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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4년 인간 설계도 완성된다

이미 1차 게놈지도 그려

불과 50년전 만해도 과학자들은 DNA를 겨우 이해할 정도였다. 1980년대 유전공학은 세계를 진동시켰고 그 결과 분자생물학의 무한한 잠재력은 인정받게 된다. 이제 생물 유전체에 담겨있는 유전정보가 하나씩 규명돼 가고 있다. 지금 세계는 20세기에 남은 마지막 영역인 유전정보를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갖가지 색깔로 염색된 사람의 제1번 염색체 반쪽.
 

생명현상을 규명하는 생학(生學)은 어느덧 우리의 신체는 물론 정신의 깊은 곳까지 건드리고 있다. 이제까지 신비의 영역이라 간주했던 생물의 설계도가 하나씩 그 베일을 벗으면서 생명체의 근원이 분자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해지고 있다.

1990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착수된 이래 인간 유전체(genome, 게놈)의 지도작성은 이미 완료됐고, 효모(yeast)와 8종 미생물의 유전체 정보가 모두 규명됐다(표). 이제 우리 손 위에 독립된 생명체의 청사진을 올려놓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라움과 호기심을 가지면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왜 유전체 연구를 할까? 그것도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들여서.

21세기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와 화석연료의 고갈이 예측되고 있다. 식량과 환경, 보건문제가 심각히 대두될 것이고, 석유화학산업은 마감된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명공학’을 꼽는다. 생명공학 연구에는 1차적으로 유전정보가 필요하다. 결국 미래 산업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생물의 유전정보와 새로운 생명공학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선진기술국에서는 앞다투어 세기적인 역사인 유전체연구에 참여하는 것이다.

1990년 최초로 미국의 국립보건원과 에너지부가 인간 유전체 연구를 국가 정책사업으로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의 시작이었다.

1차 인간 유전체 지도 완성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인간 유전체는 30억개의 염기로 구성돼 있다. 이 유전체의 DNA는 'ATGCTAGCTCGCTTAG'와 같이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 네가지의 염기조합으로 이루어진 이중나선형 생체고분자이다. 유전체 연구는 이 유전체에 담겨있는 30여억개의 염기서열을 결정한다. 즉 염기서열 그 자체가 유전정보인 것이다.

유전체연구는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까? 우선 유전체 지도를 작성한다. 유전체 DNA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보관하고 그 조각들의 연결점을 찾아 정리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전체에 담겨있는 유전정보에 체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기준점이 된다. 인간 유전체 내의 유전정보는 너무도 방대하기 때문에 그 유전자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마치 광활한 밀림의 한 지점에서 지도도 없이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전자의 기준설정에는 유전체 상에 한 유전자의 위치를 수학적인 거리의 개념으로 나타내는 물리 지도(physical map)와 기능을 가진 유전자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유전 지도(genetic map)가 있다. 지도작성은 19세기 중엽부터 유전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계속됐지만, 제한된 유전자 분석기술로 커다란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유전공학기술의 등장과 관련 분석기술의 발달은 유전 지도와 물리 지도를 매우 빠른 속도로 작성할 수 있게 했다. 드디어 1차 인간 유전체지도가 1994년에 완성됐고, 이어서 다른 여러 생물들의 유전체지도도 작성됐다.

