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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 못지않은 녹황색 채소

암 · 비만 · 노화 한번에 잡는다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면서 사람들이 웰빙식(食)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신선한 녹황색 채소일 것이다. “녹황색 채소를 먹으면 젊어지고 오래 산다.” “녹황색 채소가 항암효과도 있고 비만도 예방한다.” 주변에서 쉽게 듣는 말이다. 이제 이는 단순히 전해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선진국에서 이뤄진 연구에 의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매일 우리의 밥상은 무슨 색으로 차려져 있을까?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오래전부터 ‘하루에 5가지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자’는 캠페인을 주도해 식탁에 빨강, 주황, 흰색, 초록, 검푸른색이 포함되는 식사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끼니마다 이 모든 색의 과일이나 채소를 채워 섭취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하나 이상은 꼭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일과 채소의 5가지 색은 빨간색(토마토, 수박, 딸기), 주황색 (당근, 감, 오렌지, 귤, 복숭아), 초록색(오이, 시금치, 근대, 아욱, 깻잎, 브로콜리, 양배추), 흰색(양파, 무, 배, 버섯), 검푸른색(포도, 가지, 블루베리)이다. 이렇듯 색이 있는 식품이 건강에 이롭다. 이 중 녹황색 채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정성이 담뿍 담긴 한정식 차림. 끼니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검푸른색 채소 반찬을 적어도 한가지 이상은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몸에 좋은 자연색소

채소는 신선한 상태로 부식(副食) 또는 간식에 이용되는 초본성 재배식물을 말한다. 채소는 색깔에 따라 시금치, 풋고추, 부추, 쑥갓, 상추, 깻잎, 근대, 아욱, 피망, 늙은 호박, 당근과 같은 녹황색 채소와 무, 양배추, 양파, 양상추, 샐러리와 같은 담색 채소로 나눌 수 있다.

녹황색 채소는 녹색을 내는 자연색소인 클로로필(엽록소)과 황색 자연색소인 카로티노이드가 주요 성분이다. 녹황색 채소에는 비타민C, 비타민A, 식이섬유소, 여러 무기질과 식물화합물이 들어있어 건강에 좋으며, 여러가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 이산화탄소를 녹말(전분)로 바꾼 뒤 자신의 영양분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강한 햇빛은 식물의 산화작용에도 관여해 노화나 암을 유발시키는 활성산소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식물은 햇빛을 이용하면서도 햇빛의 나쁜 영향은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역할을 바로 클로로필이나 카로티노이드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40대 남성 12만2261명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규모의 코호트 연구에 따르면 녹황색 채소를 섭취함으로써 전체적인 암 발생률이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녹황색 채소가 담배로 인한 호흡기 암 발생률도 낮춘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식탁에 놓이는 30여가지 채소는 대부분 항돌연변이, 항암효과를 나타냈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암이 발생하기도 한다. 필자의 연구팀은 살모네라균에 발암물질을 가해 돌연변이가 일어나게 한 다음 채소가 돌연변이 발생을 얼마나 억제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깻잎, 케일, 배추, 양배추, 상추, 갓, 브로콜리, 미나리, 부추, 시금치, 당근, 무청 등이 돌연변이 유발을 크게 억제했다. 뿐만 아니라 인체 암세포를 배양시켜 이 채소류를 처리했을 때도 암세포가 죽는 것이 관찰됐다.
 

채소나 과일에는 건강에 유익한 각종 식물화합물이 들어있다.


암과 노화 막는 식물화합물

녹황색 채소의 어떤 성분들이 이런 효과를 내는 것일까. 녹황색 채소에는 자외선이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식물화합물’(phytochemical)이 미량 들어있다. 식물화합물이란 ‘식물’(phyto=plant)과 ‘화학물질’(chemical)의 합성어이며, 비타민이나 무기질 같은 영양소는 아니지만 건강에 유익한 활성을 갖고 있는 물질이다.

식물화합물은 특히 색을 띠고 있는 채소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본래 식물은 자신의 몸에 외부 침입자가 들어와도 쫓아낼 수가 없다. 그런데 식물화합물을 지닌 식물은 미생물, 해충, 동물 등의 침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식물화합물은 각 식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약효성분이자 면역물질인 것이다. 예를 들면 마늘은 알리신이라는 식물화합물로 강한 냄새를 풍겨 자신을 보호한다. 식물화합물은 암을 포함한 여러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런 효과는 채소들의 색(녹색 또는 황색)이 진할수록 큰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식물화합물의 역할로 알려진 것은 항산화(항노화)작용, 해독작용, 면역기능 증강, 호르몬 역할 조절, 항박테리아나 항바이러스작용 등이다.

주로 녹황색, 오렌지색, 붉은색을 나타내는 색소인 카로티노이드는 대표적인 식물화합물이다. 당근에 들어있는 베타카로틴, 시금치의 루테인, 토마토의 라이코펜 등이 카로티노이드에 속한다. 카로티노이드는 노화의 주범인 산화작용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시각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비타민A로 변하기도 한다. 심장병, 뇌졸중, 시력감퇴, 암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며, 당뇨병 합병증을 감소시킨다고도 알려져 있다.

