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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산술
 


예나 지금이나 소득 계산과 이에 대한 세금 부과는 중요한 사회 문제다. 토지의 정확한 경계는 어디까지고, 그 면적은 얼마나 되며, 이로부터 곡물생산량을 고려할 때 나라가 거둬야할 세금이 얼마이겠는가는 가장 정확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분야였을 것이다.


동양 최고(最古)의 수학서

흔히 수학은 가장 순수하고, 그 실용성이나 응용성에 무관하게 온전히 존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학만큼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학문도 많지 않다. 정보통신과 신용거래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최근에는 암호학이, 대량생산과 최대효율이 지상과제였던 20세기 초중반에는 통계학이, 하늘과 땅의 수많은 운동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미적분학이 그 절정에 있지 않았는가.

고대 사회는 농업 중심 사회였고, 따라서 토지 및 생산물의 정확한 계산과 이에 대한 과세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토지 측량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사업이었으며, 정확한 토지 측량 및 계산법을 위한 지침이 필요했다. 이외에도 부역 징발, 토목공사, 관개수로 사업 등을 할 때에는 복잡한 비율계산이나 방정식,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포함한 삼각방정식, 원주율 계산 등이 필요했다.

동양 최고(最古)의 수학서에 해당하는 ‘구장산술’(九章算術)은 진한시대의 산술서를 계승해서 후한시대가 돼 비로소 본 모습을 갖추게 된 중국의 옛 산술서다. 이 책의 정확한 원저자와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서기 263년 삼국시대 위나라의 유휘(劉徽)가 뛰어난 주석을 붙여 펴낸 것이 전해진다. 1998년 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고전시리즈 사업의 일환으로 이 책의 우리말 번역본을 출간했다(김혜경·윤주영 옮김, 서해문집).

중국에서는 당나라시대에 이르러 수학교육이 제도화됐고, ‘구장산술’을 비롯해 주비산경, 해도산경, 손자산경, 오조산경, 하후양산경, 장구건산경, 오경산술, 철술, 집고산경 등의 수학서가 교과서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중에서도 ‘구장산술’은 그 내용이 풍부하고 수준도 높아서 당나라시대 이전의 가장 대표적인 수학서라 할 수 있다. 보통 산학을 공부하는 데 7년이 소요됐는데, 그 중 ‘구장산술’을 3년에 걸쳐 배우게 돼있었다고 하니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세 관리의 필독서

‘구장산술’은 조세 및 부역 징발이나 관개수로 사업 등을 담당했던 관리들의 필독서로서 실무적인 일을 처리할 때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과 산법(算法)을 집대성해서 정리하고 있다. 문제와 답,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로 이뤄진 이 책은 당시 중국에서 필요했던 산술법을 9가지로 나눠 각각에 대해 한장씩을 할애해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는 농업, 상업, 공업, 측량, 방정식의 해나 직각삼각형의 성질 등에 관한 총 2백46개의 문제가 포함돼 있다. 또 다양하고 실질적인 예제풀이를 통해 계산법의 효과적인 전달을 꽤하고 있다. 여기에 계산식과 해법이 주어져 있긴 하지만, 그러한 식들이 어떻게 도출됐는가에 대한 설명은 나타나 있지 않다.

‘구장산술’ 9개장의 제목과 내용, 그리고 거기에 담겨있는 예제의 수는 다음과 같다.

■ 1장 - 방전(方田) : 방전이란 사각형 모양의 논밭을 뜻한다. 이 장에서는 전답의 넓이와 가로·세로의 길이를 구하는 방법을 다룬다(38문제).
■ 2장 - 속미(粟米) : 속미란 껍질을 벗기기 전의 조를 말한다. 조를 기준으로 한 곡물 교환 문제를 다룬다(46문제).
■ 3장 - 쇠분(衰分) : 쇠분이란 차등을 두면서 비례적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고저의 차이가 있는 급료나 조세 계산법을 다룬다(20문제).
■ 4장 - 소광(少廣) : 넓이와 부피 계산법을 다룬다(24문제).
■ 5장 - 상공(商功) : 토목공사의 공정과 부피에 대한 내용으로서, 원통, 원기둥, 원뿔, 사각뿔, 각뿔대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입방체에 대한 부피를 계산한다(28문제).
■ 6장 - 균륜(均輪) : 백성에 대한 부역을 어떻게 공평하게 부과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으로, 운반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고려해 비용을 동등하게 정하는 계산법을 다룬다(28문제).
■ 7장 - 영부족(盈不足) : 대수적으로 2원 1차 방정식을 푸는 법을 다루며, 과부족의 계산에 대한 내용이다(20문제).
■ 8장 - 방정(方程) : 양수와 음수가 섞여있는 문제를 다루며, 다원 1차 연립방정식 등을 푸는 계산법을 담고 있다(18문제).
■ 9장 - 구고(句股) :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응용해서 나무의 높이를 측정한다든지 산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문제 등을 담고 있다. 직각삼각형의 높이, 길이, 넓이와 거리와의 관계를 다룬다(24문제).

우리나라에서는 ‘구장산술’을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책으로 여겨왔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 때 수학시험을 3일간 보았는데, 첫날에는 구장산술의 제9장 10조를 외우는 구술시험, 둘째날에는 제6장의 일부 암송, 셋째날에는 6문제를 푸는데 4문제를 통과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조선말기 당대 최고의 수학자로 예조판서를 지낸 남병길은 구장산술에 조선의 실정에 맞게 해설을 붙인 ‘구장술해’(九章術解)를 만들어 산술교본으로 활용했다. 구장술해는 모두 9권 2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책머리에 유희의 서문과 말미에 남병길의 발문이 수록돼 있다.

한편 밝혀지지 않은 책의 기원과 원저자, 이론보다는 경험법칙과 예제 중심의 서술방식, 수많은 철학문학서에 비해 매우 드문 자연과학서로서의 대표적 예 등을 보건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에 대해 느껴지는 감정이 그리 흡족하지만은 않다. 왠지 이공계를 기피하는 작금의 사회분위기가 깊은 역사적 자취와 함께 머리 속에 맴도는 까닭이다.


고대 중국 수학의 진가를 보여준 유휘(劉徽)
 

고대 중국 수학의 진가를 보여준 유휘


유휘는 3세기에 활약한 중국의 수학자며, ‘구장산술’ 외에 ‘해도산경’(海島算經)을 저술했다는 점 말고는 거의 알려져 있는 사실이 없다. ‘해도산경’은 구장산술의 9장인 ‘구고’장의 보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계산법의 측면에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다.

‘구장산술’에 대한 그의 주석은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수학자로서의 진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5장 ‘상공’장은 성곽, 담, 도랑, 참호, 여물통, 연못, 원뿔모양의 곡식 쌓기, 원통모양의 창고 등 실생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기하학적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어, 그의 직관적 기하학 방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무한등비급수 개념을 이용해서 원주율 극한값을 계산했으며, 기하학적 원리와 극한을 이용해 여러가지 모양의 넓이와 부피 등을 계산했다. 특히 그는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의 변의 수를 두배씩 늘려가는 방식으로 정다각형의 극한을 이용해 원주율을 계산했는데, 그 결과 π= 3.14$\frac{4}{25}$ 라는 매우 정밀한 값을 얻었다. 후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이를‘휘율’(徽率)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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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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