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 경영학과에서 2년째 유학 중인 박승현 씨는 1월 30일 한국 정부가 보낸 1차 전세기를 타고 귀국해 2월 15일 오전 격리 생활을 마치고 퇴소했습니다. 박 씨는 우한대 기숙사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한 1월 중순부터 현재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약 한 달간 본인이 겪은 일을 가감 없이 기록해 과학동아에 보내 왔습니다.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이라는 명칭은 당시 상황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코로나19’로 통일하지 않고 그대로 썼습니다.
● 2019년 12월 31일
오늘 중국 우한시위생건강위원회(武汉市卫生健康委员会)가 ‘원인 불명 폐렴 치료 업무에 관한 긴급 통지’를 발표했다. 소위 ‘우한 폐렴’으로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27명이며, 이 중 7명이 위중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이미 신종 감염병에 대한 소문은 우한대 내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화난수산시장(华南海鲜市场)이 지목됐다는 사실도 우한 시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누설했다가는 중국 정부로부터 유언비어 유포로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어 다들 쉬쉬했을 뿐이다.
● 2020년 1월 2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확진자가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일본, 캐나다, 홍콩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초기에 몇 명 수준으로 늘어나던 환자가 이제는 하루에 수십 명씩 추가되며 금세 수백 명이 됐다. 오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 간에도 전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공포를 이미 겪은 경험이 있는 우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며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고 진위를 판단할 수 없는 뉴스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한국 교민들이 있는 ‘단톡방(단체 카카오톡방)’을 통해 공항과 항공편 상황을 전해 듣고 있다.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들 때까지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며 우한에 머물기로 했다.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끼고 손 세정제를 사용하며 위생관리에 신경 쓰는 중이다.
● 2020년 1월 22일
어느새 감염병 확진 환자가 500명을 돌파했다. 나를 걱정하고 있는 부모님 생각에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고 가장 빨리 출발하는 항공편을 예매했다. 내일이면 우한을 떠난다.
● 2020년 1월 23일
중국 정부가 우한시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오전 10시부터 모든 지하철과 버스 운행이 중단됐다. 내가 타기로 했던 항공편 역시 취소됐다. 가고 싶어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울며불며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당장 마트에 가서 필요한 음식과 물건을 넉넉히 사오렴.”
부모님의 조언대로 마트로 향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 마트로 달려갔지만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식재료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30위안(약 5000원)이면 살 수 있던 귤이 며칠 사이 50위안(약 8500원)으로 올라있었다. 그마저도 재고가 별로 없었다. 달걀, 고기, 채소 칸은 텅텅 비어있었다. 식재료를 사는 데만 2시간 넘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우한 교민 단톡방에는 교민들의 걱정과 분노가 빗발치고 있다. 우한시를 벗어날 방법을 영사관에 문의했다. 몇몇 교민들은 국도와 고속도로를 이용해 다른 도시로 이동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 2020년 1월 24일
우한은 완전히 고립됐다. 모든 도로가 완전히 봉쇄됐고, 설상가상으로 우한 근교 도시들까지 폐쇄됐다. 고속도로를 통한 탈출 계획도 모두 무산됐다. 중국 정부의 규제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중교통은 물론 개인 소유의 승용차와 오토바이 운전까지 금지됐다. 우한 시내 도로 이동을 통제해 배달음식도 먹을 수 없다.
