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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지방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의 살은 지방뿐만 아니라 피부와 뼈 사이에 있는 모든 연조직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65%를 차지하는 연조직은 지방, 근육, 근막, 힘줄(tendon), 인대(ligament), 관절낭(articular capsule) 등을 포함하며, 더 넓은 범위에서는 이러한 조직을 유지하고 조절하는 혈관과 림프, 신경도 포함된다. 


살이 찌고 빠지는 일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생물학적 분자가 변해야 하는 극적인 일인 셈이다. 
그리고 생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유전자가 사실은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다.

 

살을 구성하는 연조직의 물렁물렁한 특성은 탄력적인 지방의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세포와 세포 사이의 틈을 메워주는 물질인 세포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세포외 기질은 섬유아세포*(fibroblast)에서 합성돼 분비되는 콜라겐이나 엘라스틴, 무형질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중에서 무형질은 매우 높은 농도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조직에는 지방과 근육이 있고, 이들이 전체의 약 90%를 차지한다. 생김새나 색깔로 볼 때 전혀 비슷한 부분이 없는 두 연조직은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우리 몸이 활동할 에너지를 조절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이들 두 기관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스테롤조절인자 결합 단백질이 지방세포 키워


우리 몸의 지방 조직은 백색 지방과 갈색 지방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의 지방 조직은 백색 지방 조직이며, 위치에 따라 피부밑에 있는 피하 지방(subcutaneous fat), 내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내장 지방(visceral fat), 골수 안의 지방(yellow bone marrow fat), 근육 사이의 지방(intermuscular fat), 유방 안의 지방(breast fat) 등의 조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백색 지방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약 85%는 백색 지방세포다. 나머지는 전지방세포(preadipocyte), 섬유아세포, 대식세포, 내피세포 등이다. 백색 지방 조직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장 높은 영양소인 지방을 저장하는 것이며, 체내 지방의 약 90%가 이 지방 조직 안에 존재한다. 


백색 지방세포는 여러 지질 성분 중 중성지방(triglyceride)의 형태로 지방을 저장하며, 저장 과정은 이자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의해서 촉진된다. 인슐린이 지방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인슐린 수용체에 결합하면 세포 내 신호 전달 경로가 활성화된다. 이에 따라 혈중 포도당과 지방산의 세포 내 흡수가 유도되는데, 이때 스테롤조절인자 결합 단백질(SREBP·sterol regulatory-element binding protein)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이 유전자가 발현돼 만들어진 SREBP는 다른 유전자들을 활성화하는 전사 인자의 일종으로 지방세포를 키우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SREBP는 세포핵으로 들어갈 경우 스테롤조절인자라고 불리는 DNA 부위에 결합해 ‘베타 하이드록시 베타 메틸글루타릴-코에이 환원효소(HMG-CoA)’ ‘저밀도 지단백 수용체’ 등 지방 합성에 관여하는 주요 유전자들이 발현되도록 촉진한다. 그 결과 지방세포가 비대해지고 결국 몸에 살이 붙게 된다. 


한편 갈색 지방 조직은 어깨뼈 사이나 빗장뼈 위, 콩팥 주변 등에 주로 존재하는데, 갈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지방세포 내에 미토콘드리아가 매우 풍부하기 때문이다. 갈색 지방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는 백색 지방세포에는 없는 짝풀림 단백질(uncoupling protein)이 있다. 


이 독특한 단백질 덕분에 에너지 저장 임무를 맡은 백색 지방세포와는 달리 갈색 지방세포는 에너지를 사용해 열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흔히 백색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지방, 갈색 지방은 에너지를 연소하는 지방으로 부른다.

 

 

아디포넥틴, 페리리핀…지방세포 수 늘려


지방세포의 수는 성인 남성의 경우 100억~300억 개다. 반면 비만인 사람은 지방세포 수가 약 1000억 개로 늘어나 있다. 지방세포 수는 전지방세포가 지방세포로 분화되는 과정인 지방세포 형성(adipogenesis) 경로를 통해 조절되는데, 따지고보면 이 역시 유전자가 좌지우지한다.

