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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행성에 살아보실래요? 입주 전 따져 볼 조건

[웰컴 투 우주부동산]

우주부동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사철이 시작됐죠. 그런데 요즘 제대로 된 행성 고르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까딱 잘못 고르면 너무 춥거나 물도 제대로 안 나오기 십상이거든요. 그래서 주로 우리은하 지역의 매물을 담당하는 저, 이행성 공인중개사가 직접 나섰습니다. 우리가 살 외계행성을 현명하게 고를 수 있는 꿀팁,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TIP1. 물이 잘 안 나오는 행성은 안 돼요


가장 먼저 고려할 조건은 단연 물입니다. 집을 구할 때 세면대, 싱크대 물을 꼭 틀어보라고 말하죠? 외계행성을 탐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다못해 화성을 탐사할 때에도 표면과 대기에 수분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측정하는 연구가 꼭 포함되죠.


물이 중요한 이유는 생명체가 거주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가 생존하려면 신진대사를 위한 에너지와 탄소, 수소, 질소, 산소 등의 화학성분이 필요합니다. 이때 모든 반응의 용매로 작용하는 것이 물입니다. 정확히는 ‘액체 상태의 물’이죠.


따라서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른다는 것은 인간이 그 행성에 이주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더 나아가 수분과 그로 인한 대기 활동이 많으면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구의 표면적 70%는 바다이고, 건조한 사막보다는 습한 열대우림에 더 많은 생물자원이 분포하죠. 또 육지와 해양의 접촉면이 넓을수록 생물자원 및 생물 다양성이 높은 해양 지역인 ‘천해역’이 증가합니다. 육지와 해양 분포는 해수와 대기 순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물이 중요하다 보니, 거주 가능한 조건을 갖춘 행성을 찾는 기준에도 물이 활용됩니다.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정도의 평균 표면 온도를 가진 행성이 존재하는 구역을 ‘생명체 거주가능 지역(Habitable Zone·HZ)’이라고 하거든요. 지금까지 생명체 거주가능 지역에 존재하는 외계행성은 4000개 이상 밝혀졌습니다.

 

 

TIP2. 너무 춥거나 더운 집은 살기 힘들어요

 

감성에 젖어 옥탑방을 선택했다가는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보낼 수 있죠. 여름엔 옥상에서 올라온 열기에 찜 요리가 되는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외계행성을 고를 때도 온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어느 정도 온도가 적합한 온도일까요. 


지난해 12월 더크 슐츠-마쿠흐 교수가 이끄는 독일 베를린공대 천문 및 천체물리학 연구소팀은 국제학술지 ‘천체생물학’에 생명체가 번성하기 위한 행성의 조건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생명체가 최대한 번성하려면 현재 지구 평균보다 5℃가량 높아야 합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약 14℃이므로 20℃ 정도의 행성이 좋은 셈이죠. doi: 10.1089/ast.2019.2161


지구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지구도 지금보다 온도가 5℃ 이상 높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약 3억 5890만 년 전 시작된 석탄기 초기인데요. 번성하던 식물이 파묻혀 땅 속에 대규모 석탄층이 만들어진 시기라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석탄기가 지속된 6000만 년 동안 육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대형 양치식물이 지구 전역에 퍼져 번성했습니다. 나무 형태의 식물도 처음 등장했고 키가 20~30m까지 자라 숲을 이뤘습니다. 광합성으로 산소가 많이 만들어졌고 대기 중 산소 비율이 30% 이상으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대형 곤충류가 출현했습니다. 길이가 최대 2.6m에 이르는 절지동물인 아르트로플레우라(지네와 같은 모습), 75cm에 달하는 메가네우라(잠자리와 유사한 곤충)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재보다 온도가 5℃ 이상 높았던 석탄기 초기에는 수분의 증발량도 더 많았고, 대기 중 수분량도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구름, 비 등 다양한 대기활동이 촉진됐고, 이는 다시 생명체 탄생의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2.6m 지네와 75cm 잠자리, 30m 고사리 등 거대한 크기의 생물들이 살았던 석탄기는 그야말로 생명체의 황금기였습니다. 이때와 비슷한 온도의 행성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TIP3. 안전하지 못한 행성은 피하세요


