한 약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률이 30%에 도달한 이후 세 달간 접종률 증가분과 누적 확진자 수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위 그래프). 그 결과, 확진자 수가 많은 곳에서 접종률이 더 빠르게 오르는 경향이 확인된다. 


실제로 접종률이 크게 증가한 포르투갈,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는 확진자 수도 많았다(그래프 오른쪽 위). 물론 예외도 있다. 한국, 아이슬란드, 싱가포르 등은 유행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접종률이 빠르게 높아진 국가다(그래프 왼쪽 위). 이런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접종률과 유행 규모 사이의 관계는 더 뚜렷해진다.


만약 백신 접종률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방역에 대한 긴장감이 이완되고, 그에 따라 유행 상황이 오히려 악화된다면 역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접종률이 올라가면 감염을 통제하려는 힘도 강해지기 때문에 역인과관계가 발생해도 유의미하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구 당 확진자 수, 접종률에 영향

 

유행 상황이 나빠져 ‘백신 패스’에 대한 수용성이 더 높아지거나 청소년 접종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등의 정책이 영향을 미쳐 백신 접종률이 오를 수도 있다.


백신 패스는 예방 접종 사실을 증명하는 증명서로, 이를 소지해야만 다중이용시설 출입이나 행사 참석을 허용하는 정책을 대표한다. 보통 증명서에 감염 후 회복 여부, 코로나19 검사 결과 등도 같이 담겨서 ‘코로나패스’ ‘보건패스’ ‘그린패스’ 등 국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덴마크, 이스라엘 등 접종률이 높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와 유사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또 애초에 백신의 확보와 공급에 비용을 더 많이 치렀을 수도 있다.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유행 초기, 백신 접종을 서두른 나라들은 대부분 확진자 수의 규모가 큰 나라였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지난 4월 15일 자료를 확인해 봤다. 그리고 당시 한 명 이상 백신 접종을 받은 전 세계 127개국에서 확진자 수와 백신 접종률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역시 인구 당 확진자가 많을수록 백신 1차 이상 접종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추세선에서 확연히 벗어나 있는 이스라엘, 영국, 미국 등은 백신 접종이 빨리 시작된 국가들이다(아래 그래프). 반면 감염 규모가 작은 나라일수록 접종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명확히 보인다.

 

당시 확진자가 거의 없었던 대만, 베트남, 뉴질랜드, 호주, 태국 등은 실제로 백신 접종률이 매우 낮았다. 한국도 역시 당시에는 감염 규모를 안정적으로 통제해서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접종률을 올리기 위한 여러 노력이 각각의 의미를 지니지만, 유행 상황이라는 외생 변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감염 규모가 커지면 접종의 이득이 올라가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선 접종을 더 많이 할 이유가 생기고 국가 차원에선 백신의 확보 및 접종 독려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유인이 생긴다.

 

 

고소득국가에서 접종률도 높아

 

백신 접종속도가 붙으면서 소득에 따라 접종률이 달라지는 양극화 현상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같은 유행 규모를 겪어도 소득이 높지 않은 나라에선 백신에 접근하기가 더 어렵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서 국가 소득에 따른 백신 접종 완료율을 나타낸 자료를 찾아보면 고소득국가에선 인구의 61.4%가 접종을 완료했다. 한편 저소득국가는 단 1.3%만 접종을 완료하는 데 그쳤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접종률이 올라가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 백신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다. 유행 상황이 안정된 국가에선 백신 계약이 비교적 늦었지만, 그중에서도 뉴질랜드, 호주, 일본 등은 인구수의 2배 이상 백신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제약사와의 개별계약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서만 백신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평등하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한 세계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다. 특히 사하라 사막 남쪽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접종률은 최근까지도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어떤 나라는 높은 백신 접종률을 바탕으로 위드 코로나를 시행하고 있지만 어떤 나라는 여전히 기약 없이 백신을 기다리고 있다. 인도에서 백신이 모자라 극심한 유행을 겪는 가운데,  빠른 백신 접종을 통해 거의 유행을 잡았다고 환호했던 영국,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는 델타 변이 발생으로 재유행을 경험했다. 


유행이 통제되지 않고 급격히 확산하는 국가가 남아 있다면 한 국가에서 아무리 위드 코로나를 외쳐도 효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팬데믹 종료를 위해서는 유무형 접종 인프라 지원까지 포함한 백신 접종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은 인간이 코로나19와 함께 공존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패다. 감염 확산을 조금이라도 덜 겪으면서, 소득 불균형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면서 세계 백신 접종률이 고르게 오를 수 있다면 고통의 총량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모두의 바람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202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에디터

    조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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