플라보노이드는 주로 사과, 양파, 감귤류에 함유돼 있는 식물화합물로 포도나 포도주에 들어있는 레스베라트롤, 블루베리나 머루의 안토시아닌, 양파나 마늘의 퀄세틴 등이 이에 속한다. 플라보노이드는 항산화작용을 하는데, 혈관 벽에 달라붙은 이물질이 굳어 혈관이 좁아지는 것을 막아주고, 몸속의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콜레스테롤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킨다. 또 DNA 손상을 줄이고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나타낸다.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이소플라본은 주로 콩에 존재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구조와 생물학적 작용이 비슷해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라고도 불린다. 이소플라본은 여성호르몬과 관련된 질병인 유방암 예방에 효과가 있고, 폐경기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완화시키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거나 심혈관계 질환과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입증됐다. 콩에 다량 함유돼 있는 제니스테인, 다이드제인이 이소플라본에 속한다.

또다른 식물화합물 중 하나가 바로 페놀화합물이다. 주로 포도, 카레, 차 잎 등에 함유돼 있다. 카레에 들어있는 커큐민, 녹차의 카테킨, 채소나 감귤류의 쿠마린 등이 이에 속한다. 페놀화합물은 항산화작용과 항암효과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심장병의 위험을 감소시킨다.
 

세계 각국의 영양학자들은 채소와 발효식품이 최고의 건강식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녹황색 채소에 갖은 양념을 넣고 발효시킨 김치다.


지방의 천적 배추와 무

신선한 녹황색 채소류에 다량 함유돼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도 식물화합물로 빼놓을 수 없다. 비타민C는 동맥경화 위험을 줄인다. 특히 흡연자의 경우 체내 조직이나 세포를 공격해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가 증가하므로 이에 대항하기 위해 비흡연자보다 비타민C를 더 많이 섭취해야 한다. 토코페롤이라고 불리는 비타민E는 식물성기름, 과일과 녹황색 채소에 많이 함유돼 있는 성분으로 항산화작용을 하고 심장병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황색 채소 중 십자화과 채소인 케일과 브로콜리는 항암효과가 아주 높다. 십자화과 채소에는 식이섬유소, 식물화합물인 카로티노이드, 클로로필, 비타민C, 비타민E, 비타민K, 스테롤화합물이 함유돼 있다. 특히 글루코스이놀레이트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는 가수분해돼 생리활성이 높은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글루코스이놀레이트가 가수분해돼 생기는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글루코스이놀레이트의 일종인 글루코브라사이신이 가수분해돼 생기는 인돌-3-카르비놀, 페놀화합물의 일종인 에러직산 같은 십자화과 채소의 식물화합물은 암의 진행을 저해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브로콜리에 들어있는 식물화합물인 설파라판은 간에서 발암물질을 제거하는 효소를 활성화시켜 발암물질이 들어와도 간에서 분해, 제거될 수 있게 한다. 들깻잎에 존재하는 파이톨이란 식물화합물은 암세포만 찾아 제거하는 자연살해세포의 활성을 높이고 병원성 균을 먹어치우는 대식세포 기능을 활성화시켜 우리 몸의 면역기능을 강화시킨다.

배추에 존재하는 베타-시토스테롤은 암세포가 자살하도록 유도하거나 암세포의 세포분열을 멈추게 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보인다. 베타-시토스테롤과 무에 들어있는 캠페롤은 비만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 고지방 먹이를 준 실험쥐나 지방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 이들 성분이 지방세포 내에 있는 지방을 분해했고, 지방세포가 만들어내는 렙틴 단백질도 감소시켰다.

이밖에도 건조한 채소의 20-40%를 구성하는 식이섬유소(셀룰로오스)도 식물화합물에 속한다. 식이섬유소는 잘 알려져 있듯이 대장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며, 소화를 돕는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출 뿐만 아니라 항암과 항비만 효과를 나타낸다는 보고도 많다.

자연산 채소 몸에 좋은 이유

이처럼 몸에 좋은 식물화합물들은 인공 재배한 야채보다 자연산 야채에 더 많이 함유돼 있다. 사람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재배된 야채와 달리 자연산 야채가 식물화합물을 무기로 만들어 스스로 해충을 비롯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발암물질을 가한 미생물에 일반 배추와 유기농 배추로 담은 김치를 넣어 각 김치가 유전자 돌연변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봤다. 그 결과 유기농 배추로 담근 김치의 돌연변이 억제 효과가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일반 케일보다 유기농 케일이 식이섬유소나 비타민C, 카로티노이드, 클로로필 함량이 높았고, 인체 위암세포에 넣었을 때 유기농 케일이 더 많은 위암세포를 죽게 했다.

