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충은 크기가 고작 50~200탆인 플랑크톤이다. 키틴질의 투명한 외골격으로 둘러싸인 이 생물은 5억 7000만 년 전부터 바다를 유영해 온 지구의 원주민이다. 길쭉한 것, 뾰족뾰족한 것,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는 외계인의 보석함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묘한 형태의 방산충에서 영감을 받아 ‘방산충’ 연작을 탄생시켰다. 아크릴과 광섬유로 빚어낸 방산충은 내부의 기계장치가 움직임에 따라 촉수를 꿈틀거린다. 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공간을 부유하는 작품은 생물 같다가도, 기계 같다가도, 다시 생물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를 ‘기계의 생물화’라고 표현한다.
아니카 이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이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9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진행된다. 전시 공간 곳곳에서 조용히 숨 쉬는 플라스틱 방산충을 마주치더라도 놀라지 말길. 이번 전시에선 방산충 연작을 비롯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든 형광 미생물이 자라며 빛을 내는 작품 ‘또다른 너’와, 장내 미생물에 의한 신진대사에서 영감을 얻은 ‘공생적인 빵’ 등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