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영화 ‘에일리언 2’에는 주인공 시고니 위버가 로봇 안에 들어가 거대한 집게 팔로 외계생명체를 한방에 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시고니 위버가 조종하는 장치는 인간과 로봇이 한몸이 된 ‘입는 로봇’(wearable robot) 또는 ‘로봇 외골격’(robot exoskeleton)의 한 형태다. 최근 미국과 일본은 영화의 상상력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
짐까지 82kg, 실감 중량은 2kg 불과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지난 3월 9일 사람 다리의 외골격 기능을 할 수 있는 이른바 ‘버클리 다리 골격’(BLEEX, Berkeley Lower Extremities Exoskeleton)이라는 로봇다리를 발표했다. 로봇다리는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첨단연구기획청(DARPA)의 지원을 받아 개발된 것으로 이날부터 11일까지 열린 DARPA의 기술 심포지엄에서 소개됐다.
로봇다리는 소아마비 환자들이 다리에 장착하는 보행보조기와 같은 형태다. 금속재질의 로봇다리는 배낭받침대와 연결돼 있는데, 배낭 안에는 로봇다리를 움직이는 동력장치와 컴퓨터가 들어있다. 배낭의 여유 공간에는 상당한 무게의 짐을 담을 수 있다. 로봇다리를 장착한 사람은 다리 무게 50kg에 배낭에 실은 32kg의 짐까지 모두 82kg을 몸에 실은 상태지만, 실제로 느끼는 중량은 2kg에 불과하다.
로봇다리를 개발한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는 “로봇다리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장치를 움직이기 위한 조이스틱이나 키보드 또는 버튼이 전혀 필요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로봇다리를 움직이려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자신의 다리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연구진은 로봇다리를 장착한 상태에서 방안에서 8자를 그리는 자연스러운 보행이 가능했다고 소개했다.
기술의 핵심은 배낭에 든 컴퓨터와, 사람의 다리가 움직이는 형태를 감지하는 40개의 센서에 있다. 신발 바닥 등에 들어있는 센서들은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해 배낭에 든 컴퓨터에 전달하는데, 컴퓨터는 이를 바탕으로 다리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를 계산해낸다. 로봇다리는 컴퓨터의 명령을 받은 유압 모터의 힘으로 움직인다. 로봇다리는 무게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때문에 사람이 로봇다리의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늘을 나는 로보캅
DARPA는 2001년 5천만달러를 들여 보병의 이동속도와 힘, 지구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동력 외골격장치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로봇다리는 그 일환으로 개발된 것이다.
연구팀은 로봇다리의 쓰임새가 다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거운 소화 장비를 지고 빌딩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하고 때로는 정신을 잃은 사람을 짊어지고 나와야 하는 소방 구조대원들도 병사들만큼이나 로봇다리를 반길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걷는데 응용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로봇다리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동력원의 소음은 줄이고 파워는 늘리며 기계장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촉매와 바로 반응하는 수소를 연료로 이용하면 연소과정이 필요 없어 유압 모터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고 소음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배낭에 담을 수 있는 짐의 무게도 현재의 두배인 60kg까지 가능하다는 것.
만화에서 먼저 선을 보인 입는 로봇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1965년의 일이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유압 모터와 전기로 작동되는 로봇팔을 만들었다. ‘골리아스’란 이름의 이 로봇팔은 시고니 위버가 영화에서 움직인 것과 흡사한 형태로 사람의 힘으로 냉장고를 번쩍 들 수 있었다.
DARPA의 지원을 받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도 1999년 로봇팔을 개발했는데, 2천2백kg의 폭탄을 들어올릴 때 사람이 느끼는 무게는 단 4kg이었다. 미 국방성은 로봇다리, 로봇팔과 전투기조종사의 헬멧처럼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전투모 등을 결합시켜 명실공히 터미네이터 병사를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2001년 역시 DARPA의 지원을 받아 밀레니엄제트사가 개발한 외골격 비행체 솔로트렉(Solotrek)을 더하면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효과를 낼 전망이다. 솔로트렉은 최고 8천m까지 상승이 가능하며, 시속 1백30km로 2백km를 날아갈 수 있다.
실버시대 겨냥한 간호로봇
일본은 미국과 달리 입는 로봇을 환자나 장애인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발표된 HAL-3. ‘인체결합 보조다리’(Hybrid Assistive Leg)란 뜻의 HAL은 버클리 다리 골격과 마찬가지로 다리에 장착하는 로봇다리다.
쓰쿠바대 요시유키 산카이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된 이 다리는 배낭에 들어있는 컴퓨터의 명령을 받아 무릎과 엉덩이 근처의 모터가 작동하면서 움직인다. 인체의 움직임은 근육의 전기신호와 관절의 각도변화를 센서가 감지함으로써 파악된다. 실험결과 17kg의 HAL을 장착한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시속 4km로 걸을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속도는 보병의 평균 행군속도다.
쓰쿠바대의 로봇다리는 올해 시판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산카이 교수는 미쓰이상사 등 31개사와 설립한 조인트 벤처를 통해 2004년에 HAL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시점은 올해 4월에서 5월 사이로 10개의 시제품을 일본이나 해외의 병원, 재활기관에 판매 또는 대여한다는 계획이다. 예상가격은 1백만엔. 조인트 벤처는 내년부터는 한해에 1백대의 HAL을 판매한다는 중기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된 또다른 입는 로봇은 일본 카나가와 공대에서 개발한 ‘근력 보조 슈트’(wearable power assisting suit).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3년의 가장 쿨한(coolest) 발명품’의 하나로 선정한 근력 보조 슈트는 로봇 모양의 팔과 허리, 다리로 구성돼 있다. 실험 결과 20kg무게의 근력 보조 슈트를 입은 45kg의 여성이 68kg의 남성을 쉽게 들어올릴 수 있었다.
로봇 슈트의 원리는 버클리 다리 골격이나 HAL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팔과 무릎, 엉덩이 윗부분에 닿는 근육강도 측정센서가 힘을 내는 근육을 감지한 다음 이를 마이크로 컴퓨터로 보내면, 휴대용 니켈-카드뮴 배터리로 작동하는 공기펌프가 풀무 모양의 장치를 부풀린다. 이에 따라 근육이 사용되는 부분의 소형 모터가 작동되면서 로봇 장치를 움직이게 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전체 인구의 18.8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노년층의 신체활동을 돕는 입는 로봇의 수요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HAL을 개발한 산카이 교수는 “이미 장애인용 로봇팔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궁극적으로 옷 안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장비를 얇게 만들어 실제 손과 별 차이가 없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봇기술이 무쇠팔, 무쇠주먹을 갖춘 군인을 탄생시킬지,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킬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