 
지방세포 형성은 인슐린을 비롯한 다양한 성장 인자와 세포 내 신호 전달 시스템의 일종인 JAK2-STAT3 경로에 의해서 시작된다. 이 경로에서 핵심이 되는 유전자는 과산화소체 증식-활성화 수용체감마(PPARγ)란 이름을 가진 전사 인자인데, 이 전사 인자는 지방세포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중요한 아디포넥틴(adiponectin)*, 페리리핀(perilipin)* 등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지방세포의 수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약 30억 개의 지방세포가 추가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doi: 10.1073/pnas.1005259107


식사 후 약 1시간 뒤부터 혈중 인슐린 농도가 감소하거나, 특히 운동 등 신체 활동으로 에피네프린(epinephrine)과 같은 카테콜아민(catecholamine) 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높아지면 지방세포에서는 지방 분해 과정이 일어나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한다. 


에피네프린이 지방세포의 세포막 수용체에 결합하면 단백질 인산화효소 A(PKA)가 활성화된다. 그 결과 호르몬 민감 지질분해효소(HSL)와 중성지방 가수분해 효소(ATGL)가 활성화되고, 저장된 중성지방을 유리(free) 지방산과 글리세롤(glycerol)로 분해해 혈관으로 내보낸다. 이런 지방 분해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지방세포의 크기가 감소하고 살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분비된 유리 지방산은 간과 근육에서 흡수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글리세롤은 간에서 포도당(glucose)으로 재합성되는 과정을 거쳐 뇌와 근육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이외에도 피하 지방을 채우고 있는 백색 지방 조직은 건물에 쓰이는 단열재처럼 열전도율이 낮아 외부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더라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지방은 탄성을 가지고 있어서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내장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단백질 생성 촉진 유전자는 근섬유 키워


우리 몸의 근육 조직은 크게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의근과 대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운동하는 불수의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례로 뼈와 힘줄 사이에서 우리 몸의 운동과 자세를 조절하는 골격근은 수의근이며, 내부 장기를 둘러싸며 각 장기의 수축과 이완을 스스로 조절하는 평활근은 불수의근이다. 심장을 움직이는 심근은 불수의근이지만, 예외적으로 수의근의 일종인 골격근의 구조와 특성도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의 근육 조직은 끊임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사용한다. 체중 70kg인 성인 남성이 휴식 상태에서 하루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을 계산해 보면, 지방 조직(15kg)에서는 약 60kcal를 소비하고 골격근(28kg)에서는 약 360kcal를 소비한다. 지방은 1kg당 4kcal를 쓰는 반면 골격근은 약 12.86kcal를 쓰는 셈이다. 


이처럼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근육 조직은 평상시에는 지방과 간에서 분비한 유리 지방산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운동할 때는 유리 지방산과 혈중 포도당의 흡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근육 내에 저장해 놓은 글리코겐을 분해해 근섬유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근육 조직은 수많은 근섬유로 구성된다. 우리가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거나 운동을 하면 간에서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 1(IGF-1)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근육 세포 내 단백질 합성에 관여하는 신호 전달 경로(PI3K-Akt-mTOR)를 활성화킨다. 또 ‘70 kDa 리보솜 S6 인산화 효소(p70-S6 kinase)’ ‘진핵생물 번역 개시 인자 4E(eIF4E)’ 등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 발현을 증가시킨다. 그 결과 근섬유가 비대해진다. 


이처럼 우리 몸은 다양한 유전자들의 정교한 상호작용을 통해 음식물에서 섭취한 에너지와 체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균형을 조화롭게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은 단순히 체형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중요한 생물학적 기관을 통칭하는 셈이다.

