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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빠지는 화학반응이 있을까?

 

광합성이 가능한 식물과는 달리,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동식물을 섭취해서 확보된 영양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이 과정은 체내의 다양한 생체 분자들과 영양소간의 화학반응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살도 생긴다. 살이 찌고 빠지는 현상이 화학적으로는 결국 음식 속 영양소들이 한데 섞여 만들어 내는 화학반응의 소용돌이인 셈이다. 살에 대한 화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인간은 음식물을 섭취한 뒤 체내 대사 과정을 통해 생명의 유지와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도 이상의 에너지를 확보한다. 음식물은 수많은 화학물질(영양소)로 이뤄져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소와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관점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합성된 여러 화학물질을 먹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표현 대신 ‘화학물질을 먹는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자들의 화학 결합을 통해 형성된 화학물질들이 체내에 들어가 생체 독성을 일으키지 않고 제각기 유용한 특성과 기능을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화학물질을 먹는다’는 표현은 가장 과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화학물질들이 몸에 들어가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즉 화학물질들이 변하는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이를 촉발하기 위한 임계점에 해당하는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 보편적으로 정상 체온인 36.5도 내외에서 이런 과정이 자발적으로 수행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단적인 예로 생체 분자인 아데노신일인산(AMP)에서 뉴클레오시드가 분해되는 반응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는 체내에서 반감기가 약 6만9000년이다. 아무런 작용을 가하지 않으면 아데노신일인산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약 6만9000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어떻게 화학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걸까. 그것도 수명이 한정된 생명체에서 말이다. 게다가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속도도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인체는 촉매 역할을 하는 여러 효소(enzyme)들과 다양한 생화학반응을 만들어 낸다. 가령 아데노신일인산의 너무나 느린 반응 속도는 촉매의 개입을 통해 약 6조 배 이상 빨라진다. 
살과 관련지어 보면, 인체에서 일어나는 영양소의 소화와 대사는 산화 반응으로, 영양소의 저장은 일종의 환원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산화와 환원 반응 역시 다양한 생체 효소와 화학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철저하고 체계적이면서도 재빨리 진행된다.
 


지방 I  글리세롤과 지방산의 가수분해


음식 속 영양소는 크게 6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체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신체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원재료인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있다. 이들은 ‘다량영양소’에 해당한다. 그리고 신체 작용과 기능을 유지하는 무기질과 비타민, 물이 있다. 이들은 ‘미량영양소’로 불린다. 


여기서 에너지 생성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다량영양소다. 화학적으로 볼 때 흔히 ‘살이 찐다’ 또는 ‘살이 빠진다’는 표현과 관련된 성분은 대부분 다량영양소다. 반면 미량영양소는 인체의 기능 조절에 주로 사용되는 만큼 이들을 과량 섭취해도 인체가 쓰고 남은 양은 자연스럽게 체외로 배출된다. 다만 금속성 무기질의 경우 과량 섭취 시 결석(calculus·몸 안의 장기 속에 생기는 단단한 물질)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체가 화학반응을 통해 다량영양소를 분해한 뒤 남은 에너지는 인체 각 부위에 저장되며, 이게 흔히 말하는 살이다. 살은 뼈를 제외한 모든 연조직이며 지방세포, 피부세포, 근육세포 등으로 이뤄진 조직을 통칭한다. 여기서 살이 찌거나 빠지는 것과 관련된 성분은 다량영양소 중에서도 지방이다. 


지방은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열량을 보유한 고에너지 화학물질이다. 지방은 주로 중성지방(triglyceride) 형태 등으로 체내에 들어온다. 체내에 들어온 중성지방은 지방 분해(lipolysis) 과정을 거쳐 하나의 글리세롤(glycerol)과 세 개의 지방산(fatty acid)으로 나뉘고 이때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들은 각각 에스터 결합(-COO-)으로 연결돼 있어, 에피네프린 등 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지방 분해 효소(lipase)가 작용하면 쉽게 가수분해된다. 


여기서 추가적인 산화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때 글리세롤은 세포의 에너지원인 아데노신삼인산(ATP)의 기본 재료가 되는 아세틸보효소A(acetyl CoA)로 전환되고, 가장 마지막 단계는 시트르산 회로(TCA 회로)를 통한 환원 반응이 일어나면서 ATP가 생성된다. 