집에 조리시설이 없는 나와 같은 유학생들은 직접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야 했다. 다행히 우한대에서 무료 도시락을 나눠줬고 정부가 운영하는 택시는 이용할 수 있었지만, 생활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2020년 1월 30일
1월 24일부터 한국 정부가 전세기를 띄운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신청 접수를 받는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바로 주우한총영사관에 탑승 신청 e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안절부절 기다린 끝에 오늘에서야 오후에 출발하는 전세기에 배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안한 마음에 일찍이 공항에 도착했지만, 중국 정부와의 협의 문제로 항공편이 연기됐다는 안내가 나왔다. 이후에는 하염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침 9시부터 무려 9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전세기는 평소 타던 비행기와 여러 면에서 달랐다. 보호복을 착용한 직원들이 건강상태질문서, 외교부 임차 전세기 탑승 동의서 등 수많은 문서를 건넸다. 발열 체크도 수시로 했다. 공항에 들어가기 전, 출국 심사 시, 비행기 탑승 전, 비행기에서 내린 뒤 총 4번의 발열 검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나는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충남 아산의 격리 시설로 이동했다. 우한에서 기숙사를 나선 지 17시간 만이었다. ‘환영한다’는 한국어 팻말을 보는 순간 눈물이 살짝 났다. 앞으로 이곳에서 14일간 생활하며 감염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부디 건강하게 퇴소할 수 있기를.
● 격리 1일째 2020년 1월 31일
격리 시설은 생각보다 좋다. 개인 화장실도 있고, 2인실을 혼자 쓰는 터라 방 크기도 작지 않다. TV도 있고, 심심할 때 읽을 수 있는 책과 신문도 있다.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5시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체온을 재고 기록해야 한다. 내과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도 격리 시설에 상주하고 있다.
밥은 시간에 맞춰 문 앞에 배달된 도시락을 내가 직접 들고 들어가 방에서 먹는 시스템이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 음식이 반갑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차갑게 식어있어 먹기 힘들었다. 찬밥 다이어트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밀린 블로그를 올리고 과학동아에 기고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저녁에는 운동도 했다. 방이 좁아 행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 기분이 좋았다. 최근 살이 많이 쪘는데, 이렇게라도 체중 증가를 막아야겠다.
● 격리 4일째 2020년 2월 3일
오늘은 아침부터 너무 심심해서 지급 받은 컬러링 북을 펼쳤다. 색칠을 하다 보니 색연필을 다시 깎아야 했다. 그런데 연필깎이가 없었다. 연필깎이 하나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직도 열흘이나 이런 생활을 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난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당연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오늘부터는 쓰레기 버리는 방법이 바뀌었다. 그동안 의료용 폐기물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내놨는데, 이제는 폐기물 봉투를 밀봉한 뒤 박스에 담아 버려야 한다.
입맛이 없어서 도시락을 계속 남기고 있는데, 내일부터 도시락 업체가 바뀐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계속 갇혀있으니 이런 작은 변화가 기쁨으로 다가온다.
● 격리 5일째 2020년 2월 4일
새로 바뀐 도시락이 마음에 든다. 여전히 차갑지만, 과일과 채소 비율이 늘어 먹고 나서 속이 편하다.
한 언론사가 격리 생활에 관한 잘못된 내용을 보도해 격리 생활 중인 교민들이 화가 났다. 다들 신체의 자유가 제한된 상태로 생활하면서 예민해진 것 같다.
오후에는 포스트잇을 받았는데, 교민 한 분이 단톡방에 이런 제안을 했다. 격리 생활 중인 우리를 위해 일하는 이곳 직원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적자고 말이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동참했다.
얼어있던 단톡방 분위기가 응원 메시지 인증 사진으로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깨달았다. 내일도 응원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방문 앞에 붙여둘 생각이다.
● 격리 6일째 2020년 2월 5일
일주일이 지났다. 뉴스에서는 날이 춥다고 하는데, 방에만 있으니 날씨 감각을 잃었다. 밖에서 계속 순찰을 하는 경찰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날이 풀렸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심리건강센터에서 주관하는 마음 건강 훈련 방송이 나와 잠이 깼다. 무시하고 계속 자고 싶었지만, 방송은 25분이나 계속됐다. 이렇게라도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인이 보내준 택배가 도착했다. 응원 편지와 간식이 담겨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분명 몸은 격리돼있는데, 어째서인지 요즘 사람들의 사랑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보내주는 선물도 큰 힘이 된다.
그동안 미뤄둔 빨래를 했다. 직접 손빨래를 해야 하니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오늘이다.