유전체 연구의 두번째 단계는 유전체지도에서 얻어진 유전체 DNA절편의 염기서열을 순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수천만에서 수십억개의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현재 수준의 유전공학기술로는 그 접근 방법상 한계가 있다. 이것은 간편한 유전자 재조합기술과 유전자 구조해석기술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가령 30여억개 염기의 서열결정에서 0.01%의 오차가 발생한다면, 30만개의 오차가 생기게 된다. 통계학적인 기준에서는 허용오차범위에 들지 모르지만, 생명유지에서는 단 하나의 유전자 염기의 오차도 허용이 안된다. 단 하나의 오차는 소위 말하는 유전병이나 돌연변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간 유전체연구는 생명체 수준의 완벽한 과학기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정밀 분석 기술 개발이 인간 유전체 연구의 목표가 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또한 유전자 분석기술은 너무도 많은 경비가 소요된다. 한개의 염기서열 결정에 필요한 경비가 1천원으로 인간유전체연구에는 3조원이 필요하고, 실험정확도 때문에 몇 차례 반복실험을 해야 하므로 손쉽게 10조원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래서 실험단가를 염기당 1백원 이하, 10원 이하로 낮출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여러 과학분야의 지식과 개념이 도입된 새로운 유전공학기술과 DNA분석 기술이 다각적으로 시도되고 있으며 이미 획기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전정보의 전산화 작업이다. 유전정보는 우리가 보고,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형태로 보관돼야 한다. 이 과정은 생명정보와 인간의 만남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실질적인 문제다. 그래서 유전정보를 미래의 산업정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유전체의 유전정보의 분량만도 엄청나 슈퍼컴퓨터로도 벅차다.
 

(그림)염색체(chromosome)구조

천문학적 투자

이미 선진기술국에서는 유전체연구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서슴없이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15년 동안 30억달러의 연구투자를 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일본은 인간유전체와 모델생물의 유전체에 초점을 맞추어 강도 높은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9종 미생물의 유전체 연구는 이미 종료됐다. 인류사에 기록될 만한 역사적인 사업이다.

인간유전체연구가 종료되는 2004년, 사람의 유전체정보가 완전히 규명되고 타 생물의 유전정보도 상당량 해석돼 약 1백억개의 유전문자가 집대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정보의 종합적인 해석은 앞으로 분자생물학자에 남겨진 숙제이다. 벌써 과학자들은 유전체에 담겨있는 유전정보를 음미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생명과학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생명현상탐구는 생학자에만 국한된 연구대상이 아니다. 유전자 정보를 모두 안다고 해서 생명현상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체 구성은 화학의 범주이고 신호전달은 물리학, 두뇌작용은 전기전산학, 근육작용과 역학은 기계공학, 생합성과 대사과정은 생화학분야이다. 즉 근대과학의 모든 학문분야가 녹아 들어가 있는 연구가 ‘생명현상’이다. 인간이 ‘인간’을 주제로 해 진행하는 연구, 바로 ‘인간 유전체 연구’에 모든 과학이 총동원돼 유전 정보를 규명하고, 인간의 설계도를 그려가고 있다.

그런데 유전체 연구결과의 확보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종료된 유전체 연구 중 어느 하나도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얻은 유전정보를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공개하겠느냐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인류의 공동 지적 재산이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유전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있을 뿐 아니라, 유전체 정보에 대한 사유화가 한층 더 가속되고 있다. 우리 나라 같은 기술후발국에서는 이런 유전정보의 차단이 생명과학과 생물산업의 원천적인 봉쇄를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유전체연구는 국제협력사업이다. 한 국가가 독자적으로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한 사업이다. 그래서 국가간의 유전체연구에 대한 업무분담, 연구인력 및 기술 교환이 불가피하다. 우리에게는 인간유전체연구가 우리나라 생명과학을 국제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국제협력연구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기술과 정보, 그리고 연구투자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가 없는 입장에서 국제연구기관에게 협력연구를 제의한들 무슨 반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국내에서는 1994년부터 과학기술처 중심으로 사람과 산업미생물에 대한 시범연구사업이 추진돼 왔고, 농림부 주관으로 벼와 일부 식물에 대한 유전체 연구가 소규모로 착수됐다. 또 1996년 과학기술처는 국내 모든 유전정보를 집대성할 ‘게놈사업단’을 생명공학연구소에 설립했다. 더욱이 흥미로운 사실은 국회의원이 중심이 된 ‘국회 유전체연구 지원모임’이 결성돼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회가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미래 과학한국을 염려하고 준비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움직임은 그간 우리 나라 정치관행에 비추어 보면 조그만 충격이자 사건임에 틀림없다.
 

