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외계행성 조건을 정했다면 다음 순서는 원하는 조건을 만족하는 외계행성을 찾아서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겁니다. 지구에서 최소 몇 광년은 떨어져 있을텐데 가능한 일이냐고요? 걱정 마세요. 저희 부동산은 지구의 수많은 천문학자와 협력하고 우주관측위성 및 망원경을 활용해 행성의 대기를 집중적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원격으로 ‘제2의 지구’를 찾는 법, 이연주 독일 베를린공대 천문 및 천체물리학센터 EU연구원이 대표로 해설해 드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아주 특별한 행성입니다. 적도부터 추운 극지방까지 기후조건에 맞게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죠. 맨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묻은 미생물이나 공기 중의 곰팡이까지 고려하면 지구는 그야말로 생물천지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생물천지인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구간이 지구 반지름(약 6400km)의 단 0.2%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날씨가 나타나는 대류권의 높이가 약 10km이고, 해저의 깊이가 약 5km라고 어림잡으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물이 존재하는 지표면과 대기가 지탱하고 있는 셈입니다. 물과 대기는 생명체가 신진대사를 유지하게 해주고, 대기는 위험한 자외선을 흡수해 생명체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으로 빛나는 지구
이 0.2% 구간 때문에 지구는 다른 행성들과 다른 독특한 푸른 빛을 냅니다.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면 푸른 빛을 내는 파장대의 빛이 반사돼 지구 밖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1977년 미국에서 발사한 무인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지구와 40.5AU(천문단위·1AU는 태양과 지구 간 평균 거리인 약 1억 5000만km) 떨어진 지점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을 보면 지구는 대기 산란에 의해 ‘창백한 푸른 점’으로 빛납니다.
먼 거리에서, 게다가 파랑, 초록, 보라색의 파장별로 1초도 안 되는 노출시간을 두고 촬영한 사진에 대기의 산란이 관측될 수 있다는 사실에 과학자들은 흥분했습니다. 같은 원리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외계행성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를 위해선 먼저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인 지구가 먼 거리에서 하나의 점으로 보일 때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갖는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지구가 사과라면 우리는 직접 먹어보지 않고도 사과가 맛이 있을지 없을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과거 경험을 통해 사과의 맛과 색깔의 상관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인 지구(맛있는 사과)가 먼 우주에서 어떻게 보이는지(사과의 색깔), 생명체가 살기 힘든 환경의 행성(맛없는 사과)과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구의 밝기 특성은 지구를 관측하는 위성의 자료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냅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조나단 지앙 연구원팀은 ‘디스커브르(DSCOVR)’라는 심우주 기후관측위성 자료를 분석해 지구에 반사된 태양빛이 파장대마다 24시간 주기로 변한다는 사실을 2018년 7월 ‘천체물리학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doi: 10.3847/1538-3881/aac6e2
이 연구결과는 지구가 하나의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지구의 특성 중 하나인 자전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위성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대륙의 위치가 자전에 의해 규칙적으로 변하고 결과적으로 지구의 밝기도 그에 맞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기의 영향은 지구의 밝기를 불규칙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대륙과 바다 위로 펼쳐진 구름은 시간에 따라 항상 변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구름의 반사도가 파장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구름의 영향을 추출할 수도 있습니다.
금성의 대기로 알 수 있는 특성은?
다른 행성이라면 어떻게 보일까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태양계 내의 행성인 금성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금성은 현재 생명체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지구와 가장 비슷한 체형, 즉 비슷한 크기와 질량을 갖고 있습니다. 대기도 존재하고요. 대기압이 지구의 100배에 달하는 두꺼운 대기에 20km가 넘는 두께의 구름이 있어서 금성 밖에서는 지표가 보이지 않습니다.
금성의 대기는 구름으로 뒤덮여 있을지 모르는 외계행성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제가 속한 독일 베를린공대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국제 공동연구팀은 금성에서 운용 중인 금성탐사선 ‘아카쓰키’의 자료를 이용해 금성 대기가 반사하는 태양빛이 지구처럼 규칙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1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467-020-19385-6
금성의 밝기는 4~5일 주기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금성은 자전 속도가 매우 느려서 한 번 자전하는 데 243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는 자전이 원인이 아닙니다. 금성에서는 구름 상층에 초속 100m의 강한 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이 금성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4일이 걸립니다. 금성의 밝기 변화에는 바람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금성의 밝기는 어느 때는 4일 어느 때는 5일 주기로 불규칙적으로 변하는데, 이는 금성의 대기 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중요한 파동인 ‘로스비파(Rossby wave)’와 ‘켈빈파(Kelvin wave)’의 영향이 시간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또 파장별로 밝기 변화가 서로 반대로 나타나기도 하는데(가령 A라는 파장의 빛이 밝아질 때 B라는 파장의 빛은 어두워집니다) 이런 현상은 반사도를 결정하는 금성 대기의 흡수물질이 금성 구름의 위, 혹은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지구와 금성을 연구해 얻은 정보는 다른 외계행성을 더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비교 정보가 됩니다. 두 행성의 불규칙적인 밝기 변화로 대기가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영향을 알게 됐습니다. 외계행성에 대기가 존재할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구나 금성에서 볼 수 있던 특성과 비교하는 과정이 필수적일 겁니다. 외계행성을 수년에 걸쳐 꾸준히 관측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대기에서 물의 존재를 밝히다
멀리 떨어진 외계행성을 연구할 때에는 이처럼 대기에서 반사하는 빛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외계행성의 밝기 주기를 보면 대기의 존재를 알 수 있고, 이를 빛의 파장에 따라 관측하면 대기를 구성하는 성분까지도 좀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기를 구성하는 각각의 성분들이 특정한 파장의 빛만 선택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물(H2O) 분자와 이산화탄소(CO2) 분자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고, 이 구조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빛의 파장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과 캐나다 몬트리올대 연구팀은 지구에서 약 124광년 떨어진 적색왜성 근처의 외계행성 K2-18b 대기에서 물의 존재를 찾아내 2019년 ‘네이처 천문학’(9월)과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12월)에 각각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550-019-0878-9, doi: 10.3847/2041-8213/ab59dc 물론 K2-18b는 질량이 지구의 9배이고 크기도 2배나 되기 때문에 지구와는 환경이 많이 다를 것으로 추정되지만요.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외계행성은 대기가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디딜 땅이 있어야 하고, 크기와 질량이 지구와 비슷해야 유사한 중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목성 혹은 해왕성 같은 가스형 행성이 아닌, 훨씬 작은 지구형 행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은 크기의 행성일수록 반사하는 빛이 약해 현재 기술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올해 가을 발사 예정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처럼 성능이 뛰어난 새로운 우주관측기기들이 등판한다면 외계행성의 좌표를 찾는 일은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낼 겁니다. 가까운 미래에 언젠가, 작은 지구형 외계행성의 대기에서 물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기대해 봅니다.
※필자소개
이연주. 한국에서 지구대기과학을 공부하던 중 지구와 가장 닮은 행성이자 매우 다른 대기를 가진 금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럽우주국(ESA)의 금성탐사선 비너스 익스프레스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아카쓰키 팀에서 금성 연구를 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ESA-JAXA의 베피콜롬보팀, 독일항공우주센터(DLR)의 외계행성연구팀과 연구를 하고 있다. y.j.lee@astro.physik.tu-berli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