● 격리 9일째 2020년 2월 8일
내 인내심의 유통기한은 딱 9일인가보다. 오전 8시마다 아침밥을 배급하는 소리에 강제로 일어나고, 밥도 계속 도시락을 먹으니 얼굴도 쉽게 붓고 피부도 너무 안 좋아졌다. 차가운 밥은 둘째 치고 딱딱하게 굳은 불고기나 전 같은 반찬에는 이제 손도 대기 싫다.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쳤다.
심지어 15일에 격리 해제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14일 인줄 알았는데!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들은 소식이라 더 절망적이었다.
오랜만에 우한에 있는 친구와 연락을 했다. 우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기숙사 출입은 아예 통제됐단다. 우한대에서도 코로나19 환자가 나왔다고 한다. 여긴 조금 갑갑하긴 해도 안전한데…. 우한에 남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니 불평불만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다시 힘을 내야겠다. 우한에 있는 친구들이 무사하길.
● 격리 11일째 2020년 2월 10일
격리 해제 이후 한국에서 지낼 곳과 그 장소까지 이동할 교통수단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받았다. 며칠 뒤면 부모님이 있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이 났다. 괜히 신이 나 짐도 미리 싸뒀다.
어제부터는 오후 3시마다 의사 선생님 한 분이 라디오를 진행한다. 전문가도 아니고 방송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지만, 그 서툰 진행이 재미있다. 덕분에 오후 3시가 기다려진다. 교민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사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오늘은 라디오에 보낼 사연을 포스트잇에 적어 문 앞에 붙여놔야겠다. 내 사연이 뽑혔으면 좋겠다.
● 격리 14일째 2020년 2월 13일
이제 퇴소까지 이틀 남았다. 오늘은 나를 포함해 1차 전세기로 입국한 사람들의 검체 채취가 이뤄졌다. 퇴소 전 마지막 공식(?) 일정인 셈이었다. 검체 채취까지 끝내고 나니 진짜 집에 가는 기분이 든다. 내일은 부지런히 짐을 싸고 청소도 해야 한다. 유후~♪
퇴소를 축하한다는 편지와 선물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감동을 주는 관계자분들의 배려에 울컥했다. 원치 않는 격리였지만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점심과 저녁도 더 맛있는 메뉴가 나왔다(물론 기분 탓일 수 있다). 저녁에는 퇴소를 축하하는 조각 케이크가 나왔다. 원래 디저트를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니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
● 격리 해제 1일째 2020년 2월 15일
드디어 집에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으니 이제 나가도 된다는 내용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관계자분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나와도 된다고 했다.
드디어! 마치 오랫동안 갇혀있던 강아지처럼 주위 눈치를 보며 조심히 나갔다. 버스로 향하는 길가에는 많은 시민이 일렬로 서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하는 민망함과 동시에 그동안 눌려있던 감정이 북받쳤다.
서울역에 내리니 엄마가 기다리고 계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돌렸다. 저녁으로는 그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고기와 된장찌개를 먹었다.
사실 우한에서도 약 2주간 자가격리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따져보면 거의 한 달 가까이 자유롭지 못했다. 오랫동안 하루에 100보도 채 걷지 못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1만 보를 걸었다.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달은 시간이었다.
● 격리 해제 2일째 2020년 2월 16일
코로나19 발생 이후 몇몇 친구들은 진지하게 우한대 휴학을 고민하고 있다. 우한대는 개학을 연기하지 않고 예정대로 2월 17일 개학하기로 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모든 수업을 ‘MOOC’나 ‘쉐시통(学习痛)’ 같은 앱을 이용한 인터넷 수업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현재 우한대에는 중국 학생 외에도 북한, 라오스,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국가 출신의 유학생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들은 현재 기숙사가 폐쇄돼 나가지도 못하고 있으며, 필요한 물품은 배달받고 학교 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 학기에 휴학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일단은 앱으로 인터넷 수업을 듣고,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5월경 우한대로 돌아갈 계획이다. 덕분에 이번 주 내내 시험 영상과 수업 자료를 봐야 한다.
코로나19로 천금 같은 방학이 날아간 것은 억울하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