(표)유전체 연구가 완료된 생물(1996년 5월24일 현재)
 

인간게놈 프로젝트 현황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1990년 10월부터 시작해 5만-10만개에 달하는 인간 유전자와 30억여개의 염기배열을 밝혀내려는 연구다. 이 유전자 염기 배열(A, T, G, C)을 알파벳처럼 풀어서 책을 만들면 1천쪽짜리 책 2백권을 만들 수 있다. 현재 16번, 19번, 22번 인간 염색체의 물리지도가 거의 완성됐고 4백만개에 달하는 염기배열도 찾아냈다.

미국에서만도 매년 2억달러의 예산을 들이고 있는 이 전지구적 사업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일본 등 기술선진국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휴고(HUGO, human genome organization)에서 국가간 연구실간의 게놈연구를 조율한다. 50개 나라에 1천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매년 모여 그때까지의 게놈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1996년 10월6일 현재, 휴고에는 6천2백89개의 유전자가 밝혀진 것으로 보고됐다.

최근 효모의 염기배열이 완벽하게 밝혀졌는데, 1천4백만개의 염기배열을 밝히는데만도 3천만달러의 비용이 들었고, 1백여개의 실험실이 참여했다. 각 나라 기여도는 유럽공동체55%, 미국의 워싱턴대학 15%, 스탠포드대학 7%, 카나다맥길대학 4%, 영국의 상거센터 17%, 일본의 이화학연구소2%다.

유전자는 왜 이기적인가?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이라는 것은 개체나 종에 의해 이루진다고 주장했다. 즉 생존에 알맞는 개체가 자신들의 자손만을 번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들사이의 이타적인 행동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인 도킨스박사는 이런 자연선택은 개체나 종이 아닌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는 유전자 선택론을 주장한다. 바로 생물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유전자를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목적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들의 행동이 이기적인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고 바로 유전자가 이기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물의 이기적 행동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커다란 집단을 이루어 짝짓기를 하는데 둥지와 둥지 사이는 불과 수m밖에 안된다. 갓 태어난 어린 새끼는 작고 무방비 상태여서 포식자에게 먹히기 쉽다. 어떤 갈매기는 이웃 갈매기가 먹이를 찾으러 집을 떠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 둥지를 습격해 어린 새끼를 삼켜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렇게 하면 그 갈매기는 먹이를 찾으러 나가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자기 둥지를 지키면서도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더 잘 알려진 예로 암놈 사마귀의 동족을 잡아먹는 행위, 사마귀는 몸집이 큰 육식성 곤충이다. 보통 파리와 같이 작은 곤충을 먹는데,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한다. 교미시 수놈은 주의 깊게 암놈에게 접근해 위에 타고 교미한다. 암놈은 기회를 포착해 수놈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수놈이 접근할 때나 위에 올라탄 직후, 혹은 떨어진 후 암놈은 우선 숫놈의 머리를 잘라 먹기 시작한다. 암놈은 교미가 끝난 후에 수컷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머리가 없어지더라도 수놈의 남은 몸통부분은 성적행위를 멈추는 멈추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곤충의 머리는 억제중추신경의 자리이므로 암컷은 수컷의 머리를 먹음으로 인해 수컷의 성행위를 활발하게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생식력을 높이는 결과가 된다. 물론 첫째의 이점은 암컷이 좋은 먹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예를 통해 도킨스는 동물의 행동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살아남기 전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생물의 형질과 형태 뿐 아니라 행동도 자연선택이 유전자에 작용해 진화한 결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존하는 생물은 유전자가 자연선택에서 살아남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전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이타적 행동으로 보이는 것도 실은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생물은 몸의 유전자가 타고 다니며 조정하는데 따라 행동하는 '탈 것', 즉 외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인간도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프로그램된 로봇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도킨스의 설명도 동물의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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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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