 

식탐 유발 유전자 ‘MC4R’


체내 에너지의 균형이 심리적·환경적·유전적 요인 등으로 깨져 에너지의 저장과 소비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하면 살이 과도하게 많아지거나 줄어들면서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잦은 야식, 고칼로리 식단, 운동 부족 등 생활 습관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보다 흡수 및 저장되는 에너지의 양이 많아지는 것이 비만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비만을 독립적인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한다. 현재 전 세계 성인의 약 40%는 과체중, 약 15%는 질병 수준의 비만으로 집계되고 있다. 고탄수화물이나 고지방 식사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우선 간에서 과도한 지방 합성이 일어나고 이는 다량의 초저밀도 지단백질(VLDL) 분비로 이어진다. 


초저밀도 지단백질은 백색 지방과 근육 조직 주변의 혈관 내벽에 있는 지질분해효소(lipase)에 의해서 유리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돼 지방세포와 근육세포 내로 흡수된다. 흡수된 다량의 유리 지방산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중성지방이 돼 비만이 된다. 


차세대 시퀀싱 기술로 지금까지 밝혀진 비만 관련 유전자는 50여 개다. 필자도 차세대 시퀀싱 기술을 이용해 이민구 연세대 의대 교수팀과 함께 세포 내 소기관인 골지체의 단백질을 만드는 GRASP55 유전자가 소장에서 지방 흡수 과정을 조절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올해 3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GRASP55 유전자를 없앤 쥐는 지방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체지방량이 감소했다. doi: 10.1038/s41467-020-14912-x 
지금까지 밝혀진 비만 관련 유전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유전자는 ‘지방 질량 및 비만 연관(FTO)’ 유전자와 ‘멜라노코르틴(MC)4 수용체’ 유전자다. 


FTO 유전자는 시상하부에서 발현되며 전령RNA(mRNA)를 탈메틸화시키는 효소를 발현시킬 정보를 가지고 있다. 대규모 유전자 연구를 통해서 FTO에 변이가 발생하면 식욕이 증가하고 포만감은 감소하며 지방세포에서 에너지 소모비율은 줄어들어 비만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MC4 수용체 유전자는 ‘식탐 유발 유전자’라고 불리는데, 시상하부에서 알파 멜라노사이트 자극 호르몬(α-MSH)과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을 발현시킨다. MC4 수용체에 변이가 생기면 충동적으로 식욕이 증가한다.


그렇다면 비만은 우리 몸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 걸까. 우리 몸에 과도한 양의 지방이 축적되면 에너지 불균형의 악순환이 시작되는데,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슐린 저항성과 렙틴 저항성이다. 


인슐린 저항성은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인슐린의 작용이 저해된 병적 상태다. 남는 지방을 인슐린이 분비돼 흡수하지만, 들어오는 지방의 양이 많아 인슐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으로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지방세포에서 분비돼 식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신호체계에 이상이 생길 경우 비정상적인 허기를 일으켜 비만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살이 늘어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설명했지만 살이 극도로 줄어드는 현상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중요한 점은 살을 적절하게 유지해 생물학적 항상성을 스스로 지켜가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비만을 일으키는 유전자 연구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용어정리 

섬유아세포: 섬유성 결합조직의 중요한 성분을 이루는 세포. 주로 세포외기질과 콜라겐을 합성한다.

아디포넥틴: 지방 조직(adipose tissue)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으로 22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졌다. 지방산과 탄수화물 등의 대사 과정에 관여한다.

페리리핀: 소지방체 구조를 이루는 단백질 중 하나로, 중성지방과 스테롤이 저장되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단백질이다.

카테콜아민 호르몬: 도파민과 에피네프린 등이 해당된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이로신(티로신)으로부터 생합성되며, 체내 혈압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차세대 시퀀싱: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 중 하나다. 수백 만 개의 DNA 염기서열 정보를 병렬적으로 처리해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

 

※필자소개 

김지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소화기 약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 의대 약리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유전자 관점에서 위와 소장, 대장과 같은 소화기 계통에서 발생하는 질환들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jykim@catholic.ac.kr

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지윤 가톨릭대 의대 교수
  • 에디터

    김진호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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