결국 지방이 인체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인 ATP로 바뀌는 과정은 효소의 도움을 받는 화학반응이다. 참고로, 아세틸보효소A는 화합물의 구조상 에너지 보유량이 많아 지방뿐만 아니라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대사 과정에서도 중요한 중간물질로 등장한다. 


체내에서 지방은 신체 구성에 필요한 콜레스테롤이나 스테로이드 계열 호르몬을 형성하고, 신체 내 세포의 겉껍질인 세포막을 구성하며, 다양한 지용성 비타민 등 필수 물질의 흡수를 돕는다. 따라서 일정량을 섭취하는 게 필수다. 


살이 찌지 않기 위해서는 화학적으로는 중성지방이 체내에 들어오지 않게 하거나(지방 섭취를 줄이거나) 혹은 글리세롤과 지방산으로 분해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소모해야만 한다.

 

탄수화물 I 글루코스-6-인산의 결과물


한국인에게 쌀을 포함한 곡물은 주요한 에너지 섭취원이다. 최근 유행하는 식이요법인 ‘저탄고지(Low Carb High Fat·단백질과 지방을 주로 먹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식사법)’ 식단을 선호하는 사람도 최소한의 탄수화물은 섭취해야 한다. 뇌가 주로 쓰는 에너지원이 탄수화물의 대사물질인 포도당이기 때문이다. 


지방과 마찬가지로 탄수화물도 산화와 환원 반응을 통해 에너지로 전환된다. 곡물에 포함된 탄수화물은 단당류인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 이당류인 유당(galactose) 등의 형태로 체내로 섭취된다. 이들은 아밀레이스와 같은 소화 효소의 작용으로 잘게 분해돼 글루코스-6-인산(glucose-6-phosphate)이라는 당질 대사의 중간 생성물로 바뀐다. 


탄수화물 대사에서는 글루코스-6-인산이 매우 중요하다. 글루코스-6-인산이 본격적인 에너지 생성과 저장의 시작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해당과정(glycolysis) 반응을 거치면서 피루브산(pyruvic acid)이 생성되고, 피루브산은 아세틸보효소A라는 유기황화합물(thiol·싸이올)과 아세틸(CH3COO-)이 화학 결합한 고에너지 화합물이 된다. 


이후 아세틸보효소A는 시트르산 회로를 통해 인체가 가장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에너지 물질인 ATP를 합성하는 데 활용되며, ATP는 효소 반응을 비롯한 생체 조절 반응, 근육 활동 등 대부분의 에너지 활용 과정에서 연료로 이용된다. 


합성된 ATP는 근육 세포, 신경전달물질, 혈액 등 신체 여러 부분에 저장되는데, 거의 모든 종류의 신체활동에 연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고갈되며,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재충전된다. 


인체는 안전장치로서 근육을 비롯한 체세포 곳곳에 ATP를 저장하며, 우리가 운동이나 활동을 지속할 때 이를 소비한다. ATP 관점에서 살을 해석하면 인체는 체내에 저장된 ATP를 먼저 사용하며, ATP가 부족한 경우 추가로 살을 조금씩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쓴다. 


만약 신체활동이 적어 ATP를 대량으로 생성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체내 ATP 저장 한계를 넘어설 만큼 음식물을 섭취하면 우리 몸은 인슐린을 분비해 글루코스-6-인산을 무려 6만 개의 포도당이 연결된 화합물인 글리코겐으로 변환시키고 이를 간에 저장한다. 그리고 간의 글리코겐 저장 한계마저 넘는 경우에는 지방으로 변환된다. 지방간과 같은 질환도 화학적으로는 글리코겐 과다 생성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단백질 I 요소 회로 거쳐 ATP 생성

 

이제 다량영양소 중에는 단백질만 남았다. 단백질은 약 20종의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종류와 기능이 달라진다. 이 중 9종에 해당하는 필수 아미노산은 체내에서 자체적으로 합성할 수 없어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단순히 계산해 보면, 가령 3개의 아미노산만 조합해도 이론적으로는 8000가지의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수백~수천 개의 아미노산의 집약체인 단백질은 엄청난 다양성을 가진다. 