무조건 깨끗한 신축 아파트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역사가 깃든 곳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 법이죠. 행성의 나이도 생명체가 살기 위한 중요한 조건 중 하나입니다. 슐츠-마쿠흐 교수팀은 현재 지구 나이보다 약간 더 오래된 50억~80억 년 사이의 행성이 생명체가 거주하기 적합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지구를 벤치마킹한 뒤 내린 결론입니다. 지구가 태어난 뒤 지적 생명체인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40억 년 이상 걸렸습니다. 대기층 형성 등 다양한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최소한 이 이상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게 과학자들의 추정입니다. 오래된 행성일수록 운석 충돌이나 초신성 폭발 등 큰 우주적 사건을 겪었을 확률이 높은데, 이런 사건은 생명체를 보다 복잡하게 진화시키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오래된 행성도 피해야 합니다. 너무 오래된 행성은 내부 지열이 고갈돼 표면 온도가 낮아지고, 외부로부터 방어막 역할을 하는 자기장이 약해지며 우주 방사선 등에 표면이 노출돼 멸종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행성뿐만 아니라 중심별의 조건도 중요합니다. 태양은 G형 주계열성(별)입니다. 주계열성은 O, B, A, F, G, K, M으로 분류되는데 M형으로 갈수록 질량이 작고 평균 표면 온도가 낮습니다. 지구의 경우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나타나는 데 40억 년이 걸렸는데, 태양보다 무거운 별들은 수명이 이보다 짧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G형 주계열성의 경우 초기에는 빠른 자전 속도(현재 태양의 약 10배)로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고 강한 X선과 자외선을 방출합니다. 말하자면 새집증후군인 셈이죠. 이런 방출선들은 탄소 기반 생화학 반응(DNA 합성 등)에 필요한 분자의 변질과 분해를 유발할 수 있어 생명체의 탄생 및 진화가 어렵습니다(우주적으로 봤을 때 지구는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M형 주계열성의 경우 별이 어둡고 차가워서 생명체 거주가능 지역이 중심별에서 매우 가깝습니다. 이 지역에 위치한 행성은 중심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에너지 입자 활동 및 항성풍의 영향을 더 가까이에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항성과 행성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조석력의 영향이 커져 ‘조석고정’이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행성의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일치하는 조석고정이 발생하면 행성의 한 면은 영원한 낮이, 반대쪽은 영원한 밤이 지속됩니다. 이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구역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K형 주계열성 혹은 질량이 작은 G형 주계열성 중 선택하시면 좋겠습니다.

 

TIP4. 좁은 행성은 살기 힘들어요


누구나 넓고 튼튼한 집에 살고 싶은 것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행성에도 생명체가 거주하기 위한 적절한 크기가 있습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지구보다 1.5~1.6배 무거운 행성이 적합합니다. 행성의 질량이 커지면 중심부에서 방사성 붕괴로 만들어지는 행성 내부의 열이 더 오래 유지됩니다. 방사성 붕괴에 쓰이는 원소도 더 많기 때문이죠. 이런 행성은 행성의 특성이 유지되는 기간이 긴 편입니다. 안정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강한 중력과 자기장으로 두꺼운 대기층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두꺼운 대기층은 비행 생명체가 이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질량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지구형(암석형) 행성이 아닌 목성형(가스형) 행성으로 진화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 질량이 지구의 2배가량 무거우면 해왕성 크기의 가스형 행성으로 진화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행성을 구할 때 달과 같은 위성이 필요한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위성은 있으면 좋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성은 행성 공전궤도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 탄소, 질소와 같은 생명체 탄생의 필수 요소를 행성에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조석 현상으로 해수의 순환, 간석지(갯벌) 형성 등 생물 다양성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하죠.
하지만 위성이 지나치게 크거나 가까우면 위성의 중력으로 인해 행성의 조석고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행성의 지역별 일조량(에너지량)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생명체 존재 구역을 감소시킵니다.


양날의 검이지만, 지구에서는 달이 생명의 탄생과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달의 역할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달과 지구는 1년에 3.8cm씩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덩달아 초기 지구의 행성 거주가능성 지수(Planetary Habitability Index·PHI)는 1.0이었는데 현재 지구의 PHI는 0.96으로 떨어졌죠.


슐츠-마쿠흐 교수팀은 지금껏 알려진 4000여 개의 외계행성 중 생명체 거주 가능성이 있는 24개를 추린 뒤, 위에 제시한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통과한 행성을 선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행성은 없었어요. 다만 KOI 5715.01이 가장 많은 조건을 만족해 MVP(most valuable planet)로 선정됐습니다. 나이가 약 55억 살이고, K형 주계열성 주위를 돌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2965년 가야 하는 먼 거리에 있다는 작은(?) 단점만 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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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기자
  • 사진 및 도움

    정연길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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