녹황색 채소에는 다른 음식을 통한 식생활에서 부족하기 쉬운 엽산이나 셀레늄 같은 무기질도 함유돼 있다. 엽산이나 셀레늄이 항암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또 녹황색 채소에는 칼슘과 칼륨 같은 염기성 이온이 많다. 곡류, 생선류, 고기류 등이 산성 식품인데 비해 채소는 대부분이 알칼리성 식품이므로 충분한 양의 녹황색 채소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채소는 종류에 따라 독특한 맛과 향기가 있어 식욕을 증진시키는데도 한몫 한다.

이렇게 몸에 좋은 녹황색 채소를 자주 먹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값비싼 보약 한재보다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최고 건강식품은 상추쌈과 김치

녹황색 채소가 주원료인 김치는 이제 세계인의 식품으로 대두되고 있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 같은 양념을 넣고 발효과정을 거쳐 생성된 유산균, 여러 재료에서 유래된 식물화합물 등은 항산화(항노화)작용이 있어 장수에 좋다. 또한 암 예방, 항암, 면역증강, 동맥경화 예방, 피부 노화 억제, 비만 억제 효과도 밝혀졌다. 김치에는 1ml 당 유산균이 1억 마리나 들어있어 변비와 대장암 예방, 정장작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다른 발효식품인 된장은 콩을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과정에서 콩의 제니스틴이 제네스테인(식물성 여성호르몬)으로 바뀌어 발효 전의 콩보다 건강기능성을 높이고, 맛과 저장성도 증가시킨다. 된장은 항암효과가 있는데, 특히 검은색소인 안토시아닌이 있는 검은콩을 메주로 하고 전통 소금인 죽염을 첨가하면 항암효과가 더 증가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연구에서 된장이 체중을 상당히 감량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는 청국장이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연구실에서 실험쥐를 이용해 된장, 청국장, 고추장, 쌈장의 다이어트 효과를 측정한 결과 된장이 가장 뛰어났다. 고지방 먹이를 된장과 함께 섭취한 쥐가 일반 먹이를 섭취한 정상 쥐와 비슷한 몸무게를 나타낸 것. 그 다음이 된장과 고추장을 혼합한 쌈장, 그리고 고추장, 청국장 순이었다. 쌈장은 된장과 고추장을 2:1로 섞고, 양파, 마늘, 깨, 참기름, 쪽파 등을 첨가해 맛을 낸다. 녹황색 채소에 밥을 얹고 쌈장을 찍어 넣어 싸 먹으면 가장 건강에 좋은 음식인 셈.

얼마 전 필자는 아시아 영양학자들이 모인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공식행사를 마친 뒤 학자들은 ‘21세기의 건강식품은 무엇일까’라는 주제를 의논한 끝에 채소와 콩, 발효식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김치와 된장은 채소와 콩을 이용한 발효식품으로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우리는 행복하게도 이 같은 건강식품을 이미 옛부터 먹어왔던 것이다.
 

상추나 깻잎에 밥과 쌈장을 얹어 싸 먹으면 항암과 다이어트 효과를 한번에 얻을 수 있다.


당근 항암효과의 주역, 팔카리놀

지난 2월 9일 영국 BBC뉴스 인터넷판은 당근이 암 발병률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영국 뉴캐슬 어폰 타인대, 서던 덴마크대, 덴마크 농학연구소 연구팀은 암으로 진행되기 직전의 종양을 가진 생쥐 24마리를 두 그룹으로 나눴다. 첫번째 그룹은 보통 먹이만 먹이고, 두번째 그룹은 보통 먹이와 함께 당근에 들어있는 팔카리놀 성분을 먹였다. 18주 후 연구팀은 팔카리놀 성분을 함께 먹인 그룹이 보통 먹이만 먹인 그룹에 비해 암 발병률이 3분의 1이나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미 알려져 있던 당근의 항암효과가 팔카리놀 성분과 관계 있다는 게 밝혀진 것. 팔카리놀은 당근이 검은 반점이 생기는 곰팡이병에 걸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천연 살충성분이다. 팔카리놀에는 독성이 있긴 하지만, 한꺼번에 당근 400kg을 먹어야 치사량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팔카리놀이 인체가 암과 싸우는 메커니즘을 강화시켜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커스텐 브란트 박사는 “항암효과에 팔카리놀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느 품종의 당근이 항암효과가 더 큰지를 알아낼 계획”이라며 “다른 채소로도 연구를 확대하면 어떤 채소를 얼마만큼씩 먹으면 좋다는 지침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농업·식품화학저널’ 최신호에 실렸다.

잠깐! 건강 Tip

녹즙을 갈 때 맛을 순화하려고 넣는 당근이 비타민C(아스코르빈산)를 파괴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 실제로 당근은 비타민C 파괴와 상관이 없다. 녹즙의 비타민C가 당근과 만나면 디하이드로아스코르빈산으로 바뀌지만 섭취 후 장내에서 다시 아스코르빈산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코호트 연구 | 특정한 위험요소를 갖고 있는 집단을 계속 지켜보면서 그 위험요소가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알아보는 연구. 이 연구가 의미가 있으려면 연구할 집단의 규모가 커야 하고, 집단에 속한 각 대상을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렙틴 | 지방세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 비만 정도가 심할수록 혈액 중 렙틴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비만 단백질’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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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건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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