모든 아미노산은 분자의 화학 구조상 기본적으로 질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탄수화물과 마찬가지로 대사 과정을 통해 피루브산으로 전환돼 ATP 합성에 쓰이거나, 근육을 비롯한 신체조직을 형성하는 단백질로 재활용된다.

 
차이점이라면 단백질은 탄수화물이나 지방과 달리 신체를 구성하고 운동을 제어하는 근조직 형성에 직접적인 재료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성장기 청소년이나 근육 성장을 목표로 운동하는 경우 다량의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라고 권장한다. 


근육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흔히 우유(유청, 카제인)나 콩에서 추출한 특정 아미노산(류신, 아이소류신, 발린, 아르기닌 등)을 보충제로 섭취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 화학물질이 빠르고 저렴하게 양질의 단백질을 체내에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많은 양을 섭취하면 대사 과정을 통해 한꺼번에 당으로 변환되거나 소변으로 배출되는 만큼 선택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단백질 대사의 경우 오르니틴 회로(ornithine cycle)라고도 불리는 요소 회로(urea cycle) 대사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에너지 생성을 위한 시트르산 회로를 거친다. 이 역시 ‘인체의 화학 공장’이라고 불리는 간에서 이뤄지는 화학반응이다. 


간에서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되고, 아미노산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독성물질인 암모니아(NH3)가 발생하는데, 간세포는 요소 회로를 통해 암모니아를 무독성 물질인 요소로 변환해 소변으로 배출한다. 암모니아가 요소로 바뀌어 배출되는 요소 회로에는 다량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매일 1.5~2L의 물을 섭취하라고 권장한다.


사실 화학적으로는 살이 찌고 빠지는 현상이 단순히 섭취한 열량이 과잉이냐 혹은 부족하냐에 따라 나타나는 인체 화학반응의 결과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건강이나 외형적 관리를 위한 살의 조절은 생존을 위해 프로그래밍 된 생명체 반응의 부산물일 뿐이다. 

 


또 신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급격한 변화를 방지할 수 있도록 여러 대책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가포식(autophagy)이라는 과정은 세포가 불필요하거나 기능이 저하된 세포소기관을 분해하며 에너지를 얻는 현상인데, 단식과 같이 영양 공급이 제한되는 경우 생존을 위해 세포들이 스스로 자가포식을 수행한다. 


이처럼 인체는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이를 ‘항상성’이라 일컫는다), 급격히 살을 빼는 등의 변화가 발생하면 흔히 ‘요요 현상’으로 불리는 결과와 같이 원상태로 복구되고 만다. 살의 양이 변화하는 속도는 매우 다양한 인체 내외적 요인들에 의해 좌우되는 셈이다.


모든 화학물질의 대사 과정은 단순히 화학 결합이 끊어지거나 바뀌는 단편적인 화학반응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신경계나 호르몬계 등의 체내 시스템과 함께 상호 보완적인 복잡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또한 화학자가 인체의 화학반응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용어정리

아데노신삼인산(ATP): DNA의 네 염기 중 하나인 A(아데닌)에 인산기 3개가 나란히 직렬로 연결된 구조로 생체 내 화학에너지를 만드는 가장 기본이 되는 분자다.

시트르산 회로 : 첫 생성물인 시트르산(citric acid)의 이름을 따 시트르산 회로라고 불리며, TCA(tricarboxylic acid·트라이카복실산) 회로라고도 불린다. 고등동물의 생체 내에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대사 생성물은 마지막에는 피루브산으로 바뀌고, 시트르산 회로를 거치면서 완전 산화된다. 이때 이산화탄소와 물, 에너지가 생성된다.

필수 아미노산 : 류신, 발린, 이소류신, 라이신, 트레오닌, 메티오닌, 히스티딘, 페닐알라닌, 트립토판 등 9종이 필수 아미노산이다.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달걀 등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

 

※필자소개

장홍제. KAIST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광운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다양한 원소로 이뤄진 나노물질을 설계·합성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원소가 뭐길래’ ‘원소 쫌 아는 10대’ ‘진짜 궁금했던 원소질문 30’ 등 화학 대중서도 다수 출간했다. hjang@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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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
  • 에디터

    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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